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 -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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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
로자 파크스·짐 해스킨스 지음
최성애 옮김, 문예춘추사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
러셀 프리드먼 지음
김기현 옮김, 책으로여는세상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남부 여러 주에는 짐 크로(Jim Crow) 법이 온존했다. 짐 크로는 1820년대 유랑극단에서 인기를 끌던 캐릭터였다. 백인 연기자가 분장을 하고 흑인인 척 노래 부르며 연기했다. 노랫말에는 당시 백인들이 갖고 있었던 흑인에 대한 편견이 녹아들어 있었다. 우스꽝스런 캐릭터였던 짐 크로는 점차 흑인에 대한 멸시와 분리를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다가 인종 분리를 뼈대로 한 법의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5년 겨울 시작된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은 이 짐 크로 법을 폐기하는 도화선이 됐다.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는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로자 파크스의 생에 대한 고백이다. 1955년 12월1일 로자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고 비어 있던 흑인 지정석에 앉았다. 어느덧 앞쪽 백인 좌석이 모두 차게 되었고, 그때 올라탄 백인 한 명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기사는 네 명의 흑인에게 일어설 것을 명령했다. 백인은 흑인과 나란히 앉지 않았기 때문에 한 명이 앉으려면 나란한 네 좌석 모두를 비워야 했다. 세 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로자는 일어서지 않았다. 그리고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주법을 어긴 죄로 체포되었다. 당시 로자에게 정치적 이슈로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결국 이 사건은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축으로 한 시민권 운동으로 커지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몽고메리 버스 사건에 대한 꼼꼼한 진술과, 로자 파크스 자신의 가족 및 유년 시절 이야기이다. 당시 흑인들에게는 공교육 기회가 극히 제한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흑인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판의 힘조차 갖지 못한 채 단순 노동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교사였던 로자 파크스의 어머니는 딸을 교육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로자 또한 의욕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비록 학교에서 배우고 싶었던 것을 충분히 배우지는 못했지만 이 때 받은 교육은 로자 파크스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동력이 되었다. 몽고메리 버스 사건을 다룬 후반부에는 이 사건이 상급 법원까지 가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로자 파크스 이전에도 버스에서 체포된 흑인이 여럿 있었다. 9개월 앞서 클로뎃이라는 십대 소녀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가 중심이 되어 이 사건을 연방 법원에 제소하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로뎃은 임신 중이었고, 미혼이었다. 소송에서 질 것이 분명했고, 상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협회는 여러 번의 소송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이 없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모금액은 이길 수 있는 싸움에 사용돼야만 했다. 그러자면 백인에게 비난을 받을 만한 작은 꼬투리도 주어선 안 되었다. 로자 파크스는 흑인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안정된 직장이 있었으며, 투표권을 갖고 있었고, 범법 행위를 한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갖고 지위향상협회 활동에 참여했던 터라 행위의 정당함을 스스로 항변할 수 있었고, 그럴 수 있을 만한 용기도 있었다. 로자 파크스를 변호했던 변호사 찰스 랭퍼드와 프레드 그레이는 1심에서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았다. 이 또한 흑인 진영의 전략이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상급 법원에 항소함으로써 흑백 분리주의 법을 폐지하는 데까지 이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파크스는 벌금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후 버스 안 타기 운동을 계속했고, 이 운동에 참여한 88명과 함께 또다시 기소되었다. 이때 기소된 이들 중 첫 번째로 피고석에 선 이가 마틴 루서 킹 목사였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는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해 몽고메리 버스 사건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조망한다. 앞의 책과 나란히 읽으면 여러 시각에서 사건에 접근하며 좀더 입체적으로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몽고메리에 부임했던 당시 상황에 대해 두 책 모두 흑인지위향상협회 지부장이었던 닉슨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이 책에서는 나이든 목사가 신임 목사에게 베푸는 선심을 경계해야 했다는 내용(98쪽)으로 전하는 반면, 앞의 책에서는 이 발언이 당시 백인 관료들의 온정주의적 포섭 전략의 일환임을 명시한다. 새로 부임한 흑인 목사에게 다가가 “이 양복이 교회의 격에 잘 맞지 않는군요”라고 하며 새 양복을 (백인에게 잘 협조해달라는 뇌물로) 선물해 주었다는 것이다.(160쪽)
킹 목사의 비폭력 저항 및 그의 심경 변화에 대해서는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버스 안 타기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의 감동적인 사례를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목회자가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이를 거절하고 걸어갔던 마더 폴라드 할머니는 “내 발은 힘들지만 내 영혼은 평안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7살, 9살, 10살이던 세 어린이가 피아노 레슨을 받기 위해 6개월간 8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 다닌 일화도 가슴 찡한 뒷이야기이다.
다른 백인들의 따돌림을 감수하면서 이 운동에 동참한 백인들도 여럿 있었다. 트리니티 루터 교회의 로버트 그레츠 목사, 버스 안 타기 운동을 간디의 투쟁에 비유한 글을 기고한 줄리엣 모건 등이 있었고, 걸어가던 흑인들을 자기 차에 태워주던 백인 운전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이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흑백 시민 모두의 협력으로 이룬 역사임을 방증한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김수연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로자 파크스·짐 해스킨스 지음
최성애 옮김, 문예춘추사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
러셀 프리드먼 지음
김기현 옮김, 책으로여는세상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남부 여러 주에는 짐 크로(Jim Crow) 법이 온존했다. 짐 크로는 1820년대 유랑극단에서 인기를 끌던 캐릭터였다. 백인 연기자가 분장을 하고 흑인인 척 노래 부르며 연기했다. 노랫말에는 당시 백인들이 갖고 있었던 흑인에 대한 편견이 녹아들어 있었다. 우스꽝스런 캐릭터였던 짐 크로는 점차 흑인에 대한 멸시와 분리를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다가 인종 분리를 뼈대로 한 법의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5년 겨울 시작된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은 이 짐 크로 법을 폐기하는 도화선이 됐다.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는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로자 파크스의 생에 대한 고백이다. 1955년 12월1일 로자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고 비어 있던 흑인 지정석에 앉았다. 어느덧 앞쪽 백인 좌석이 모두 차게 되었고, 그때 올라탄 백인 한 명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기사는 네 명의 흑인에게 일어설 것을 명령했다. 백인은 흑인과 나란히 앉지 않았기 때문에 한 명이 앉으려면 나란한 네 좌석 모두를 비워야 했다. 세 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로자는 일어서지 않았다. 그리고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주법을 어긴 죄로 체포되었다. 당시 로자에게 정치적 이슈로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결국 이 사건은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축으로 한 시민권 운동으로 커지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몽고메리 버스 사건에 대한 꼼꼼한 진술과, 로자 파크스 자신의 가족 및 유년 시절 이야기이다. 당시 흑인들에게는 공교육 기회가 극히 제한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흑인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판의 힘조차 갖지 못한 채 단순 노동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교사였던 로자 파크스의 어머니는 딸을 교육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로자 또한 의욕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비록 학교에서 배우고 싶었던 것을 충분히 배우지는 못했지만 이 때 받은 교육은 로자 파크스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동력이 되었다. 몽고메리 버스 사건을 다룬 후반부에는 이 사건이 상급 법원까지 가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로자 파크스 이전에도 버스에서 체포된 흑인이 여럿 있었다. 9개월 앞서 클로뎃이라는 십대 소녀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가 중심이 되어 이 사건을 연방 법원에 제소하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로뎃은 임신 중이었고, 미혼이었다. 소송에서 질 것이 분명했고, 상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협회는 여러 번의 소송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이 없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모금액은 이길 수 있는 싸움에 사용돼야만 했다. 그러자면 백인에게 비난을 받을 만한 작은 꼬투리도 주어선 안 되었다. 로자 파크스는 흑인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안정된 직장이 있었으며, 투표권을 갖고 있었고, 범법 행위를 한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갖고 지위향상협회 활동에 참여했던 터라 행위의 정당함을 스스로 항변할 수 있었고, 그럴 수 있을 만한 용기도 있었다. 로자 파크스를 변호했던 변호사 찰스 랭퍼드와 프레드 그레이는 1심에서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았다. 이 또한 흑인 진영의 전략이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상급 법원에 항소함으로써 흑백 분리주의 법을 폐지하는 데까지 이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파크스는 벌금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후 버스 안 타기 운동을 계속했고, 이 운동에 참여한 88명과 함께 또다시 기소되었다. 이때 기소된 이들 중 첫 번째로 피고석에 선 이가 마틴 루서 킹 목사였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는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해 몽고메리 버스 사건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조망한다. 앞의 책과 나란히 읽으면 여러 시각에서 사건에 접근하며 좀더 입체적으로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몽고메리에 부임했던 당시 상황에 대해 두 책 모두 흑인지위향상협회 지부장이었던 닉슨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이 책에서는 나이든 목사가 신임 목사에게 베푸는 선심을 경계해야 했다는 내용(98쪽)으로 전하는 반면, 앞의 책에서는 이 발언이 당시 백인 관료들의 온정주의적 포섭 전략의 일환임을 명시한다. 새로 부임한 흑인 목사에게 다가가 “이 양복이 교회의 격에 잘 맞지 않는군요”라고 하며 새 양복을 (백인에게 잘 협조해달라는 뇌물로) 선물해 주었다는 것이다.(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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