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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성교육은 주입식 아닌 툭 터놓고 토론하는 게 효과적

등록 2013-04-22 10:25

지난 10일,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2013 성교육 프로그램 워크숍’이 열렸다. 이날 발표자들은 모둠별 활동을 통한 토론 형식의 다양한 성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지난 10일,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2013 성교육 프로그램 워크숍’이 열렸다. 이날 발표자들은 모둠별 활동을 통한 토론 형식의 다양한 성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아이들이 남에게 피해주거나 받지 않을 권리 알아가는 것
몸의 감수성 높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강의실 앞쪽 화면에 한편의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왔다. 학교 체육시간에 친구가 옷 갈아입는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모습, 교실에서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묘사하며 장난치는 아이들, 친구의 신체 특정 부위를 보고 놀리거나 만지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이하 아하!센터)의 이목소희 교육팀장은 10대 또래들에게 있을 법한 사례들을 모아 교실 안에서 공론화시키는 방식으로 성교육을 진행한다.

아이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할까?’, ‘내가 이런 일을 겪으면 어떤 기분일까?’, ‘주변에서 보는 애들 기분은 어떨까?’, ‘내가 친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모둠별로 정리해 이야기한다. 실제 아이들이 적은 내용을 보면 ‘동참한다, 부럽다, 침 흘린다, 의외로 좋아할 수도 있다’부터 ‘말린다, 부끄럽다, 당황스럽고 더럽다’ 등의 상반된 반응이었다. 이 팀장은 “아이들 공동체 안에 성의식이 혼재돼 있다. 아이들에게 누군가에겐 놀이고 흥분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폭력이고 충격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아하!센터에서 주최한 ‘2013 성교육 프로그램 워크숍’이 열렸다. 청소년 관련 기관, 성폭력 상담소 관계자와 현직 교사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워크숍에서는 실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사례도 오갔다. 파워포인트에 내용을 요약해 일방적으로 강의하던 예전과 달리, 모둠별 활동을 하면서 서로 터놓고 토론하는 식의 수업이 주로 소개됐다.

서울과학고 최규영 보건교사는 “성교육이 성폭력만 너무 부각된다. 보편적인 성을 잘 알아야 성폭력도 제대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에 대해 생각한 뒤 긍정적인 내용과 부정적인 내용을 포스트잇 두 장에 각각 적게 한다. 그리고 칠판에 친밀감, 성기 위생(생식), 성의 도구화, 성적 정체성, 감각 등 성의 다양한 측면을 설명하고 자신이 쓴 내용과 관련 있는 분야에 붙이도록 한다. 아이들은 자위, 스킨십, 야동 등 평소 느꼈던 성에 대한 고민이나 느낌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잘못 알고 있던 인식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또 잘못된 성폭력 통념에 대해 바꿔보기도 한다. ‘성폭력은 남성들의 억제할 수 없는 성충동 때문에 일어난다’, ‘의도적으로 일어난다’,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과 행동이 성폭력을 유발한다’ 등의 내용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 모둠별로 논의한다. 최 교사는 “남학생의 경우, 특히 이런 문구에 극렬하게 저항한다. 이게 맞다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야단치거나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같이 얘기해보고 전체 의견을 묻는 식으로 가야 한다”며 “사실 아이들의 이런 반응은 개인적 이유보다 가정환경, 사회적 분위기,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선미 연구원은 데이트 성폭력을 주제로 한 교육 사례를 얘기했다. 그는 “이 주제로 성역할 고정관념, 스킨십, 성적 의사소통, 데이트 성폭력, 피임까지 다룰 수 있다”며 “10대들의 연애 고민을 나누고 자신이 원하는 스킨십과 그 이유를 서로 이야기하며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에 접근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가상 결혼 형태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닫는다. 또 성적 자기결정권 개념을 통해 남자친구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스킨십을 요구했을 때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씨는 “성적 의사소통을 잘하려면 내 욕구와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과 상대방의 욕구와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이들에게 침묵은 동의가 아니며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인지 고민해보고 그 행동의 결과를 예측해보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목소희 팀장은 “아동의 경우, 성폭력 예방보다는 자기 몸과 위험상황에 대한 인지가 더 중요하지만 청소년들은 관계 속에서 차별적인 소통이나 표현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며 “성교육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피해 주지 않고, 피해 받지 않을 권리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교육부에서 올해부터 성교육을 10시간에서 15시간으로 늘려서 의무화했다. 예산이나 보건교사의 전문성 확보가 중요하다. 대규모 일회성 강의가 아니라 전담교사를 둬서 아이들의 몸의 감수성을 높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접근방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아이 안정시키고 침착하게 얘기 들어줘야”

인터뷰 l 배승민 가천대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성폭력 피해자 진술전문가 슈퍼바이저로 활동중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진술전문가는 진술 내용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쓴 서류 내용을 보고 전문가 자문을 해주는 게 슈퍼바이저다. 소아아동 피해자의 경우 진술 받기가 어려워서 도움을 줬는데, 지금은 제도상 수사권이 없어서 조사 때 동석할 수가 없다. 조사 속기록을 보고 진술을 풀어서 자료로 남기는데 그걸 보고 신뢰도를 따지고 필요한 부분을 얘기해준다.”

-아동은 인지를 못하는 경우도 있고, 청소년은 예민한 시기라 조사가 순탄치만은 않을 거 같다.

“아동이나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경우 대다수가 면식범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믿던 사람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충격이 크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타인이나 사회에 대한 두려움에 부모한테 기대고 싶어 한다. 그때 부모가 사건을 부풀리거나 흥분하면 아이는 자신은 잘못됐으며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타인에 대한 불신이 악화돼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이보다 부모가 조사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정의가 실현되길 원하고 혼자 감당 못하는 걸 사회가 해결해주길 무의식적으로 바란다. 하지만 부모가 오히려 밖으로 노출되면 안 좋다는 생각에 덮길 원한다.”

-보통 부모가 아이의 최초 진술을 듣게 된다. 하지만 당황한 나머지 아이만 다그치다 오히려 나중에 진술을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성폭력에 당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모가 어떻게든 아이를 안정시켜줘야 한다. 아이들은 사실 인지적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 생각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 반응을 보면서 기억을 덧입혀 끔찍하게 생각한다. 아이가 부정적인 경험을 얘기할 때 지레짐작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차분히 다 들어주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좀 더 끌어내줘야 한다.”

-현재 인천 해바라기 아동센터 소장도 맡고 있다. 이 기관 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소개해 달라.

“우리나 원스톱 지원센터 외에 성폭력 상담소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정부에서 운영하는 지원기관이 많다. 사실 아이도 아이지만 부모도 충격을 받아서 힘든데, 그런 경우 상담하고 조언을 구할 곳이 필요하다. 신고 과정에서 걱정이나 우려가 있겠지만,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많은 사례를 접해 본 기관들이다 보니 노하우가 많이 쌓여 있다. 무조건 쉬쉬하고 덮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다. 직후에는 안정돼 보일지 모르지만 먼 미래를 봐선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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