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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포트폴리오, 고3때 허겁지겁? 일기쓰듯 습관 들여야

등록 2013-04-15 10:02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사비나미술관 교육프로그램 ‘나만의 창의적인 포트폴리오 만들기’에 참가한 아이들이 자신이 만든 포트폴리오를 들고 서 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사비나미술관 교육프로그램 ‘나만의 창의적인 포트폴리오 만들기’에 참가한 아이들이 자신이 만든 포트폴리오를 들고 서 있다.
자기 삶 꾸준히 기록해야 진로 성숙도 높아져
모든 활동내용은 무형자산, 입사제 활용 가능
“여러분, 포트폴리오가 뭘까요?” “활동한 내용 정리한 거요.” “맞아요. 포트폴리오는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모아놓은 책을 얘기해요. 그렇다면 포트폴리오에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요?” 박민영 에듀케이터의 질문에 “가족사진”, “내가 좋아하는 걸 그린 그림”이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사비나미술관에서 ‘나만의 창의적인 포트폴리오 만들기’ 수업이 있었다. ‘아티스트 포트폴리오’ 전시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전시는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창의적 작품으로 구현했다. 연대기 형식으로 그동안의 작품과 활동 사진, 재료를 전시하거나 실제 작품을 미니어처로 제작해놓은 작가도 있었다.

이날 참가한 8명의 초등학생들은 전시 관람 뒤 각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나중에 어른이 돼서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하려고” 만든다는 아이들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골판지, 수수깡, 면봉, 철사, 학종이 등의 재료로 표지를 꾸미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학을 접어서 붙이고 수수깡이나 면봉으로 이름을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경기 용인 동백초등학교 3학년 오준석군은 가방처럼 메고 싶어서 파일에 구멍을 뚫어서 끈을 달았다. 그는 “포트폴리오 만드는 것이 너무 재밌고, 전시를 보면서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내가 찍은 사진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우고 싶다”고 했다. 요리사를 꿈꾸는 경기 의정부 동암초등학교 4학년 이현수양은 “포트폴리오 만드는 건 첨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만큼 잘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 활동한 내용이나 요리 레시피를 포트폴리오에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민영 에듀케이터는 “사실 초등학생에게 포트폴리오는 생소한 개념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포트폴리오의 개념을 알고,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활용하기 위함”이라며 “지금부터 습관적으로 관심분야를 스크랩하고 자기만의 자료집을 만들면 나중에 자기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학입시에서 내신 전형의 비율이 줄고 서류전형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스펙관리를 하고 일부 중·고등학교에서는 입학 때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요구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입학사정관제(이하 입사제) 폐지 논란이 일어났다. 교과부에서는 아니라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입사제가 사교육을 더욱 부추긴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진로활동을 하기보다 대부분 학생들이 대학입시를 앞두고 서류를 급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포트폴리오는 단순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정리해 놓은 자료묶음이 아니다. 평소 자기 삶을 꾸준히 기록한 습관의 결과물이 쌓였을 때 더욱 효과적이다. 그 안에는 아이들 저마다의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꿈과 노력이 담겨 있는 게 중요하다.

서울 대림중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진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학생들은 동아리활동을 통한 진로체험학습 보고서나, 직업인 인터뷰 보고서, 진로직업박람회 참가기 등을 꼬박꼬박 정리한다. 비즈공예 동아리를 하면서 직접 남대문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서 만들고 비즈공예가를 찾아가 인터뷰하는 식이다. 미용사 체험을 하고 싶은 친구들은 모둠을 지어 섭외한 미용실에서 체험하기도 한다. 김덕경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아이들한테 이건 너네 발자국이니까 고등학교 가도 절대 버리지 말라고 한다. 대학생인 아들을 떠올려보니 고등학교 가서는 공부하느라 바빠서 대입 때 중학교 활동도 다 넣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1년에 한번 전일제 진로체험의 날을 진행하는 것 외에도 매주 학부모에게 ‘드림레터’를 발송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커리어넷에서 만든 진로정보지를 학교 사정에 맞춰 편집한 것이다. 김 교사는 “진로교육에 대한 인식, 진로 체험활동 등 정보제공의 차원에서 보내며, 이를 본 학부모가 찾아와 상담하기도 한다”고 했다.

홀랜드 진로탐색검사 결과 ES형으로 리더십과 경제 분야에 관심을 보인 진석(가명)이는 3학년 개별상담 후 홈쇼핑 운영자의 꿈을 갖게 됐다. 선린인터넷고의 테크노경영과를 가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지만, 성적이 많이 부족했다. 이후 특별전형에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김 교사의 도움으로 서울시 교육정보원의 ‘CEO 되어보기’에 참가해 회사 경영에 대해 파악하고 한 은행에서 금융체험을 하며 돈의 흐름도 공부했다. 방학 때는 부족한 영어, 수학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학교 방과후 수업, 오후 공부방, 동네 학원 등 3곳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꾸준히 노력해서 중학교 전체 내신이 30%에서 23%로 올랐다. 하지만 진석이가 원했던 학교 학과의 전년도 커트라인은 21%였다. 이후 학교장 추천 전형으로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4장에 걸쳐 자기소개서를 쓰고, 지금까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자료와 사진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김 교사도 상담을 통해 진석이를 지지하고 포트폴리오를 봐주면서 모의면접 연습도 함께 했다. 결국, 진석이는 목표했던 학교에 합격했다.

인명여고 학생들이 만든 각 대학 활동보고서와 포트폴리오. 아래 사진은 1년간 활동을 모아서 제작한 창체활동 기록장과 학습별 활동보고서와 자료들.
인명여고 학생들이 만든 각 대학 활동보고서와 포트폴리오. 아래 사진은 1년간 활동을 모아서 제작한 창체활동 기록장과 학습별 활동보고서와 자료들.
인명여고 학생들이 만든 각 대학 활동보고서와 포트폴리오. 아래 사진은 1년간 활동을 모아서 제작한 창체활동 기록장과 학습별 활동보고서와 자료들.
인명여고 학생들이 만든 각 대학 활동보고서와 포트폴리오. 아래 사진은 1년간 활동을 모아서 제작한 창체활동 기록장과 학습별 활동보고서와 자료들.

“포트폴리오 만들며 다양한 경험 하고 진로에 확신 가져”

김 교사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수업과 상담이 함께 가야 한다. 사실 1, 2학년은 아직 덜 깨닫는 부분이 있지만 3학년은 다르다. 고등학교 입학과 진로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며 “단순히 입시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진로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자기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 또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진로 성숙도(막연한 미래에 대한 구상이 현실적이고 실천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도 높아진다”고 했다.

‘A4 한장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대입에서 서류의 비중이 커졌다는 말이다. 인천 인명여고는 입사제로 대학을 잘 보내기로 유명하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교사들은 성적이 부진해 정시로 대학 가기 힘든 아이들을 보고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마침 입사제가 도입되면서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교사들은 학기 초부터 학교별 전형과 각 대학 활동보고서나 면접의 성향을 분석했다. 또 동아리 외에도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활성화시켰다.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창의적 체험활동(이하 창체)을 하고, 학급별로 1년간 캠페인이나 멘티-멘토 활동 등 자율 활동을 벌였다. 이를 바탕으로 창체활동 기록장과 학급별 활동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활동 중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모아서 포트폴리오에 넣는다. 강인실 진로진학상담부장은 “아이들의 활동은 다 무형자산이다. 평소 일지를 작성해놓지 않으면 없어져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 교내에서 영어 경시대회나 논술, 토론대회도 만들었다. 이런 활동으로 입사제 합격률이 높아지면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학교에서도 이 정도는 다 하고 있다. 인명여고가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은 ‘교사’였다. 교사가 얼마나 움직였느냐가 입사제의 성패를 좌우한 것이다. 입시 기간이 되면 3학년 교사들은 폐인이 됐다. 보통 9, 10시까지 상담을 하고 집에 가서 밤새 추천서를 썼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대학과 과를 결정하는 것부터 자소서, 추천서, 포트폴리오 준비까지 최선을 다했다. 강 부장은 “추천서는 노하우가 아닌 학생에 대한 애정이다. 단순히 학교에서 만들어주는 스펙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학생 한명 한명을 관찰해 진심 어린 서류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 결과, 단순 내신으로 따졌을 때 올해 입시에서 1등에서 80등 중에 68명이 입사제 전형에 합격했다.

특히 그는 입사제가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얘기는 왜곡됐다고 지적하며 “학교 현장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언론이 만든 비판적 여론과는 다르다. 오히려 입사제로 교외체험을 인정하지 않자 공교육 정상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 갔다. 이건 똑똑한 아이들만, 그것도 컴퓨터가 성적만 보고 뽑는 거”라며 “이제는 학교생활만 열심히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 발전 가능성이 있고 열정이 있는 아이들이 실제 입사제로 대학에 가서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잘한다는 보고도 있다”고 했다.

3학년 김휘수양은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다양한 경험도 하고 진로에 대해 확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며 “선생님이 우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셔서 서로 친밀도도 높다”고 얘기했다. 배민영양도 “입사제를 준비중인데 교내에서 다 소화가 되니 학원비가 덜 든다. 매일매일 내가 했던 활동을 확인하면서 적어둔다. 전에는 고등학생 되면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만 하는 줄 알았는데 동아리나 자치활동 하면서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학교생활이 재밌어졌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w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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