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노릇을, 부모 된 사람의 됨됨이가 아니라 경제력과 정보력이 좌지우지하는 세상! 아니 다들 그렇게 믿고 있는 세상. 하지만 정말 인정할 수 없다.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현상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절실한 국가적 대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가정 차원으로 내려가면 부모들에게 심각한 착각을 일으킨다. 부모 역할의 핵심을 경제력과 정보력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막강한 경제력과 정보력을 휘두르는 부모들 앞에서 아이들은 하나둘 쓰러져 간다. 경제력과 정보력에서 절대 열세인 부모들은 희망을 보지 못한 채 절망하고 포기한다.
갈수록 간절해지는 학부모교육
갈수록 학부모교육을 대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부모의 욕망과 불안감을 자극하는 교육에 맞서 희망과 대안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강해진다. 자신의 경제력과 정보력을 믿고 광분하는 부모들을 진정시켜야 할 이유는, 그런 부모는 물론 건강한 우리 사회를 위해서 너무도 많다. 하지만 뾰족한 수를 찾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학부모교육이 봇물이지만 학부모들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학부모로서의 삶 전반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다. 짧은 경우 50분이 주어진다. 정말 고민이 깊어진다. 밋밋한 말을 대체할 수 있는 영상 등 각종 자료들을 수집한다. 정말 부모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 편집 작업에 들어간다. 얼마 전, 금요일 저녁 8시에 학부모교육 요청이 있었다. 주어진 시간 1시간, 지역은 학부모들의 불안과 욕망이 넘쳐나는 곳.
사전 협의를 통해 ‘흔들리는 부모 역할 바로잡기’라는 주제를 골랐지만 고심 끝에 당일 오후에 방향을 틀었다. 그렇지 않아도 피로감을 느끼는 부모 역할에 대한 훈수보다는 아이들의 공부 문제를 다루어야 늦은 밤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쟁에 강한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그러니까 경쟁에 취약한 아이들도 얼마든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강조하기로 했다.
“부모가 아이의 ‘공부 개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무작정 경쟁으로 내몰게 되면 이미 승부는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경제력과 정보력을 발휘해도 불리한 경쟁에 휘말린 아이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없다. 바쁘게 정보 수집해서 아낌없이 투자했건만 후회와 원망만 남을 뿐이다. 종종 과도한 공부 부담에 시달린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격을 가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어떤 가정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면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부모도 함께 느끼기 위해 노력하면 전혀 다른 길이 열린다. 지금 당장 등수와 점수 경쟁에서는 밀릴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의 공부 스타일에 맞게 자신에게 적합한 배움의 속도대로 나아간다면 역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말 열변을 토했지만 공부를 못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패배자를 위한 위로 또는 패배자들의 자기 합리화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이 되었을까 고민하는 순간 어떤 부모로부터 받은 메일이 생각났다.
‘공감’이라는 두 글자
저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사탕이 5개 있습니다. 형하고 동생하고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 1학년 수학시험이었습니다. 저희 큰아이는 2개, 2개라고 썼답니다. 단순히 숫자를 나누는 방법을 묻는 시험문제를 틀린 아이가 이상해서 선생님이 물어보셨대요. ‘형아라고 3개 먹고 동생이라고 2개 줄 수 없잖아요.’ 아이는 그렇게 대답했답니다.
유난히 우애가 깊은 저희 두 아이. 세월이 흘러 지금 그 아이는 고3이란 힘든 시간을 살아내고 있고, 그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저희 둘째아이는 올해 중1이 되었답니다. 어려서부터 엉뚱하고 모험심 강하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늘 엄마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두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내가 못살겠다는 말을 더 많이 해왔던 것 같습니다. ‘너는 아무쪼록 잘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해. 그럼 너랑 비슷한 아이를 가진 엄마들에게 큰 희망이 될 거야.’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나면 으레 이런 말로 제 맘을 달래며 아이와 마무리를 짓곤 했어요. 어리석게도 제가 말한 그 훌륭한 사람이라는 게 공부 잘하는 아이를 뜻하는 말이었다는 걸 큰애가 중학교에 들어가 사춘기를 겪으며 공부를 손에 놓았을 때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무슨 성인군자쯤 되는 줄 착각했었나 봅니다. 아니 처음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믿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그런데 그 제자리라는 것도 실은 제가 기대하고 있던 자리였지 그 아이 자신의 제자리는 아니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저와는 너무나 다른 제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부모교육, 심리 상담, 대화법, 성격유형검사(MBTI), 에니어그램… 열심히 쫓아다니며 배우고 연습하고 꾸역꾸역 머리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짜 담았어야 할 것을 담지 못했다는 것을 5년 동안 방황하는 아이를 지켜보면서야 깨달았습니다.
공감이란 두 글자. 그냥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고 맞장구쳐주고 느껴주기만 하면 될 것 같은 그 두 글자를 저는 너무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와 저희 아이 사이에 흐르던 시내는 결코 건너지 못할 바다가 되어버려 있었습니다.
고2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저는 아이에게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교 ‘골든벨’ 녹화분이 오늘 방송되는데 사정이 생겨서 못 보니까 대신 봐달라고요. 아이가 학교 자체예선부터 떨어진 것을 알던 터라 관심이 없어 안 볼까 하다가 혹시 지나가는 화면에라도 나오는지 봐달라는 어린애 같은 말에 티브이를 켰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형아를 좋아하는 둘째아이도 빠짝 다가앉아 형아를 찾아 숨은그림찾기를 했고, 이따금 아는 문제가 나오면 정답을 외치며 흥분하기도 했지요. 한 시간 동안 아이 모습은 어느 화면에도 비치지 않았고 괜히 쓸데없는 시간만 허비한다는 남편의 핀잔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녹화가 있던 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아이는 제작팀이 지시하는 대로 방청석의 한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긴 시간 주인공도 아닌 배경이 되어 앉아있었을 제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정답을 알고 있어도 인정받을 수 없는 순간에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성적 따라 자신의 위치가 정해지는 그 시간들, 지난 5년 동안 아이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을까. 그런 아이에게 나는 얼마나 모질게 비난하고 다그쳤던가. 얼마나 냉정하게 내몰았던가.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주인공이 못 되느냐고 야단치기보다, 언젠가는 네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가, 시간이 올 거라고 말해주지 못했던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때의 뜨거운 가슴을 오늘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다시 느꼈습니다. 아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저는 부모 역할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으로 방향을 잃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도리
글을 통해 얼마나 느낌이 전달될지 모르겠다. 종종 강의 말미에 ‘사자 크리스티앙’이라는 동영상을 보여준다. 새끼 사자를 키우다가 결국 아프리카의 야생으로 돌려보냈는데 나중에 다시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사자의 야성까지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인간의 사랑을 강조하면서 부모 사랑으로 방향을 돌린다.
“점점 정글로 변해가는 우리 현실에서 아이들 마음에 자꾸 짐승의 야성이 스며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모의 사랑이 정말 절실한데 부모 도리를 경제력과 정보력으로 착각하는 부모들이 사랑이 정말 필요한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야성적으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부모 역할의 핵심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공감’을 선택한다. 많은 부모들이 공감하리라 믿는 메일 내용에서 다시 옮긴다.
‘공감이란 두 글자. 그냥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고 맞장구쳐주고 느껴주기만 하면 될 것 같은 그 두 글자를 저는 너무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공감이 없는 경제력과 정보력은 아이들을 죽인다. 반면 경제력과 정보력이 없어도 공감이 충분하면 아이들은 개천의 용이 된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박재원의 부모효과> 저자
<한겨레 인기기사>
■ 애플 CEO, 중국에 “미안합니다” 사과…왜?
■ ‘상지대 욱일승천기’ 대국민 사과
■ 석가탑 사리공 47년만에 다시 드러나
■ ‘상지대 욱일승천기’ 대국민 사과
■ 서강대 ‘짠물 학점’ 풀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