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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때려도 처벌받으면 끝? ‘진정한 화해’ 이루는 방법 있어

등록 2013-04-01 10:23

지난 2월22일 ’회복적 정의 조정자 프로그램’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서로 역할을 정해 실제 학교폭력 사건 조정과정을 재연하고 있다.  갈등해결센터 제공
지난 2월22일 ’회복적 정의 조정자 프로그램’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서로 역할을 정해 실제 학교폭력 사건 조정과정을 재연하고 있다. 갈등해결센터 제공
회복적 정의 조정자 프로그램
회복적 정의 목적은 치료와 처벌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
교사나 부모, 사회가 가해-피해 학생의 조정자 역할 해야
“미라야, 우리 진주를 왜 때린 거니?”(진주 부모님)

“진주가 평소에 제 욕을 하고 다니고 제가 빌려줬던 아빠 운동화를 약속한 날짜에 돌려주지 않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 어쨌든 때린 건 잘못이니까 진주한테 미안해요.”(미라)

“음, 그랬구나. 나도 처음엔 화가 많이 났지만 너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그래도 잘못했다는 걸 알고 반성하고 있긴 하구나.”(진주 부모님)

(…) “진주야,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고 하던데, 괜찮니? 그 당시 심정이 어땠니?”(미라 부모님)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많이 아팠어요. 다른 친구들이 저를 어떻게 볼까 두렵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진주)

“그래, 정말 힘들었겠구나. 미라도 당황스러워하고 본인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단다. 우리 함께 해결방법을 찾아보자.”(미라 부모님)

실제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마주앉게 된다면 어떨까. 이 상황보다 훨씬 더 언성을 높이고 감정 섞인 말이 오가지 않을까. 위의 대화는 실제 상황은 아니다. 얼마 전 중학교에서 일어났던 학교폭력 사건 조정과정을 ‘핫시팅’(역할배우들을 의자에 앉혀놓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연극기법)으로 재연해 본 것이다.

지난 2월22일, 서울의 한 강의실에서 ‘회복적 정의 조정자 훈련 프로그램’이 열렸다. 20여명의 참가자들은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이하 학폭위) 위원으로 활동중인 교사나 학부모부터 노무사, 화해권고위원 등 다양했다. 참가자들은 먼저 핫시팅을 통해 학교폭력 사건을 들여다보고 해결을 위해 실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아봤다. 각자 피해-가해 학생과 부모, 교사 등의 역할분담을 한 뒤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피해 학생 역을 했던 엄금옥씨는 “맞았다는 수치감에 오히려 당당할 수 없었다. 특히 가해자 부모가 미라가 때린 이유를 자꾸 나한테서 찾으려고 하는 느낌을 받아 서운했다”고 말했다. 이에 가해 부모 역을 맡은 전상희씨는 “한심하고 답답했다. 당사자로서의 나는 원인을 자꾸 피해자로부터 유추해볼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피해 아이의 어딜 봐서 우리 애가 같이 어울렸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 무기력하거나 회피하려는 교사의 모습을 보니 학교에 대한 원망도 들더라”고 털어놨다.

가해 학생 역을 한 황금명륜씨는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고 이 자리에 오면 두려움에 진짜 견디기 힘들겠구나 싶더라”며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안 통하겠다 싶어서, 빨리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잘못했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했다. 교사를 담당했던 명희씨는 “내가 하는 말이 어느 한쪽을 편드는 말이 될까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부모들은 당연히 자기 아이를 먼저 챙기는데, 교사 입장에서는 두 아이 모두 다치면 안 되니까…”라며 곤란함을 얘기했다.

일반적으로 사건이 터진 뒤 당사자들이 무슨 경험을 하는지 알았다면, 해결을 위해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지 방법도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보통 폭력사건이 생기면 “누가 때렸어?”부터 묻고 가해자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피해자의 입장이 고려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치료와 처벌 사이의 균형, 이것이 회복적 정의의 접근방법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사건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온전한 회복을 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점이 필요한지, 중재자 그룹은 이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줄 수 있는지 각자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피해를 본 사람은 누구인지’, ‘그들은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의 요구를 채우고 피해를 회복하고 관계를 바로잡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였다. 가해자-피해자-조정자 역할로 모둠을 지어 직접 회복적 정의를 기반으로 한 조정 실습을 거친 뒤 가해자, 피해자, 조정자끼리 각각 모였다. 둘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것, 충족되어야 할 것을 얘기한 뒤 서로 주고받았다.

피해자 모둠은 “나의 고통을 가해자가 알도록 하고, 가해자의 동기를 직접 들은 뒤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면 한다. 상처에 대해 치료비와 심리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해자 쪽은 “상황에 대한 맥락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 두려움이나 낙인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책임을 인정하고 문제 해결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에 대해 도움을 받고 싶다”고 밝혔다.

박수선 강사는 “피해자가 소외되고 가해자에게 사회적 냉대를 보내거나 낙인을 찍는 상황은 현 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며 “처벌만 중시되며 화해와 치유의 기회는 부족하다. 회복적 정의의 궁극적 목적은 범죄로 인해 파괴된 가해자와 피해자 및 사회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가한 목동중 최은경 교사는 “학폭위를 담당하고 있는데, 학생생활기록부에 올라가는 걸 우려해서 억지스럽게 화해하는 척하는 경우도 있고, 학교평가에 영향을 받을까봐 무마하면서 해결하기도 한다”며 “부모들끼리 학폭위로 가면 갈등이 첨예화돼서 아이들한테 ‘너 쟤랑 얘기하지 마’라고 얘기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도 있는데, 지금은 그걸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복적 정의를 알게 된 뒤 자신의 교실에서 일어난 사건에 적용해봤는데 가해자·피해자 모두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그는 “학폭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이 만나는 자리 없이 대기실도 따로 쓴다. 하지만 실제 해보니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으면서 조금씩 이해를 하고 요구 수준도 떨어졌다. 무조건 학폭위를 열 것이 아니라 사전 조정 작업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김선혜 소장은 “단순히 법체계에 따라 처벌과 보상만 하고 끝나서는 안 된다. 실제 법원에 온 가해 학생은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어떻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실수로 그 일을 저질렀더라도 그걸 책임지고 그 과정을 통해서 배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똑같이 다치고 아파야 한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알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라는 것이다. 김 소장은 “회복적 정의는 대화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교사나 부모, 사회가 가해-피해 아이들이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 생활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도록 회복적 정의를 바탕으로 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회복적 정의란?회복적 정의 운동은 서구의 사법 시스템 한계를 극복하고 부족한 점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으로 등장했다. 가해자들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잘못을 바로잡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형사 사법제도 범위 안에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다양한 형태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지역 가정법원 소년부에서 화해권고제도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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