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에서 싸우던 부모와 학생, 화해권고로 화해해
처벌과 보상에만 치중해서는 제대로 된 해결 힘들어
처벌과 보상에만 치중해서는 제대로 된 해결 힘들어
2011년 9월, 수도권의 한 중학교에서 집단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교실과 화장실에서 몇 차례 동급생을 폭행했다. 피해자 부모가 가해자 학생을 고소해 가정법원 소년부로 넘겨졌다. 담당판사는 본 재판에 앞서 사건 당사자들에게 화해권고 판결을 내렸다.
이후 사건은 어떤 식으로 해결이 됐을까. 피해-가해 양쪽 당사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피해자 쪽은 학생만, 가해자 쪽은 학생과 엄마가 인터뷰에 응했다.
민재(가명ㆍ피해 학생)의 이야기
벌써 1년 반 전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같은 반의 승호와 다른 반 녀석들이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무작정 때렸다. 화장실에 끌려가서 맞기도 했다. 짜증이 났다. 이유 없이 맞아서 더 그랬다. 괜스레 걱정하실까봐 부모님께 말도 못했다.
사실 승호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친하게 지냈지만 6학년 때부터 변했다. 본인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정도가 지나쳤다. 싫으니까 때리지 말라고 얘기했지만 일주일도 채 안 갔다. 특히 복싱을 배운 승호는 자기가 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애들 앞에서 그 기술을 썼다. 나도 몇 번 당했다.
그 일이 있은 뒤, 또 다른 괴롭힘을 당한 아이 엄마의 전화로 엄마는 그 일을 알고 학교에 쫓아와 항의했다. 별다른 조치가 없자 병원에 가서 상해진단서를 떼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자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열렸다. 화해는커녕 엄마들끼리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 끝났다. 이후 학교에서는 승호에게 접근금지령을 내려 내 주변에 못 오게 하는 동시에 외부교육과 봉사활동을 하게 했다.
승호(가명ㆍ가해 학생)의 이야기
민재가 다른 친구에게 내 욕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자기를 때려서 싫다고 안 좋은 소문을 냈다는 것이다. 화가 나서 언쟁이 오가다 다른 반에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민재를 데리고 나와서 때렸다. 얼마 뒤, 고소를 당했다.
엄마는 무슨 상황인지 얘기를 들어보고 사과하려고 민재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학폭위에서 처음 만났다. 실제 상황보다 부풀려 얘기가 흘러가니까 엄마도 순간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는데 피해자의 말은 순순히 다 믿어주면서 가해자인 나는 이미 낙인이 찍혀서 아니라고 해도 안 믿어줬다. 모면하려는 게 아니라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했던 건데 너무 속상했다.
이후 법원에서 예비조정을 하고 난 뒤 화해권고 판결이 났다. 또 1, 2호 처분도 받게 돼 6개월 동안 부모가 관찰보호 하고, 엄마랑 상담도 받았다. 엄마는 법원에 가는 것 자체로 위축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나에게 친구 몸에 손도 대지 말고 장난이나 농담도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잘못한 건 알지만 나도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9개월이 지난 2012년 5월, 민재군과 승호군은 화해권고기일에 합의했다. 민재군은 “사실 그 전에 우리끼리 화해는 했지만 만나기는 불편했다.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아서 화해권고에 응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이유 없이 맞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승호의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친구에게 때리는 게 싫다고 말했던 걸 들어서 화가 났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끼리 일대일로 만났으면 부담스러워서 제대로 얘기를 못했을 거 같은데, 다 같이 만나서 서로 이야기하고 중간중간 조정자가 정리하고 조율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니까 진짜 화해가 됐다”며 “화해권고 이후 사이가 안 좋았던 부모님들도 다시 화해를 했고 지금은 학교에서도 승호를 전보다 편하게 만난다”고 전했다.
승호의 어머니도 “학폭위는 징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가해자를 완전 죽을죄를 지은 죄인 취급 하지만, 화해권고는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말하고 들을 기회가 있었다”며 “처음에는 내 억울함, 핑계만 생각하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입장을 바꿔서 ‘내가 저 아이 부모였다면 그랬을 거야’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진정한 화해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에서 시작된다. 상대를 이해한 뒤 포장하지 말고 본인이 진짜 미안함을 느끼고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본인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양쪽의 입장 차이가 크다. 피해자는 경황이 없어서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가해자는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축소해 말한다. 학교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보상에 치중해 제대로 된 해결이 힘들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순히 징계를 받거나 상담치료를 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다. 민재와 승호는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하는 과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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