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부산 서명초등학교에서 아이패드를 이용한 미술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자폐증상이 있는 승하군은 황두점 특수교육실무원의 도움을 받아 수업에 참여했다. 아래 사진은 승하군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직접 도자기를 만드는 모습.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앱을 직접 실행해서 수업활동에 참여
밋밋한 책에 비해 움직이며 반응하는 아이패드에 집중 잘해
밋밋한 책에 비해 움직이며 반응하는 아이패드에 집중 잘해
“여러분, 오늘 제 넥타이 색깔 어때요? 양복과 잘 어울리나요?”
“네~!”
회색 양복에 살구빛 넥타이를 매고 아이들 앞에 선 김영배 교사는 “오늘 특별히 배색에 신경을 좀 썼죠(웃음). 이번 시간에는 도자기를 직접 만들면서 배색에 관해 배울 거예요”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부산 서명초등학교 5학년 2반 교실. 이날 미술시간의 주제는 ‘색의 느낌을 살려 표현하기’였다. 김영배 교사는 배색에 대해 설명한 뒤 칠판에 다섯 색깔의 종이를 붙였다. 모둠을 지어 앉은 아이들은 각자 논의를 한 뒤 팀별로 한 가지 색깔의 종이를 골라 나눠가졌다. 김 교사는 “자, 이제 도자기를 직접 빚어볼까요?” 하며 학생들에게 아이패드 미니를 하나씩 나눠줬다.
모둠을 지은 아이들 사이에서 승하군이 눈에 띄었다. 자폐증상이 있는 승하군 옆에는 황두점 특수교육실무원이 항상 붙어 있다. 생활지도는 물론 수업시간에 승하군의 학습을 돕기 위해서다. 김 교사는 교실 앞 텔레비전 화면에 ‘포터리’(pottery)라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실행해서 직접 도자기를 빚었다. 돌아가는 물레 위에 놓인 흙으로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의 도자기를 빚고 문양과 색깔을 입히는 앱이다. 완성되면 도자기의 갈라짐이나 색의 조화, 문양 등을 평가해 자동으로 점수도 매겨진다.
김 교사의 시범이 끝난 뒤 아이들은 각자 능숙하게 아이패드를 이용해 자신만의 도자기를 빚었다. 아까 모둠별로 골랐던 색깔을 배경으로 했을 때 어떤 빛깔의 도자기가 잘 어울릴지 고민했다. 설명하는 내내 집중을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던 승하는 아이패드를 받자마자 행성의 실제 사진을 볼 수 있는 앱만 쳐다봤다. 잠시 뒤 황 교사가 “승하야, 우리도 멋진 도자기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하자 승하는 김 교사가 얘기한 앱을 실행시켜서 도자기를 빚기 시작했다. 몇 분 뒤 푸른빛을 띠고 전체적으로 문양이 들어가 있는 호리병 형태의 도자기가 완성됐다. 아이들도 자신들의 수만큼 다양한 도자기를 빚어냈다.
김 교사는 물론 아이들도 100점을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승하는 150점이나 나왔다. 옆에서 구경하던 황 교사가 놀라며 칭찬하자 승하는 기분이 좋았는지 두 손을 번쩍 들어 하이파이브를 했다. 다른 아이들도 신기해하며 “유승하, 진짜 대단하다”고 한마디씩 했다.
수업이 끝난 뒤 승하에게 수업이 재밌었냐고 묻자 바로 “재밌었어”라고 답했다. 종이교과서와 아이패드를 나란히 두고 둘 중 어떤 걸로 공부하는 게 더 재미있느냐고 재차 묻자 승하는 주저 없이 아이패드를 집으며 “이거”라고 얘기했다.
아이패드는 승하에게 둘도 없는 학습도우미이자 유능한 ‘교사’다. 김 교사는 “승하가 아이패드를 쓰면서 많은 변화가 왔다. 예전에는 수업시간에도 계속 돌아다니고 아예 교실 뒤편으로 가서 혼자 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시간에 승하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승하가 쓰는 아이패드는 김 교사의 딸이 쓰던 것이었다. 승하 같은 아이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딸을 설득해 받아서 준 것이다.
김 교사가 자폐 증상이 있는 학생을 맡은 건 처음이다. 자폐증의 특성상 눈을 안 마주치고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이티(IT)기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아이패드를 활용한 수업연구를 했고, 승하에게도 적합하다는 걸 알게 됐다. “책은 밋밋하지만 아이패드는 색도 화려하고 움직이면서 반응이 바로바로 오니까 아주 좋아하고 집중을 잘했어요. 책으로 한글을 배울 때는 지루해하고 딴짓을 했는데, 아이패드를 통해 알려줬더니 바로 따라서 공부를 하더라고요(웃음).”
옆에 있던 황 교사는 평소 승하군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관심사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승하는 천체나 지도, 국기를 좋아한다. 관련 앱을 찾아 내려받아주면서 함께 공부도 한다”며 “대부분 유료 앱이 많아서 아쉽다. 특수교육 교재로 쓸 만한 무료 앱이 많이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김 교사도 “특수장애 학생이 한 학교에 한두 명인데, 학교 입장에서는 그들을 위해 투자하기가 부담스럽다”며 “비용의 효과를 따지기 때문에 쉽지가 않은 건데, 그러다보니 그 아이들이 소외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똑똑한 아이들은 아이패드가 없어도 잘한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학습 또는 생활하기 힘든 아이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는 효율적인 학습보조기구”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경우, 특수교육에 태블릿피시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8월에 스마트교육 모델학교로 지정됐다. 이후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스마트교육 관련 연수도 진행한다. 이형규 교장은 “이 지역이 낙후됐고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많은 편이지만, 교사들의 노력 덕분에 아이들이 아이패드로 공부하게 됐다”며 “이걸로 성적을 많이 올리겠다는 생각보다 아이들의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4, 5, 6학년에 한 학급씩 돌아가면서 쓰지만 내년까지 학교 자체예산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교생에게 태블릿피시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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