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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교수의 공부 상처 상담 10단계
학습부진아들을 도운 교사들의 사연에는 아이들의 공부 상처가 뭔지를 들여다봐주는 과정이 있다. 얼마 전, <공부상처>(3면 참고)를 쓴 김현수 교수(관동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교수)는 이 책에서 ‘김현수의 공부 상처 상담 10단계’를 소개한다. 아이가 어떤 이유로 공부가 싫어졌는지 공부 사연을 듣고 내면을 어루만지는 작업은 아이를 배움으로 다시 이끄는 중요한 첫 단추다.
① 공부 상처 들어주기 ② 공부 상처의 사연 함께 이해하기 ③ 재미있는 것 가운데 더 열심히 잘할 만한 것 고르기 ④ 제한된 시간에 공부 방법 배우기 ⑤ 자기 칭찬하는 법 배우기 ⑥ 목표 설정 및 시간 관리 배우기 ⑦ 공부와 화해하기
⑧ 재미없는 것에 조금씩 도전해 보기 ⑨ 자신의 꿈 찾기 ⑩ 한 걸음씩 나아가기
<공부 상처>(에듀니티) ‘김현수의 공부 상처 상담 10단계’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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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선생님 저 왔는데요.”
교사: “응. 오늘은 10쪽부터 12쪽까지 풀 거야. 문제 먼저 풀어보고 틀린 거 점검해보자.”
인천시 한 중학교에 다니는 1학년 최아무개군이 6학년이었던 지난해 받았던 방과후 보충지도는 이런 방식이었다. 틀린 문제가 수두룩하게 나오면 교사는 왜 답이 1번이 아니고 2번인지 이유를 설명했다. 한 학기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보충지도를 받기로 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네 번 나가고 도망쳤다. 최군은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집 푸는 게 너무 지겹고, 잘 모르겠더라. 그리고 남아서 하는 게 쪽팔렸다”고 했다.
이른바 ‘학습부진아’라 불리는 많은 초등학생들이 이런 식의 보충지도를 받는다. 고교로 올라가면 과목별 수준별 반편성 등으로 열반에 들어가 공부한다.
학습부진아란, 정상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잠재능력이 있지만 환경요인,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 학습습관 등의 요인으로 교육과정상에 설정된 교육목표에 비춰볼 때 최저 학업성취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습자를 말한다. 흔히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등 무기력증을 보이는 학생들을 두고 ‘부진아’라는 낙인을 찍는다. 깊게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공부를 놓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빈곤이 돌봄 부재로 이어지고, 학습부진의 계기를 마련하는 경우는 가장 일반적이다. 초등학교 3학년 홍아무개군은 전형적인 방치형 학습부진아다. 홍군이 집에서 눈뜨고 있을 시간에는 늘 아무도 없다. 공장에서 일하는 부모님은 새벽 6시에 나가 밤 11시에 귀가한다. 홍군에게는 애정결핍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자기관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 배운 적이 없는 채로 방치됐다. 이 배경에서 홍군은 자연스럽게 학습설계 자체를 하지 못한 채로 자랐다. 학부모 공개수업 때 소리를 지르고 엉뚱한 소리를 해서 교사를 난감하게 하고 수업을 망칠 정도로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던 아이가 3년 뒤 6학년 기말고사에서는 “수학 2등을 했다”며 3학년 때 담임을 찾아왔다.
당시 담임이었던 김중훈 월간 <좋은교사>편집장은 “돌봄 부재에서 비롯된 아이의 애정결핍을 들여다보게 됐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 홍군은 교사를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아무도 생활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은 상황에서 통제가 안 되는 것 같아 교사와 아이 사이에 약속과 규칙을 만들었다. 쿠폰 칭찬 등 적절한 격려를 더하면서도 엄격한 채찍도 했다. 규칙을 만들자 홍군은 점점 스스로의 생활과 학습을 관리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학습부진의 이유를 부모의 경제적 조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학습부진아’라는 공식을 깨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고1 최군은 꽤 잘사는 집 아이지만 일종의 공부억압으로 배움을 손에서 놓은 경우다. 방학에는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고,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중학교 때 국어 성적은 2학년 때 40점, 3학년 때 20~30점 수준이었다. 서술형, 논술형 평가에선 백지를 내기 일쑤였다. 수업 시간에는 잠도 오지 않는데 억지로 잠을 자려고 고개를 숙였다. 운동을 한 적이 있어서 덩치는 크지만 언어표현이 구체적이지 못해 우둔한 느낌을 주고 아이들 사이에서 무시를 당했다.
극복의 계기를 마련한 건 중학교 때 국어교사였던 최아무개 교사였다. 최 교사는 배움에 열정이 있다가 이렇게 의지를 잃어버리고 학습부진아가 된 아이들이 안타까워 메모하기, 마인드맵, 단어연상, 칭찬하기, 보상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처방을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단기적인 성과에 머물렀다. 이유를 고민하다가 이런 친구들의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몇 학년 때부터 수업이 재미없게 된 거야?” 최 교사는 이런 질문들을 통해 최군의 공부 상처를 들여다보게 됐다.
“어릴 때 책은 많이 봤다고 하던데 알고 보니 늘 혼자서 읽었더군요. 부모와의 대화나 소통을 통해 예측하고 비판하는 등의 긍정적 자극을 받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또 초등 4학년 때 사회, 수학 시험이 더해지면서 학습량에 부담을 느꼈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너는 이것도 못하냐?’며 원치 않는 운동을 시켰습니다. 그것도 안 되자 결국 학원에 과외를 붙였죠. 부모님 입장에선 아이를 위해 돈을 쓴 건데 그게 오히려 폭력이 된 경우였습니다.”
공부 때문에 상처 받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최군에겐 일종의 처방이었다. 교사와의 대화를 통해 최군은 많이 변했다. 수업 때 엎드려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려는 노력도 보였다.
학습부진이 누적되면 회복은 어려워진다. 올해 용인의 한 고교 2학년이 된 서아무개군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복 불가능한 상황의 학습부진아였다. 서군은 같은 반 친구들보다 한 살이 많다. 부모님이 이혼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가출도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다. 학습부진아로 고교생이 되면 기초부터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따라가기가 어렵다. 그런 서군의 수업 태도가 같은 학교 친구들조차도 “이건 기적이다”라고 할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공개수업 덕분이다.
“왜 힘들었니?” 개인의 공부아픔 들여다보는 게 첫단추
고아무개 과학교사는 “영상물을 보고, 중요한 부분을 찾아내거나 교과서를 보고 생각해볼 거리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식의 참여형 공개수업을 해본 뒤로 아이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아이한테 물었더니 수업에서 자기가 참여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하더라”고 했다. 학습부진아를 학급 평균을 깎아 먹는 낙오자가 아니라 교실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돕는 ‘수업디자인’이 왜 필요한지를 말해주는 이야기다.
“병신 같은 새끼. 공부도 못하고 반 평균이나 깎아먹는 주제에.” 흔히 학습부진아를 두고 친구들조차도 이런 취급을 한다. 김중훈 편집장은 “아이들이 걷고, 한글을 떼는 시기가 다 다른 것처럼 아이들 누구에게나 공부에 대한 잠재 능력이 있고, 그걸 발현하는 시기가 다르다. 하지만 학습부진아라고 낙인을 찍고 보면 다시는 공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고 했다. 이런 배경에서 ‘학습부진아’라는 말 대신 ‘노력형 학습자’(struggling learner) 또는 ‘배움이 느린 아이’라는 표현을 쓰는 교사들도 있다.
다양한 이유로 배움의 끈을 스스로 놓아버린 아이들을 같은 틀에 넣는 처방이 이뤄진다는 점도 문제다. 그러잖아도 이해가 안 되는 정규 수업 시간을 견뎌낸 아이들은 다시 문제풀이로 이뤄진 보충지도를 받다가 그나마도 있던 의욕을 아예 상실해버린다. 그 결과 시험성적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대개 일 년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학생 개개인에게 적용한 본질적인 처방이 아니라 시험 결과를 위한 처방인 탓이다. 학습부진의 이유와 양상은 다르지만 학습부진을 극복한 학생들 곁에는 공부를 놓게 된 근본적 이유를 들여다본 교사가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고 교사는 “단순히 학습부진아라는 시각보다는 ‘저 아이가 왜 참여를 못할까?’, ‘왜 관계가 원활히 맺어지지 않을까?’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때”라며 “현재는 노력형 학습자를 지나치게 점수화해 거르는 구조인데 아이들이 교실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배움을 만나고 느꼈는지를 살펴보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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