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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만 돈 쌓아두면 내수 경기 안 좋아져
‘기회비용’ 따져 소비·저축 결정해야 합리적
은행에만 돈 쌓아두면 내수 경기 안 좋아져
‘기회비용’ 따져 소비·저축 결정해야 합리적
[난이도 수준: 초등 고학년~중1]
최근 ‘재형저축’이라는 금융상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재형은 ‘재산형성’을 줄인 말입니다. 재산을 만들도록 돕는 저축이라는 뜻이죠. 정부가 나서서 재형저축 가입자가 ‘재산을 형성’하도록 다른 저축에 견줘 이자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 이르면 2월 말, 18년 만에 부활하는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이 2%대로 추락한 가계 저축률을 끌어올릴지 주목된다.
22일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재형저축 가입 대상과 면세율 등을 담은 소득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무리해 조만간 확정한다고 밝혔다. 1976년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이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인 재형저축은 당시 연 10% 기본금리에 정부와 회사에서 주는 장려금을 합해 연 14~16.5%의 고금리를 챙길 수 있는 대표적인 서민 저축상품이었다. 정부가 1995년 재원 부족으로 폐지했던 재형저축을 재도입하는 까닭은 급락하는 가계 저축률 때문이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가계 저축률은 1988년 25%대까지 상승했다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고 2011년에는 2.7%까지 급락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저축률이 잠깐 상승했는데 이는 급격한 소비심리 위축 탓이었다. (응답하라, 저축률!/<한겨레> 2013년 1월23일)
재형저축은 서민들이 재산을 좀 더 쉽게 모을 수 있게 하려고 만들어졌다지만, 또다른 목적은 저축을 많이 하도록 유도해서 저축률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돈을 적게 쓰고 아껴서 모으라는 얘기이죠.
그럼 저축을 많이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다들 아는 것처럼, 벌어들인 돈을 당장 다 써버리면 나중에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쓸 돈이 없겠죠. 당장 갑자기 큰 병이 걸리거나 사고가 날 경우에 모아둔 돈이 없다면 낭패를 볼 겁니다. 저축은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돈을 모아두면 값비싸지만 꼭 필요하거나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살 수 있습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저축은 꼭 필요합니다. 은행에 모인 돈을, 기업들이 빌려가서 그 돈으로 공장 짓는 데 쓰기도 하고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기업들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은 월급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개인이 저축한 돈은 기업으로 흘러들어가 생산활동에 투자된다는 점에서, 저축률이 높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돈을 쓰지 않고 최대한 저축하기만 하면 좋은 걸까요? 소비를 줄이고 저축률을 마냥 높일수록 경제에 도움이 될까요?
# 내수가 심상찮다. ‘지지부진’하던 모양새에서 크게 ‘악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내수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소비는 지난달 들어서 크게 뒷걸음질 쳤다. 9일 기획재정부가 밝힌 ‘최근 경제동향’을 보면, 8월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각각 6.1%, 3.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의 주체인 가계가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만큼 소비 여력은 쉽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부터 감소세를 이어온 소비재 수입이 8월에도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이면서 이런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정부는 내수 침체를 비롯한 경기 급랭에 맞서 지난 6월 8조5000억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데 이어 10일 3조원 안팎의 추가 재정투자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내수 악화 조짐’에 강남 사는 김여사도 지갑 안연다/<한겨레> 2012년 9월10일)
소비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서 정부가 내수를 활성화하려고 한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소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는 것일 겁니다. 쉽게 생각해보더라도 물건을 소비해야 그 물건을 만든 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소비가 많아져서 기업이 제조한 상품이 잘 팔리면,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기업들은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생산을 더 늘리기 위해 공장을 짓고 더 좋은 기술을 연구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또다시 일자리가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소득도 늘어나게 될 겁니다.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금도 늘어나겠죠. 이런 순환이 원활히 이뤄진다면 국가경제가 성장하게 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돈을 쓰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데 소비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잖아요. 여가를 즐기고 공부를 하고 또 병원에 가고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돈을 써야만 합니다.
저축도 해야 하고 소비도 해야 하는데, 저축을 많이 하려면 소비를 줄여야 하고 소비를 활발히 하려면 저축을 줄일 수밖에 없으니, 소득에서 얼마를 소비하고 어느만큼 저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일까요? 이때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도움이 됩니다. 일정한 돈을 기준으로, 저축을 하면 소비를 할 수 없고 소비를 하면 저축을 할 수 없으니, 저축의 기회비용은 소비이고 소비의 기회비용은 저축인 셈이죠. 따라서 기회비용을 따져서, 저축이 나중에 더 가치가 크다면 저축을 하고, 소비의 미래 가치가 더 크다면 소비를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꼭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알아보고 가장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 소비라면, 합리적 저축은 꼭 써야 할 돈과 안 써도 되는 돈을 구분해서 안 써도 되는 돈을 저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치스런 소비를 일삼다가 나중에 꼭 써야 할 돈이 없거나, 꼭 써야 할 돈을 아껴 저축하다가 미래에 더 큰 가치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테니까요.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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