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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누구를 위한 ‘청소년보호’인지 모르겠어요

등록 2013-03-18 10:34수정 2013-03-18 16:47

지난 7일, 서울의 한 강의실에서 청소년단체인 청소년활동기상청에서 기획한 ‘청소년, 법을 탐하다’에 참석한 학생들이 박주민 변호사의 강의를 듣고 있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강의실에서 청소년단체인 청소년활동기상청에서 기획한 ‘청소년, 법을 탐하다’에 참석한 학생들이 박주민 변호사의 강의를 듣고 있다.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법 강좌
인격 성장이란 ‘목적’과 유해 차단이란 ‘수단’이 전도돼
청소년보호법, 추상적 잣대 들이대며 무조건 막으려고만
강의실에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메 아메 아메 아메 아메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

이쁜 여자와 담배 피고 차 마실 때

메뉴판이 복잡해서 못 고를 때~ (…)

다른 여자와 입맞추고 담배 필 때~”

한참 뒤, 강의에 나선 박주민 변호사가 묻는다. “이 노래 아세요? 제목이 뭐죠?” 학생들은 “아메리카노!”라고 답했다. 박 변호사가 “제가 이 노래를 왜 들려드렸을까요?” 하자 한 학생이 “19금 판정 난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 이유를 되묻자 여기저기서 “담배!” “술!” “바람피운 얘기”라고 답했다.

맞다. 이 노래는 ‘십센치’라는 밴드가 불러 공공연히 히트를 쳤던 곡이다. 하지만 지난해 가사에 건전한 이성교제와 만남을 왜곡하고 술, 담배가 나온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된 바 있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강의실에 20여명의 청소년들이 둘러앉았다. 청소년단체인 ‘활기’가 마련한 청소년 법 강좌 ‘청소년, 법을 탐(探, 耽)하다’가 열린 자리다. 강좌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아수나로’,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 내놔라 운동본부’, 진보신당 청소년위원회 등 청소년 관련 단체에서 활동중이었다. 총 7차시 중 이날은 4차시로 ‘보호는 울타리인가, 올가미인가’라는 주제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의 박 변호사가 강의를 맡았다.

그는 다시 질문했다. “청소년 보호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청소년이 접근해도 되는 것, 아닌 것을 어른들의 기준으로 결정하는 거요”, “보호라는 말로 있어 보이게 하고 실제로는 자기들 원하는 대로 아이들을 키우려 하는 거요”라는 학생들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는 “청소년에게 유해한지 무해한지를 어른들이 결정하고 성장이라는 것도 자신들이 정의 내린다”는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정리한 뒤 미국과 독일, 우리나라의 청소년보호에 대한 정의를 비교했다. “세 나라의 청소년보호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틀은 사실 비슷해요. 성장과 방해 혹은 유해라는 단어가 들어가죠. 청소년을 인격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있어 방해 혹은 유해한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죠.”

그는 인격 성장과 유해함 차단 중 어떤 것이 더 근본적이냐고 물었다. 인격을 성장시키는 것이라는 학생들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격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얘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경험을 해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인격이 자란다” 등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박 변호사는 “청소년에게도 인격을 자유롭게 발현시킬 권리와 자각적 학습을 통해 성장할 권리가 있는데,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이런 기회를 봉쇄해 버리는 건 잘못됐다”고 얘기했다. 현재 청소년보호는 인격 성장이라는 ‘목적’과 유해환경 차단이라는 ‘수단’이 전도됐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청소년보호법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청소년보호체계에 대해 살펴봤다.

그에 따르면 현재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음란 매체물과 기타로 분류되는 분야에 한정해서 심의를 한다. 하지만 기타로 분류되는 것도 많고 다른 기관에서 제대로 심의를 안 하는 경우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가져오기 때문에 사실상 청소년과 관련한 거의 모든 매체에 대해 심의를 하고 있다. 청소년 유해매체나 소위 ‘19금’을 지정하는 데 가장 핵심적으로 쓰이는 법이 청소년보호법이다. 이 법은 매체를 중심으로 얘기했을 때 청소년들이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되는 환경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보호법이 욕을 많이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심의기준의 추상성”이라고 지적하며 “판단하는 사람이 자기 기준대로 추상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자기 검열을 넘어 제작을 포기하거나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젝터 화면에 청소년보호법 제9조 제1항의 내용을 띄우고 추상적 표현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욕구를 자극하는’, ‘반사회적, 비윤리적’, ‘음란한’,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등등 구체적이지 않고 애매한 표현들을 쏟아냈다. 그는 “여러분이 말한 단어 대부분이 추상적인 표현이다. 저속한 게 뭔지, 음란한 걸 어떻게 판단할지, 이걸 보면 범죄를 일으킬 거 같다고 미리 단정짓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며 “이 중에는 이미 다른 법에서 삭제되거나 인정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각 조항에 대한 세부기준이 있지만 그 표현 또한 구체적이지 않고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매체별 특성에 대한 이해나 청소년 유해성 개념의 상대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나이만 따져서 무조건 모두에게 해롭다고 차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강의가 끝날 무렵 시작 때 들었던 ‘아메리카노’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 그는 “이 노래를 들으며 흡연 욕구가 강렬해지거나 실제로 흡연을 하게 된 친구가 있나요?” 질문을 던지자마자 아이들의 실소가 터져 나왔다. 당연히 그런 학생은 없었다. 그는 “일부 어른들은 고등학교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담배를 피운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현재의 청소년보호가 아이들을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차단만 하려고 한다. 청소년의 인권성장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법 강좌 프로그램을 기획한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의 호야(활동명)씨는 “청소년과 법의 거리가 가깝지는 않다. 전문적이고 어렵기 때문이다. 활동하다 보면 법을 몰라서 막히는 부분이 많다. 한발 물러서기보다는 법이랑 친해져서 생활 속에서 직접 활용해보자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 “법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법을 알면 우리가 생각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데 그런 기회가 없어서 모른다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활기 쪽은 이번 강좌가 끝나면 그동안의 강의 내용을 묶어서 매뉴얼을 만들고 가능하다면 지역 순회 간담회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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