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논술만 딴판
프랑스·독일·영국 대입논술, 통합교과형과는 거리
“옳은 일과 그른 일은 단지 관습적인 것인가?”(문과계열), “정치행위는 역사 인식에 이끌려야 하나?”(사회경제계열), “자유롭다는 것, 그것은 어떤 장애물도 만나지 않는 것인가?”(이과계열)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4일 ‘논술을 위한 학교수업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외국 논술시험의 예로 든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의 올해 문제들이다. 바칼로레아는 프랑스의 대입 자격시험이다. 우리나라 일부 대학들은 입시에서 논술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금과옥조처럼 이 바칼로레아를 내세운다.
그러나 교육부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바칼로레아는 우리나라 대학이 치르는 논술고사와는 사뭇 다르다. 한 문장으로 ‘화두’를 던진 뒤, 수험생이 얼마나 자기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지를 주로 평가한다. 서울 상명대 부속여고에서 논술을 담당하는 권희정 교사(철학)는 “우리나라 대입 논술은 제시문과 문제 자체가 지나치게 길고 복잡해 학생들이 출제자가 요구하는 바를 파악하기에도 버거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바칼로레아는 문제는 짧지만 답안 수준은 소논문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높다”고 말했다.
세나라 모두 과목별로 치러
출제, 대학이 안하고 채점, 교사가 맡기도 독일과 영국의 대입 자격시험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부는 독일 아비투어 시험의 예시문항으로 “18세기 독일 문학이론에서 세익스피어 작품에 관한 논의가 차지하는 의의를 약술하고 임의의 독일 희곡 작품을 들어 거기에 나타난 세익스피어의 영향을 논하라”는 문제를 제시했다. 또 영국 지시이(GCE) 시험에는 “현재의 재정상태를 설명하면서 고질적인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들을 비교 논술하라”와 같은 문제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세 시험은 모두 과목별로 치르는 논술시험이다. 바칼로레아는 프랑스어와 철학 등 공통 필수과목에 계열별 선택과목을 더해 5개 정도의 과목을 치르는데, 과목당 2~4개 문제 중 하나를 선택해 논술한다. 영어, 국어, 수학, 과학 등 여러 교과 지식을 종합적으로 응용해야 풀 수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통합교과형’ 논술과는 딴판이다. 문제 출제도 대학이 아니라 정부 또는 정부가 위탁한 기관이 한다.
특히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고교 교사들이 출제와 채점을 맡는다. 이 때문에 바칼로레아에는 고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권 교사는 “더욱이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독서·토론·글쓰기 교육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학생들이 충분히 논술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른다”고 말했다. 미국도 올해부터 우리의 수능에 해당하는 에스에이티(SAT) 시험에 작문을 추가했을 뿐, 대학별로 논술고사를 치르지는 않는다. 서울 진명여고 논술 담당인 임덕준 교사(도덕)는 “고교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대학들이 저마다 고난도의 통합교과형 논술문제를 내, 입시에서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인 자료로 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인 자료로 삼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논술 선진국’들과 우리나라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보다 논술시험을 치르는 목적에 있다. 건국대 불문과 주경복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앞다퉈 2008 학년도 입시에서 논술고사의 비중을 높이려는 이유는 프랑스처럼 논술의 교육적 가치를 인식해서가 아니라, 무뎌진 수능의 변별력을 논술로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출제, 대학이 안하고 채점, 교사가 맡기도 독일과 영국의 대입 자격시험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부는 독일 아비투어 시험의 예시문항으로 “18세기 독일 문학이론에서 세익스피어 작품에 관한 논의가 차지하는 의의를 약술하고 임의의 독일 희곡 작품을 들어 거기에 나타난 세익스피어의 영향을 논하라”는 문제를 제시했다. 또 영국 지시이(GCE) 시험에는 “현재의 재정상태를 설명하면서 고질적인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들을 비교 논술하라”와 같은 문제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한국 논술만 딴판
‘논술 선진국’들과 우리나라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보다 논술시험을 치르는 목적에 있다. 건국대 불문과 주경복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앞다퉈 2008 학년도 입시에서 논술고사의 비중을 높이려는 이유는 프랑스처럼 논술의 교육적 가치를 인식해서가 아니라, 무뎌진 수능의 변별력을 논술로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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