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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기부는 훌륭한 행위지만 복지제도와는 달라

등록 2013-03-11 10:43

김진철 기자의 경제기사 바로 읽기
기부는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 사회 공헌
복지는 ‘세금으로 하는 기부’…훨씬 안정적
# 2년 전 장학금 3억원을 내놨던 보성의 기부천사가 이번에도 얼굴을 감춘 채 2억원을 기부했다. 보성군장학재단은 “지역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기금 모금계좌에 지난 4일 오전 10시께 ‘박님’이라는 이름으로 2억원이 입금됐다”고 6일 밝혔다. 농협 보성군청출장소에 개설된 장학재단 계좌엔 1억원, 7000만원, 3000만원 등 세차례에 걸쳐 입금됐다. 이 기부자는 2011년 10월14일 2억원, 나흘 뒤인 18일 1억원 등 모두 3억원을 입금해 군민과 재단을 깜짝 놀라게 만든 바 있다.(보성 얼굴 없는 ‘기부천사’/<한겨레> 2013년 3월7일)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래도, 정말 살 만한 세상이구나’ 하며 많은 사람들이 뿌듯해합니다. 거액을 선뜻 좋은 일에 쓰라며 기부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더구나 ‘이름 없는 기부천사’이니 더욱 뜻깊게 다가옵니다. 전남 보성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때마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거액의 기부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북 전주와 제주 등에서도 돈과 쌀 등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남몰래 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오곤 합니다. #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7일 오후 1시53분께 전주 노송동주민센터에는 40~5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전주시가 2년 전 세운) 얼굴 없는 천사 비석 옆을 봐주세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가 얘기한 곳에는 현금 뭉치와 돼지저금통이 든, A4용지를 담는 종이상자가 놓여 있었다. 액수는 모두 5030만4600원이었다. 5만원권 1000장이 100만원씩 10묶음으로 있었다. 돼지저금통에는 500원짜리 동전 358개, 100원짜리 119개, 50원짜리 16개, 10원짜리 80개 등이 들어 있었다. 성금을 전달한 시점과 방식, 전화 목소리 등을 살펴볼 때 지난 12년간 찾아왔던 그 ‘얼굴 없는 천사’로 보인다.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는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당시 노송동사무소를 찾은 그는 민원대에 58만4000원을 놓고 사라졌다. 그 뒤 그는 해마다 12월 성탄절을 전후해 노송동을 찾아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짤막한 쪽지와 함께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 올해도 오셨네/<한겨레> 2012년 12월28일)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는 10년 넘게 선행을 이어오며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전주의 천사는 부자여서 기부에 나서는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따뜻한 마음들이 많아진다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기부만으로 세상이 살기 좋아질 수 있을까요? 이런 기부들이 지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적 힘은 무척 크지만, 냉정하게 따진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두루 혜택이 돌아갈 정도로 큰돈이 모인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물론 대기업 재벌 회장님들도 거액의 기부를 하곤 하죠.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도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까지 여러차례 기부를 약속하고 실행해왔습니다. 대기업들도 연말이면 으레 수백억원의 기부금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돈이 모여서 수조원의 자금이 마련된다 해도, 돈의 온기가 사회 구석구석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부는 틀림없이 훌륭한 행위이지만 한계 역시 뚜렷합니다. 기부는 우선, 의무가 아닙니다. 기부는 개인의 자비심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하면 좋고, 안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도움은 지속적으로 주어지지 못하고, 받는 사람은 혜택을 받아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기부의 일회적이고 시혜적인 한계를 벗어나, 생존권의 차원에서 가난한 이들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방안이 있을까요? 그게 바로 세금을 통한 복지입니다. 똑같은 액수를 마련한다고 해도, 개인의 의지에 의존해 모으는 것보다 세금을 통해 의무적으로 정부가 모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는 게 더 안정적일 겁니다. 기부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미국은 빈부격차가 극심한 반면, 기부·자선 등이 별로 없지만 복지체계를 잘 갖춘 북유럽 국가들은 분배가 고루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물론 북유럽 국가의 복지는 세금으로 유지됩니다. 따라서 그 나라 국민들은 세금으로 충분히 이웃과 나누고 있기 때문에 기부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미국에선 천문학적 액수를 기부하는 부자들이 나서서, 세율을 높여 세금을 더 많기 걷자는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버핏세’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워런 버핏 회장은 매년 수조원씩을 기부하는 ‘기부왕’이기도 합니다. 선한 기부와 안정적인 복지가 함께 이뤄지면 금상첨화일 테지만, 두 가지가 함께 이뤄지지 못한다면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복지가 더 잘 이뤄지는 게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복지를 위해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한 사람들이, 기부가 아닌 세금으로 사회에 공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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