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10대 욕설은 공감해달라는 또다른 표현일 수 있어”

등록 2013-03-11 10:05수정 2013-03-11 10:05

인터뷰 l <나란 놈, 너란 녀석>쓴 교사들과 학생의 만남
고교 가면 친구 잘 사귀어라? 지레 긴장하지 마
나를 사랑해줘야 남과의 관계도 원만할 수 있어
어른들만 ‘관계맺기’에 대한 고민을 할까? ‘작은 사회’라 불리는 학교 안에서도 관계에 대한 갈등이 많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갈등만 있는 게 아니다. 평균 하루 10시간 이상 한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친구와의 갈등으로 학교생활이 지옥 그 자체인 학생들도 많다.

얼마 전, 인천지역에서 근무하는 교사들로 이루어진 인천교육연구소(이하 ‘연구소’)의 교사 7명은 십대들의 ‘친구 관계’에 관한 22가지 멘토링을 담은 책 <나란 놈, 너란 녀석>을 썼다. 실제 학생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어떤 또래관계 고민으로 힘들어할까? 지난 2월25일 연구소 교사들(마곡초등학교 김국태 교사, 하정초등학교 이정숙 교사, 인천해양과학고등학교 임병구 국어교사)과 학생 독자(서울 충암고 황선권군, 곽재호군, 청주 서원고등학교 김희윤양)가 만났다.

김희윤(이하 ‘김양’) “책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약속하고 신뢰는 꼭 붙어 있는 두 개 문’이라는 주제가 인상 깊었어요. ‘약속 잘 안 지키는 애다’라는 말을 듣기 싫으면 약속과 신뢰라는 가치를 기억하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늦잠을 자서 친구를 두 시간 정도 기다리게 한 적이 있었어요. 석 달 동안 말을 안 해서 매일 카카오톡(이하 ‘카톡’)을 보내고, 미안하다고 했어요. 간신히 다시 친해졌죠. 책 읽다가 그때 제가 잘 해결한 건지도 궁금해졌어요.”

이정숙(이하 ‘이 교사’) “정답은 없어요. 카톡도 보내고 3개월 동안 용서를 빌었잖아요. 그 끈기와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신뢰가 한 번 사라지면 그걸 회복할 수 없어요. 근데 노력했잖아요. 한두 번 하다가 ‘너 너무 심하지 않냐?’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될 때까지 했다는 건 굉장히 성숙한 자세입니다.”

임병구(이하 ‘임 교사’) “저는 악마의 조언을 해볼게요.(웃음) 희윤양 성격도 좋고, 착해 보이는데 늦잠 한 번 잔 것 가지고 석 달을 말을 안 하다니 그 친구도 너무하네요. 관계에서 가장 높은 경지는 내가 실수를 해도 편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 친구한테 ‘내가 버티기 해줄게. 너도 늦어봐.’ 그렇게 말해주세요.(웃음)”

황선권(이하 ‘황군’) “욕으로 소통하는 아이들 이야기에 관심이 갔어요. 요즘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김국태 교사(이하 ‘김 교사’) “자기계발서를 쓸 때 조심스러운 게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 문제로 떠넘기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욕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에서 학생들이 서 있는 위치가 불안하고, 계속해서 위기의식을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고, 학교와 학원 사이를 뺑뺑 돌며 사는데 욕이라도 없으면 뭘로 불안을 견디겠어요. 십대에게 욕은 서로 같은 의식을 소유한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끼고 싶어서 하는 일종의 ‘공감’의 표현일 수도 있어요. 그게 ‘×라’ 등으로 표현되는 겁니다. 마음을 알아주려는 따뜻한 공감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그럴수록 아무 말 안 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뜻이 통하는 공감 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양 “청소년 또래관계와 관련된 여러 주제가 나오잖아요. 이번 책은 어떤 계기로 쓰신 건가요?”

임 교사 “학교 내 수직체계가 강화되고 경쟁도 심해지다 보니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등 사람 사이 관계들이 무너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로와 공감을 주자는 뜻에서 책을 썼어요. 주목한 부분이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 문제였죠.”

황군 “부제가 ‘열일곱 살, 친구관계를 생각하다’입니다.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친구들한테도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을 물어봤어요. 근데 입시, 성적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책 내용 중에 ‘경쟁’과 관련한 것도 나오잖아요. 사실 고교 생활을 하다 보면 공부에 시달려서 관계 자체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임 교사 “사회가 학생들에게 주입한 강박이 있을 수 있어요. 흔히 고교 가면 잠을 줄이고, 친구도 덜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근데 학습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휴식, 친구들이나 선후배 등 또래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도 중요합니다. 요즘은 이른바 스펙 관리를 할 때도 성적만 있어선 안 됩니다. 너무 다양한 걸 요구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이 현실적으로 필요해졌죠. 물론 동아리가 학습이나 입시를 위한 활동만은 아니죠. 기본적으로 관계를 만들어주는 곳입니다. 경험치도 쌓을 수 있고, 멘토를 만날 수도 있죠. 부모님께서 입시 그리고 동아리 활동이 너무 상반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게 ‘나는 이 활동을 통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성장하겠다’고 잘 설득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김양 “저는 곧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합니다. 두려움이 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얼굴을 다 아는 친구들이 모여 있었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다양한 곳에서 친구들이 오기 때문에 잘 사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 교사 “오히려 좋은 걸 수도 있어요. 너무 친한 친구들이 그대로 함께 진학하게 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를 잃어버리죠. 내가 지금 아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관계만이 전부가 아니에요. 또다른 내 모습도 알고, 교감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될 겁니다.”

(왼쪽부터) 임병구 교사, 곽재호군, 황선권군, 이정숙 교사, 김희윤양, 김국태 교사가 청소년의 또래관계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임병구 교사, 곽재호군, 황선권군, 이정숙 교사, 김희윤양, 김국태 교사가 청소년의 또래관계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임 교사 “고교 체계라는 게 학급별 조직도 있지만 동아리 활동도 옛날보다는 많습니다. 학급 친구들과 지내다가 관계가 잘 안 맺어질 것 같으면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친구를 사귈 수도 있어요. 고등학교를 너무 긴장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김양 “요즘 학교폭력 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학교폭력도 친구관계에서 비롯되는 작은 문제에서 시작하는 일이 많죠. 선생님들 학창시절에도 이런 문제들이 있었나요?”

임 교사 “옛날 학교폭력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것처럼 상상을 초월했죠.(웃음)”

김 교사 “폭력에 대해 낭만적인 시각이 있었죠. 물론 그 시각이 좋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낭만성이 결여된 게 사실입니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무조건 규칙으로 해결합니다. 규칙을 적용하기 전에 한 번은 ‘무슨 일이냐?’라고 물어봐줘야 하는데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선을 명확하게 그어버리죠. 아이들 이야기를 듣기 전에 순식간에 위원회가 만들어져서 공식적인 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곽재호군 “책을 읽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김 교사 “관계 문제에서 제일 중요한 게 결국 자신이라는 겁니다. 자존감이죠. 내가 나를 얼마나 인정해주느냐가 친구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자신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내가 다른 사람한테 얼마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알아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사 “학생들은 지적받는 데 익숙해지기 쉬워요.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을 통해서 괴롭히거나 반목하거나 갈등합니다. 그걸로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부정적인 자기 자신을 만들게 되는 거죠. 자신을 스스로 북돋워줘야 합니다. 저는 한때 월급을 받으면 ‘정숙아. 한 달 동안 너무 수고했다’며 저 자신에게 선물을 하나 사줬어요. 성적이 오르면 스스로 모아둔 돈으로 자신한테 선물을 해주세요. 나를 인정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해질 수 있습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한겨레 인기기사>

국방부 ‘김병관 질문지’ 작성 새누리당 의원들에 돌렸다
북, ‘정전협정 백지화’ 실제 군사행동 나설까
“마지막 배 타고 음식점 차린다 했는데…”
18시간 줄 서 1초간 만난 차베스…화난 듯 잠들어 있었다
[시승기] 풀숲에 웅크렸던 재규어가 튀어오르듯…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윤 탑승’ 추정 차량 오후 4시 40분께 대통령실 진입 1.

[단독] ‘윤 탑승’ 추정 차량 오후 4시 40분께 대통령실 진입

군인 부모들 분노 폭발…“계엄에 아들 이용한 자 용서 못 한다” 2.

군인 부모들 분노 폭발…“계엄에 아들 이용한 자 용서 못 한다”

“체포될까 명동성당으로” 포고령 속 진보·인권단체 ‘공포의 2시간30분’ 3.

“체포될까 명동성당으로” 포고령 속 진보·인권단체 ‘공포의 2시간30분’

오늘 저녁 6시 종로·국회 등 서울 곳곳 촛불…“내란 윤석열 즉각 퇴진” 4.

오늘 저녁 6시 종로·국회 등 서울 곳곳 촛불…“내란 윤석열 즉각 퇴진”

“윤 대통령, 탄핵으로 들어갔다”…법조계도 계엄 선포에 분노 5.

“윤 대통령, 탄핵으로 들어갔다”…법조계도 계엄 선포에 분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