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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키스 1초전·꿀…’ 아이들이 묘사한 이것은?

등록 2013-03-04 10:03수정 2013-03-04 15:17

지난 2월24일 충남 천안의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진행된 2013 인터넷치유학교에 참여한 부모들이 부모교육 강의를 듣고 있다.
지난 2월24일 충남 천안의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진행된 2013 인터넷치유학교에 참여한 부모들이 부모교육 강의를 듣고 있다.
게임 중독, 부모가 바뀌면 아이도 바뀌어요
인터넷치유학교, 기숙형 치료캠프로 25명 중고등학생 참여
부모와 함께 상담받고 다양한 대안활동 하며 스스로 변해
‘첫키스 1초 전의 설렘,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발명품, 꿀, 우리들만의 세상.’

이 표현의 공통점이 뭘까. 나열한 단어들만 봐서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바로 인터넷치유학교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집단 활동 시간에 ‘나에게 인터넷이란’을 주제로 생각해낸 표현들이다. 인터넷치유학교는 여성가족부가 주최하고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주관하는 기숙형 치료캠프다.

이번 캠프는 2월16일부터 27일까지 충남 천안에 위치한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진행됐다. 사전 심리평가를 받은 남자 중고등학생 25명이 참가했으며, 청소년지도사와 개인 또는 집단 상담자 등 전문가 30여명이 투입돼 운영됐다. 참가비용은 10만원이며, 차상위계층의 경우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이 캠프가 끝난 다음에도 3개월간 주기적으로 상담을 하면서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참가자들의 노력이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되도록 도와준다.

대부분 게임 중독인 학생들은 이곳에 도착하마자 휴대폰과 지갑을 지도교사에게 내야 한다. 휴대폰 게임을 막고 평소 게임을 하면서 많이 먹었던 컵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제품을 못 먹게 하기 위해서다. 11박12일 동안 철저히 인터넷을 차단하고 학생 2명당 1명의 대학생 멘토가 배정돼 생활 관리를 한다. 멘토는 역할모델도 하고, 아이들이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도록 모든 활동을 함께 한다.

시간표를 보니 아침 7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일정이 빼곡하게 짜여 있다. 밤새 게임하느라 밤낮이 바뀐 아이들에게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처음에는 적응을 못해서 “라면을 달라”, “집에 돌아가겠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아이들의 불만도 줄었다고 한다. 캠프 기간 동안 개인 상담과 집단 상담, 부모 교육 및 가족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개별적 원인에 따른 진단과 맞춤형 대안이 제시된다. 또한 참가 학생들은 인터넷을 대체할 보드게임이나 축구, 농구, 국궁, 탁구 같은 체육활동 등 다양한 대안놀이와 자치활동도 한다.

부모는 캠프 기간 중 1박2일을 아이들과 지내며 상담도 받고 놀이도 함께 한다. 지난 2월24일, 한 무리의 부부가 강당에 모여 강의를 듣고 있었다. 캠프 프로그램의 하나인 부모교육 시간이었다. 주제는 자녀 문제와 부모 역할을 이해하고 부모와 자녀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다. 강사로 나선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배주미 팀장은 “아이가 일방적으로 떼쓰더라도 무조건 안 된다고 자르지 말고, 아이가 그걸 왜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적어서 내도록 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경험을 들어 아이가 떼를 쓰는 경우 보고서 형식으로 그 일이 하고 싶은 세 가지 이유를 쓰게 한다고 했다. 아이는 나름대로 내용을 정리하면서 본인이 하려는 일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고 얘기했다.

그는 또 “번번이 야단만 치면 아이와 부정적 상호작용이 지속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인터넷을 못 쓰게 했더니 갑자기 화를 내고 극단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상황을 관찰 카메라로 찍어 돌려봤더니 그 전부터 부모가 계속 아이의 신경을 건드리고 잔소리를 하며 짜증나게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는 것”이라며 “아이를 무조건 비난하거나 흥분한 상태에서 얘기하면 안 된다. 일단 화를 누그러뜨리고 설득해야 아이와 감정싸움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엄마를 때리고, 현실에서 게임 캐릭터를 그대로 따라하는 청소년들이 실제 늘어나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실시한 ‘2011년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0대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률은 10.4%(67만7000명)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다. 특히 청소년의 54.0%가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한다고 답했다.

한편 부모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은 한쪽 방에서 ‘텀블링 몽키’, ‘할리갈리’, ‘트래버스’ 등 다양한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게임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ㄱ군은 “친구들 만나면 피시방 가는 게 전부였는데, 이 캠프에서는 그걸 할 수 없으니 다른 놀 거리를 찾았다. 보드게임을 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충분히 즐겁다”고 말했다.

“심지어 잠꼬대로도 게임, 아이랑 싸우다 우울감 커져”

인터넷게임을 즐기는 아이의 모습. <한겨레21> 자료사진
인터넷게임을 즐기는 아이의 모습. <한겨레21> 자료사진
캠프 관계자는 “전날 부모님과도 같이 하면서 룰을 알고 집에 가서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생활하는 동안 적극적이고 모범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칭찬스티커를 준다. 이 스티커를 많이 받은 아이는 나중에 캠프가 끝나고 자신들이 즐겼던 보드게임을 우선순위로 고를 수 있도록 한다”고 얘기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ㄱ군은 친구들과 어울려 피시방을 드나들면서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승부욕을 즐기고 ‘레벨 업’(캐릭터 지위나 아이템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 될 때마다 현실에서 누릴 수 없는 혜택을 받으며 게임에 더 빠져들었다. 시험 전날 밤새도록 게임을 한 적도 있다. 원래 상위 20%대였던 성적은 50%까지 떨어졌다. 부모님이 게임을 못하게 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럴 때마다 충동적으로 담배도 피우고 친구들과 술도 마셨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인터넷이나 자신의 게임 사용량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는 가족 상담을 통해 부모님께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함께 서약서도 작성했다. 앞으로는 다시 공부도 시작하고 게임은 주말에만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ㄱ군의 어머니는 “당사자끼리는 힘들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청했다”며 “갑자기 바뀔 수는 없지만 좋은 쪽으로 개선해 나가는 게 도움이 될 거 같다. 타협을 해도 상담선생님이 중간에서 조율을 해주니까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아이와 서약서를 쓰면서 조금 더 지켜야겠구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인 ㄴ군은 게임을 하면서 중독의 위험성을 실감했다. 외동아들인 그는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해서 친구들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었다. ㄴ군은 “평소 게임을 하고 나면 머리가 텅 비고 자기 전에 누우면 효과음이 들리면서 머릿속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다”며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니까 공부했던 내용도 다 까먹고 엄마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 귀찮고 화를 내게 된다. 점점 중독된다는 걸 느끼니 무섭더라”고 털어놨다. ㄴ군의 어머니는 “심지어 잠꼬대로도 게임을 하더라. 충돌이 심해져서 컴퓨터까지 없앴지만 휴대폰 게임으로 옮겨갔다. 아이랑 싸우다가 우울해져서 좌절감도 생겼다”고 했다.

특히 그는 참여를 안 하겠다고 해서 캠프를 찾아오는 내내 싸웠던 남편의 변화를 놀라워했다. 그는 “아이가 크면서 혼자서는 통제가 안 돼서 남편한테 아이와 함께 뭔가를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 때부터 주말부부로 지내고 항상 바빠서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남편이 도와주지 않아서 많이 다퉜다”고 했다. ㄴ군의 아버지는 “이곳에 와서 아이와 나누는 교감이나 정서가 좋았다. 인터넷 중독이 핵심이지만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아이가 놀 수 있는 환경을 내가 못 만들어 준 걸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바뀌면 아이도 바뀐다는 것과,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며 단순히 야구나 축구를 같이 한다기보다 아이의 눈높이를 맞춰서 소통하려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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