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버스 등에 붙은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 광고의 문제점을 지적한 누리꾼의 사진. 사진=클리앙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 주지 않아” 문구
새학기앞 경쟁 부추기는
왜곡된 현실 보여줘
대신해 주지 않아” 문구
새학기앞 경쟁 부추기는
왜곡된 현실 보여줘
사교육업체 ‘비교육적 광고’ 논란
벚꽃 흐드러진 길에서 교복 입은 두 소녀가 웃고 있다. 다정한 친구 사이로 보인다. 그 왼편, 편지지 바탕에는 11줄짜리 글이 적혀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2013년 캠페인’ 광고는 경고성 메시지로 끝맺는다.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새 학기를 앞두고 내놓은 이 광고는 현재 일부 서울 시내·마을버스 등에 붙어 있다. 이를 퍼나르는 누리꾼들을 통해 광고를 본 학생들도 많다. 10대라고 밝힌 한 누리꾼(@Tiffanis****)은 “우리 학교에선 이미 ‘우정파괴 광고’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시험 잘 치려면 친구를 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부여하려는 것”이라며 개탄했다.
입시경쟁 속에서 청소년들은 가뜩이나 ‘친구’를 잃어가는 상황이다.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분석보고서를 보면, 지역사회·교내 자치활동에서 청소년의 참여 정도를 나타내는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에서 한국 청소년들은 36개 나라 청소년 가운데 35위를 차지했다. 또래 등과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해 4월 서울시교육청이 초·중·고교생 26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해서 좋다’는 문항의 만족도 지수에서 고등학생은 5.0 만점에 3.20점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 4.42점, 중학생 4.24점과 비교된다. 입시경쟁이 본격화할수록 동급생을 친구가 아닌 치열한 경쟁자로 인식한다는 방증이다.
이영탁 서울 수락중 교사는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을 통해 인생에서 진짜 배워야 할 것을 배운다고 지적한다.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협력과 협동이고, 실제로 상급학교 진학은 물론 인성을 위해서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융합할 줄 아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광고가 버젓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왜곡된 교육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상식 교수는 “이 광고는 인간관계를 끊는 게 시험 전략으로 제시되는 것이 우리 교육의 수준이란 걸 반영하는 동시에 학부모·학생들이 학교를 ‘좋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교육업체의 ‘비교육적인’ 광고가 논란이 된 게 처음은 아니다. 2008년 사교육업체 ‘대교’는 ‘이등병의 편지’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입영통지서를 받아 든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놀이터와 이별하는 초등학교 입학생의 모습을 광고로 내보냈다. 경쟁 교육에 휘말린 사회 분위기가 이런 광고를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메가스터디 쪽은 “새 학기가 됐으니 열심히 공부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10대들에게 가장 와닿는 소재인 ‘친구’를 차용했다. 캠페인 광고인 만큼 속뜻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김승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정책실장은 “학생들의 불안을 이용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상술”이라고 지적했다. 엄지원 박수진 기자 umkija@hani.co.kr
메가스터디 우정파괴 광고 “아프지만, 현실” 새학기 공부에 열중하기 위해서 친구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이른바 ‘우정 파괴’ 광고를 다룬 기사가 온라인을 타자, 누리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인터넷 포털에는 67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페이스북에서도 1000회 넘게 공유됐다. 누리꾼 대부분은 “정도를 넘어섰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특히 학창 시절을 이미 경험한 어른들이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아이들의 생활에 연민과 미안함을 표현한 글들이 눈에 띄었다. 자신을 사교육업체 교사로 밝힌 한 트위터 이용자는 “메가스터디 우정 파괴 광고가 화제네요. 사교육업체에 있는 사람인지라 씁쓸하네요. 물론 광고도 문제이지만, 그런 내용의 교육이 수험생들의 생활공간인 교실에선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픕니다. 그게 더 먼저 지적되고 고쳐져야 할텐데요”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다른 트위터 이용자 kittyxxx도 “메가스터디는 아이들을 코너로 몰고 있다. 얘들아 공부보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중요해! 어른들 상술에 속지마!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뭔 것 같아? 속마음을 트고 얘기할 사람이 없잖아, 외롭잖아, 두렵잖아, 암담하잖아”라며 어른들의 이기적 상술을 꼬집었다. 격앙된 분위기와 더불어 “어쩔 수 없다”는 글들도 드물지 않았다. 누리꾼 maryxxx는 “저렇게 해봤자 재수는 필수 삼수는 옵션”이라며 치열한 대입경쟁 현실을 풍자했고, qkwpxxx는 “이런 글을 보고도 부인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순응하네요. 현실이니까 그런가요”라며 씁쓸해했다. 입시문제가 단지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누리꾼 vomexxx는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결혼과 출산이 두려워진다”며 사회의 저출산 문제와도 관련이 있음을 지적했다. 광고를 낸 메가스터디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트위터 이용자 Dpathxxx은 “메가스터디에서라면 친구랑 놀아도 성적이 오른다라는 구라가 훨씬 낫지 않나?”고 조롱했다. 특히 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이사 회장이 서울대 재학시절 노동운동을 했던 것을 거론하며 “민주화 운동했던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는 의견들도 올라오고 있다. 한편, 최초 공개됐던 광고 사진의 출처도 밝혀졌다. 취재결과, 어쿠스틱밴드‘신나는섬’의 김동재씨가(@mellowvox) 스마트폰으로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어 지난 24일 사진을 공개했고, 이를 한 케이블 방송사 요리 대결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알린 박준우(@seoul1983)씨가 리트위트를 하면서 급격하게 퍼져나갔다. 김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어른들이 우정과 성적 중 하나를 버려야 할 거라고 아이들에게 협박하는 이 상황이 너무 힘드네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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