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입시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뒤 초등학생들이 집으로 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초등시절 ‘공부 속도 경쟁’에 몰리다 사고당하는 경우 많아
부모가 희망하는 대로 자녀를 바꿔주는 만병통치약은 없어
부모가 희망하는 대로 자녀를 바꿔주는 만병통치약은 없어
신이 나서 하던 상담을 지금은 기피한다. 학습에서 진로로, 다시 입시로 종잡을 수 없이 옮겨 다니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치유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는데, 그래서 한때는 자신감이 생겨 일부러 찾아다니면서까지 하던 상담이었는데, 지금은 간곡한 상담 요청에도 ‘상담 그거 별로 효과가 없다’는 말로 뿌리친다. 왜? 그 ‘씁쓸한 사연’을 공개한다.
학부모 상담의 비애
학부모들이 상담을 요청하는 사연은 일맥상통한다. 부모도 아이도 할 만큼 했는데 성적은 여전히 실망스러운 수준, 그래서 상담을 통해 간절히 돌파구를 찾는다. 학부모들의 절실한 소망대로 명쾌한 해법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정은 간단치 않다.
대화를 통해 하나하나 진실에 접근하면 정말 각양각색의 그림이 그려진다. 부모도 아이도 나름대로 그림을 갖고 오기에 소통이 쉽지는 않다. 부모는 아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아이는 시키는 대로 했지만 수학이 어려워서 뭐 그런 식이다. 공부하면서 재미나 의미는커녕 억지 공부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수학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극에 달해 있는 학생들이 즐비하다. 열심히 해보고 싶지만, 성적도 크게 올려보고 싶지만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공부 자체에 대한 거부반응을 이겨내지 못하고 외부의 통제력이 작용하는 경우에 한해 겨우겨우 공부라는 행위를 이어가는 학생들이 사실 대부분이다.
대인기피증과 비슷한 공부기피증도 분명 질병의 하나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부 거부반응이 근본원인이라는 진단을 해준들 무엇하랴. 처방은 공부에 대한 새로운 체험, 재미있는 공부와의 만남인데 그게 쉽지 않다. 부모는 물론 아이까지 거부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즉효와 특효로 유혹하는 쪽이 있고 쉽게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상담을 기피한다.
얼마 전부터 부쩍 관심이 많아진 효과적인 학습법에 대한 상담도 사정은 비슷하다. 마치 만병통치약 같은 것을 찾아달라고 애원하지만 실망시키기 십상이다. ‘개성’은 죽고 ‘획일’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개개인에게 맞는 학습 방법을 찾아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왕도 같은 방법을 찾으면 안 되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바로 왕도가 된다는 얘기는 공허하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은 어디서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통해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기에 더욱 한계를 느낀다. 이대로 하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왔는데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처방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하다.
당장 효과를 보고 싶어 안달인 사람에게 꾸준히 연습해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하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공한 사람들의 학습법은 ‘개성’의 산물로 과학적인 학습의 원리는 통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그들만의 것으로 결코 따라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를 스스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을 기피한다.
개인과 사회, 함께 봐야 보인다
방법의 문제 못지않게 속도의 문제도 심각하다. 걸음걸이나 말투처럼 배움에도 분명 사람마다 속도 차이가 존재한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배움의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학생들이 무리한 속도 경쟁에 휘말려 자빠지고 있다.
초등학교까지는 우선 수학과 친해지고 중학교에서는 기초를 다지면서 중위권 정도를 유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상위권 진입이 충분히 가능한 학생이 초등 시절에 무리한 속도 경쟁에 내몰려 결국 사고를 당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도무지 조절이 되지 않는 과속 상태가 화를 불렀다. 다들 속도 경쟁에 목숨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과속이 원인이고 따라서 속도 늦추기를 처방으로 내놓으면 과연 설득력이 있겠는가.
점수 따기 경쟁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그럭저럭 버티다가 공부 부담이 갑자기 늘어 결국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성적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어 좌절한 경우 등 개인만의 문제로 보기 어려운, 반드시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한 문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직 아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상담을 하면 할수록 ‘벽’을 느낀다. 아이가 게임 중독에 빠지는 경우 대부분 구조적 원인이 개입돼 있다. 우연히 게임을 접하고 빠져들었던 경험이 중독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중독 수준까지 악화되는 경우는 대부분 가족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공통점이 확인된다. 우연히 시작한 게임을 통해 고질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경험이 중독의 빌미가 된다.
또래 집단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게임으로 인정받으려고 한다는 점도 흔히 발견된다.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에서 자존감이 떨어진 아이가 게임을 통해 왜곡된 자존감을 맛보게 되는 경우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게임이 바로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어버린 탓이다.
새로운 희망 찾기 - 학부모, 교사 교육
“우리 아이는 꿈도 목표도 없어요. 어떻게 해야 목표를 갖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들은 요구지만 뾰족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냥 당신 처방이 가장 훌륭하다는 말을 듣기 위한 상담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상담을 한다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황당한 꿈’을 꾸기보다는 현실의 냉혹함에 일찍 철들기를 강요하는 세상이라는 생각, 다양한 진로 체험과 세상에 대한 경험의 기회보다는 입시 경쟁으로 내모는 세상이라는 생각, 아이의 적성과 열정보다는 부모의 기대와 욕심이 우선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진단이 가능한데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이제는 개별 상담보다는 학부모 교육과 교사 연수에 희망을 건다. 단지 좋은 성적, 입시에서의 성공을 위한 정보나 지식 제공이 아니라 부모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욕망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통해 성장과정의 트라우마로부터, 사회적인 압력으로부터 순수한 부모의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학부모 교육 말이다. 부모 자신의 변화를 통해 아이와 함께 노력하도록 인도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원인은 사회적이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 추궁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그릇된 사고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일부 우등’은 본인이 열심히 한 것이고 ‘다수 열등’은 본인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보도록 우리 시대가 집단 착각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동기부여에 실패한 교육을 집단적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여 결국 소수의 우등생과 다수의 열등생을 선별한 것일 뿐이다.
우리 아이들은 명백히 획일적인 경쟁 교육의 희생자다. 그래도 교사와 부모를 통해 희망을 찾으려고 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이 질책이나 미움이 아니라 안타까움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그것이 진실이고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
상담을 희망하는 부모들에게 각별히 부탁한다. 엄마만이라도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덜 싫어하게 만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좋은 학원을 찾는 것보다 아이의 공부에 훨씬 유리하다.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수학 공부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에게 다양한 실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익숙해질 때까지 함께 연습하는 부모는 아무런 정보력이 없어도 걱정할 일이 없다.
마지막으로 소망한다. 아이를 부모가 희망하는 대로 변화시켜주는 그런 상담은 없다. 그런 상담을 자신하는 사람은 분명 신일 것이다. 부모 자신과 아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상담은, 필요 없다.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박재원의 부모효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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