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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25일만에 만난 아이 “엄마, 집 언제 와?”

등록 2013-01-28 19:40수정 2013-01-28 21:38

우의정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충남세종지부장이 27일 저녁, 25일 만에 만난 첫째 아들(7)과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의정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충남세종지부장이 27일 저녁, 25일 만에 만난 첫째 아들(7)과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우의정씨의 노숙투쟁
학교수련원 지도원서 해고당해
“노조 지도부라는 걸 알고 자른듯”

스티로폼 위 선잠 깨면 ‘눈썹 서리’
8개월 된 셋째딸 분리불안 증세도
“해고 철회까지 투쟁 멈출 수 없어”

27일 오후 대전시 중구 문화동 충남도교육청 맞은편 천막농성장. 25일 만에 엄마를 만난 큰아들(7)은 엄마 무릎 위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신나게 놀던 작은아들(4)은 엄마 품에 안기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엄마는 손톱깎이가 없어서 가위로 잠든 아이의 손톱을 잘라줬다. 해가 저물어 집에 돌아갈 때가 되자 엄마를 꼭 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아이들을 달래 차에 태웠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언제 집에 와요?”라고 자꾸 물었다. 엄마는 아이들을 보낸 뒤 교육청 정문 바로 앞에 마련된 노숙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 한 명 겨우 누울 크기의 스티로폼 위에 전기장판을 깔아 놨다. 비닐을 둘러쳤지만 칼바람이 들이쳐 기온이 영하 6도로 떨어진 바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 아이의 엄마인 우의정(38)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충남세종지부장은 이달 2일부터 충남도교육청 앞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하다, 17일부터 홀로 노숙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에겐 태어난 지 8개월 된 딸도 있다. 셋째도 두 아들처럼 20개월까지 모유를 먹여 키울 생각이었지만 투쟁 때문에 중간에 그만뒀다. 딸은 엄마와 떨어진 뒤부터 잘 웃지 않는다.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감기가 2주일째 낫질 않는다. 지인들에게 아이를 2~3일씩 돌아가면서 맡기다 보니, 일종의 분리불안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지금은 친정어머니(77)가 아이들을 돌봐 조금은 나아졌다. 남편인 전말봉(40)씨도 지부에서 전임으로 사무국장을 하면서 같이 천막농성을 하는 중이라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우 지부장은 2011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충남학생수련원에서 기간제 수련지도원으로 일했다. 셋째를 임신해 만삭의 몸이었음에도 학생들에게 4m 높이의 사다리를 오르는 시범을 보이고, 4시간 걸리는 산행을 모두 소화했다. 학기 중엔 주 5일,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도 월 130만원의 박봉에 시달렸다. 그러나 수련원은 지난해 11월 말, 우 지부장 등 직원 4명에게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며 해고를 통보했다. 직원들이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갖고 있음에도, 수련원은 ‘수련지도원’을 없애고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고용해 ‘수련지도사’라는 직종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댔다. 우 지부장은 “내가 노조 지도부라는 것을 안 수련원에서 나를 해고하기 위해 이름만 바꾼 직종을 새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 지부장 부부 등 노조 간부들이 교육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지난해 충남지역 학교비정규직 155명이 해고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급식실조리원(135명), 특수교육실무원(특수보조교사, 16명) 수련지도원(4명) 등이 대상이었다. 충남도교육청은 “해고된 학교비정규직들이 다른 학교에 배치되도록 노력중이다. 그러나 우 지부장과의 재계약은 기관장 권한이라 교육청이 개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 지부장이 17일부터 천막농성에서 노숙단식농성으로 투쟁의 강도를 높인 것은 수련원이 신규 채용 공고를 내는 등 해고를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남편 전씨는 “내가 농성을 하겠다고 했지만, 지부장이고 해고 당사자인 자신이 하겠다는 아내의 뜻이 워낙 완강했다”고 말했다. 우 지부장은 음식은 전혀 입에 대지 않고 물만 마시고 있어 누워 있어도 어지러울 때가 많다. 25일엔 교육청 공무원에게 항의하다 탈진해 병원에 실려갔지만 수액 주사도 거부하고 30분 만에 나와 다시 길거리에서 잠을 청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 5~6시간 선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면 눈썹과 이불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다. 취객이 지나가다 “이런 데서 자면 안 된다”고 훈계를 한 적도 있다. 천막에서 자는 전씨는 두 시간마다 일어나 아내에게 별문제가 없는지 둘러보고 간다.

“‘자다가 추워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게 제일 힘들죠. 하지만 저는 매년 반복되는 학교 비정규직 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 지부장이 힘줘 말했다.

대전/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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