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명선 기자의 기사 쉽게 쓰기 42. 기자론-역사 속의 기자들 5
자기가 속한 조직의 문제도
가감없이 보도할 수 있어야
자기가 속한 조직의 문제도
가감없이 보도할 수 있어야
교육 담당 기자로 일할 때의 일이다. 유명 외국어고등학교가 학부모로부터 수억원대의 불법 찬조금을 거둔 게 사실로 드러났다. 한 용기 있는 학부모가 관련 자료를 모아놨다가 학부모단체에 제보한 게 계기가 됐다. 이런 기사를 쓸 때는 대개 해당 학교에 다니는 다른 학부모들의 확인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 외고의 경우 그런 게 불가능했다. 학부모들은 “학교 망신”이라며 모른 체했고, 이런 태도는 그 학교의 교사나 학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학교의 구성원이 똘똘 뭉쳐 학교의 치부를 감추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도 보도의 예외가 될 수 없다.
<한겨레>가 발행하는 주간지 <한겨레21>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베트남 양민을 학살한 사실을 1999년 특종 보도했다. 베트남 호찌민대학에서 유학하던 구수정 통신원은 한국군의 양민 학살을 언급한 베트남 전범조사위원회가 작성한 기록을 입수했다. 베트남 여성을 희롱하는 한국 군인을 마을 승려가 제지하자, 격분한 동료 군인들이 몰려와 승려 4명을 죽인 일, 한국군 맹호부대가 1966년 1월부터 한 달 동안 이 마을 인근에서 1200여명의 주민을 학살한 일, 주민을 한데 모아 기관총을 난사해 몰살하거나 마을의 땅굴에 주민을 몰아넣고 독가스를 분사해 질식시킨 일 등이 기록돼 있었다. 구수정 통신원은 해당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의 증언을 직접 들었다. 베트남 중부 5개 성, 9개 현을 다니며 수십 곳의 현장을 취재했다.
관련 보도는 ‘베트남의 원혼을 기억하라’는 제목으로 1999년 9월2일 <한겨레21>에 실렸다. 2000년 4월에는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김기태 예비역 대령이 양민 학살에 대해 증언한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이후 <로이터>, <뉴스위크>,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 세계 유수 언론이 <한겨레21>을 인용해 보도했다. 시민단체는 ‘베트남 양민학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보도를 계기로 <한겨레21>은 한국군에 피해를 입은 베트남 가족을 돕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토벌을 맡았던 중부 5개 성 지역에 5개의 병원과 40개의 초등학교를 건립했다.
기사는 곧 글이므로 잘 활용하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내 글을 계기로 학생기자로 일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됐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끝> 진명선 <한겨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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