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방과후학교에서 평소 듣는 주입식 문제풀이식 수업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수업이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진은 한 고교 학생들이 모의고사 문제풀이를 하는 모습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학생 의견 반영 안 하고, 억지로 듣게 해
고교로 갈수록 문제풀이식 수업 많아져
고교로 갈수록 문제풀이식 수업 많아져
“방과후학교요? 너무 재미없어요.”
경남의 한 고교에 다니는 1학년 박아무개양의 하소연이다. 박양은 정규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대해 불만이 많다. 박양은 “미술이나, 요가 등 취미로 할 수 있거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특기적성강좌도 듣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없다”며 “게다가 방과 후학교를 수강할 수 있는 시간이 야자 1교시로 제한돼 있다”며 아쉬워했다.
“방과후학교 수업 대부분을 학교 선생님이 직접 진행합니다. 그래서 인기 있는 몇몇 선생님 강의에만 쏠리는 경향이 있죠. 수강료가 무료지만 차라리 수강료를 조금 받더라도 외부강사를 초청해서 논술, 중국어 등 학원비 부담이 큰 강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의 한 고교에 다니는 1년 권아무개양의 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권양은 “방과후학교에 다양한 강좌가 개설이 되어있지 않다 보니 수업이 지루하고, 정규 수업에서 하는 방식과 비슷해서 학생들의 참여도 저조하다”고 했다.
2006년부터 초·중고교에서 정규 수업 이외의 시간에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개설하자는 뜻에서 운영하고 있는 방과후학교는 기존 특기적성교육, 방과후교실, 수준별보충학습 등으로 이뤄진 교육체제를 말한다. 방과후학교는 정형화된 정규 교과 위주의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다양한 강좌를 통해 학생들 개개인의 소질과 적성, 인성 등을 계발하고 신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했다. 또 많은 학생들이 방과후에 사교육 시장으로 가는 현상을 막고, 교육양극화를 해소하자는 뜻에서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는 달리 방과후학교는 제2의 주입식 주요교과 수업 시간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교과와 연동해 수업을 해도 창의적인 활동형 수업이 이뤄지고, 다양한 특기적성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만 중·고등학교에서는 그야말로 주입식 교과 보충수업 위주로 개설되는 일이 많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방과후학교 현황 분석 자료를 보면 전체 학교 1만1231곳 가운데 99.9%인 1만1226곳이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전체 학생 가운데 63.3%가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중이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생 가운데 54%, 중학생 가운데 60.1%, 고등학생 가운데 82.4%가 방과후학교에 참여한다. 자율적으로 수강할 수 있는 방과후학교 수업을 강요하는 학교도 많다. 고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박아무개씨는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까지 강제적으로 수강하게 해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경향이 있다.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습 위주의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흥미를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강좌를 개설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방과후학교 수업을 개설할 때 학생들의 수요 조사를 꼼꼼히 하는 학교들은 많은 학생들한테 부러움을 산다. 지난해 개최한 제4회 방과후학교 대상(이하 ‘방과후학교 대상’)에서 수상한 학교들의 공통점을 보면,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했다는 데 있다.
방과후학교 대상에서 현직 교사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경기도 안산 강서고 정진호 교사는 “우리 학교의 경우,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짤 때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로부터 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강의를 해주는 특별한 수업도 진행한다. 사범대나 교육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실제 학생을 가르쳐보는 멘토링 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요청을 해서 인근 중학교 학생들을 불러 멘토링 수업을 진행한다.
또한 어떤 분야에 대해 의지나 열정이 있는 교사가 강좌를 개설하겠다고 하면 신청자를 받아 강좌를 개설하는 일도 종종 있다. 정 교사는 “학생과 교사의 의견을 모두 수렴해 진행한다”며 “방과후학교는 방과후에 이뤄지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활동 중에 보충수업은 일부일 뿐이다. 학력신장을 위해 공부도 해야 하지만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선생님한테 갖고 오면 그것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강좌를 개설하는 식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방과후학교 대상에서 학교 부문 장려상을 받은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고등학교의 경우는 교과와 연동되는 수업뿐 아니라 특기적성 수업이 많다. 우쿨렐레반, 기타반, 뮤지컬반, 보컬 트레이닝반, 체육 특기생을 위한 기초체력반, 난타반 등을 개설하고 있다.
이 학교가 이렇게 특기적성 수업을 개설하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강명숙 교장은 “이 지역 특성상 환경이 어렵고 꿈이 없어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일단 학교에서 그 꿈을 찾아주는 노력을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다양한 방과후수업을 마련해둔 덕분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꿈을 찾고, 공부에 대한 의욕을 다진다. 강 교장은 “특기적성강좌를 개설하게 되면서 학생들이 눈에 띄게 밝아졌으며, 인사성도 좋아졌다”며 “거기다 학교를 지루하게만 느끼던 학생들도 학교가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방과후학교에서 완전한 정답은 없지만 우리 학교 실정에 맞춰서 가고 있는데 우리 학교처럼 각 학교의 상황에 맞춰 방향성을 잡고 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보컬 트레이닝반을 수강하던 한 학생이 보컬 트레이닝 수업을 받으면서, 실용음악과를 가고 싶다는 목표를 갖더군요. 눈빛이 반짝거리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그 뒤로는 학업도 소홀히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도 진학했습니다. 우리 학교 실정에 맞춰서 방과후학교를 개설해 얻은 성과 중 하나죠. 물론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경우는 본인 의지에 따라서 소규모로 기초학력증진 수업도 듣게 합니다. 덕분에 2012년 학력성취도평가에서는 국어과목 기초학력 미달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학력 부분에서는 더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더 노력할 예정입니다.”
방과후학교의 본래 목적대로라면, 다양한 수업을 개설해야 맞지만 이 목적대로 운영되는 방과후학교보다는 여전히 정형화된 형태의 방과후학교가 많은 게 현실이다. 서울 한 고교에 다니는 3학년 김다현양은 “방과후학교란, 학교의 정규 일과가 끝난 뒤 부족한 학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방과후학교가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하!한겨레> 8기 학생수습기자
강다은(삼천포여고), 최아영(효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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