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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소리내 읽어주는 책맛, 영양가 높아요

등록 2013-01-21 15:11수정 2013-01-21 16:18

강인경씨는 잠들기 전 시간을 활용해 둘째아들 김홍준군한테 책을 읽어주면서 김군이 모르는 단어, 관용적 표현 등에 대해 질문을 하면 적절한 수준에서 설명을 해준다. 강인경씨 제공
강인경씨는 잠들기 전 시간을 활용해 둘째아들 김홍준군한테 책을 읽어주면서 김군이 모르는 단어, 관용적 표현 등에 대해 질문을 하면 적절한 수준에서 설명을 해준다. 강인경씨 제공
엄마의 편안한 입말로 듣는 동화 스토리
이해 능력 커지고, 소통 고리도 마련해줘
“밤이 되었네. 봐요. 하늘이 깜깜해졌어요.”

지난 1월14일. 경기도 과천시에 사는 정혜숙씨 집 거실. 5학년 나관형군이 3살짜리 동생 나인선양한테 <달님 안녕>이라는 책을 읽어준다. 양반다리를 한 채로 다리 사이에 동생을 앉혀놓고, 다정다감한 말투로 읽어주는 모습이 하루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나군은 “한번 읽어주기 시작하면, 책장에 꽂힌 책을 다 갖고 온다. 같이 놀자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6학년 나수빈양, 5학년 나관형군, 2학년 나승빈양, 3살 나인선양. 네 자녀가 있는 이 가정에서 언니, 오빠는 막내 나인선양한테 자주 책을 읽어준다. 일종의 내리사랑이다. 엄마는 평소 책을 많이 읽어줬다. 잠들기 전, 아이들은 책을 들고 엄마 앞에 줄을 선다. 정씨는 “큰딸은 다 커서 주로 혼자 읽는 편이다. 일상에서 ‘그 장면 알아? 그거 웃기더라.’ 이런 식으로 책 속 어떤 대목에 대해 이야기를 던지는 대화를 많이 나누고, 나머지 세 아이한테는 소리내서 많이 읽어준다”고 했다.

이날 엄마는 아이들한테 동화집 <멀쩡한 이유정> 가운데 한 편을 읽어줬다. 2주 전에 둘러앉아 읽었던 책이라 아이들은 주인공의 대사도 대충 외운다. 이렇게 엄마가 읽어주는 책이 좋은 데는 이유가 있다. 나수빈양은 “엄마가 읽어주면 글로 읽을 때보다 훨씬 실감이 난다”고 했다. 나승빈양은 “할아버지, 할머니 목소리를 잘 내서 좋다”고 했다.

정씨가 아이들한테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주게 된 건 셋째 나승빈양이 태어나면서부터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어린이책에 관심을 가졌고, 동화 읽는 어른 모임 등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책을 아이들한테 소리내 읽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씨는 다른 가정의 아이들이나 어르신들한테도 책을 읽어준다.

특별히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책을 읽어주면서 보람도 느낀다. 정씨는 “첫째는 말의 뜻이나 맞춤법을 따로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받아쓰기를 잘하고, 셋째는 받아쓰기는 좀 틀리지만 문장 안에 있는 단어의 뜻을 잘 이해한다”고 했다.

정혜숙씨(맨 오른쪽) 가정에서 네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로 만나고 싶은 책들을 들고 정씨 앞에 줄을 선다. (왼쪽부터) 나수빈양, 나관형군, 나인선양, 나승빈양이 정혜숙씨가 읽어주는 단편동화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다.  김청연 기자
정혜숙씨(맨 오른쪽) 가정에서 네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로 만나고 싶은 책들을 들고 정씨 앞에 줄을 선다. (왼쪽부터) 나수빈양, 나관형군, 나인선양, 나승빈양이 정혜숙씨가 읽어주는 단편동화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다. 김청연 기자
“수빈이는 책을 읽어주면서 한글을 깨쳤거든요. 글로는 ‘했어요’라고 쓰지만 말할 때는 ‘해써요’라고 하잖아요. 나중에 자신이 눈으로 보는 글자랑 입으로 말하는 소리가 다르다는 걸 깨달으면서 맞춤법을 익힌 게 아닐까 싶습니다. 승빈이는 이야기의 맥락을 눈치껏 잘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요. 단어를 그냥 단어로 배운 게 아니라 스토리 속에서 접하면서 이해하게 된 덕분인 것 같아요.”

더 큰 보람은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의 현재 관심분야나 심리상태 등을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게 됐다는 점이다. 정씨는 “나는 그냥 책을 읽어준 건데 책을 계기로 아이의 생각을 만나게 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하고 해석하는 게 다른 경우가 많아요. 그걸 보면서 ‘이 아이는 이 책을 이렇게 이해했구나’ 생각해보게 되죠. 책을 함께 읽으면서 책 속 이야기와 비슷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일도 있어요. 예를 들어, 책에서 어떤 갈등상황이 나왔는데 읽던 중간에 ‘엄마, 우리 반에도 이런 독특한 애가 있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보통 정보를 전달하는 그림책은 혼자 읽게 합니다. 아이들과의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통의 고리가 되는 스토리가 있는 동화나 그림책을 읽어줍니다.”

어른들은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주제가 뭘까도 끊임없이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독해 방법은 다르다. 정씨는 “둘째가 다섯 살이었을 때 같은 나이의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우유를 사러 가는 과정을 담은 <이슬이의 첫 심부름>을 읽어준 적이 있었다. 읽은 뒤에 ‘너도 이제 심부름을 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는데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엄마, 나는 심부름 갈 때 뛰어가지 말고 걸어가야겠어.’ 그러더군요. 이 책을 보면 아이가 우유를 사러 가면서 긴장을 하고, 뛰다가 넘어지는 대목이 잠깐 나오거든요. 어른들은 전체 주제가 뭔가를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을 등장인물에 대입해서 어떤 상황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책은 그냥 읽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요령도 필요하다. 정씨는 “부모가 아이보다 글을 더 잘 읽어서 읽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조금 더 책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읽어주는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화구연을 하듯 지나치게 과장해서 읽거나 국어책 읽듯 너무 또박또박 읽을 필요는 없어요. 할아버지가 나올 때는 할아버지처럼 목소리를 내긴 하죠. 하지만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게 연출은 안 해요. 아이가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읽어주는 사람한테 집중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감상이 어려워지죠. 적절히 재미를 줄 수 있을 만큼만 유창하게 읽어주면 됩니다.”

혼자 읽을 줄 알아도 함께 읽는 시간 필요해

서울 양천구에 사는 강인경씨한테는 중3 큰아들 김민준군, 6살 작은아들 김홍준군이 있다. 두 아이의 터울은 9살. 김민준군이 어릴 때는 책 읽어주기에 큰 정성을 들이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아 작은아들한테는 신경을 써주고 싶었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려고 텔레비전도 없앨 정도로 극성스럽게 책을 읽어줬다. 강씨는 “덕분에 작은아들은 특별한 노력 없이 글자를 배웠고, 혼자서 책을 읽게 되자 엄마 옆에 앉아 여러 권의 책을 쌓아 놓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2월 둘째아들이 만화책에 푹 빠져 지내는 모습을 발견했다. 강씨는 “이사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때라 만화에 빠져 지내는 걸 잘 몰랐었다”며 “평소 동화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워낙 과장된 그림이나 스토리로 이루어진 만화들이 많고, 만화로 독서를 시작하면 줄글 독서를 힘들어한다는 말이 생각나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하 ‘국립어청’)에서 발간한 ‘책 읽어주세요’ 독서 가이드북을 알게 됐다. 가이드북을 통해 강씨는 아이가 소리를 내 읽어주기 단계에서 묵독 단계로 넘어갔다고 여기고 혼자 읽는 것을 오래 방치했다는 걸 알았다. 강씨는 김홍준군한테 다시 책을 읽어주게 된 사연으로 국립어청에서 지난해 실시한 ‘‘책 읽어주기’ 독서 가이드북 활용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아이의 독서력을 보려고 독서점검표도 살펴봤어요. 독서 입문기와 독서 발달기 사이에 걸쳐 있더군요. 독서 독립기의 특성도 몇 가지 보였구요. 모르는 단어의 뜻을 문맥으로 유추하거나 어른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가이드북을 기초로 아이 수준을 점검하고, 다시 책을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씨가 김홍준군한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밤 10시 반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어준다. 책은 아들이 직접 고르기도 하고, 때론 엄마가 고르기도 한다. 강씨는 “어떨 땐 귀찮아하는 것도 같지만 ‘혼자 읽는 것도 좋은데 오늘은 엄마가 같이 읽어보고 싶어서 그래. 너한테 읽어주고 싶어’라고 말하면 싫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책 읽어주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새삼 알게 된 사실도 있다. 강씨는 “부모들은 아이가 혼자 읽으면 무조건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이기 때문에 묵독만으로는 어려운 고유명사나 개념을 잘못 읽거나 이해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오늘도 책을 읽어주는데 ‘엄마, ‘예장품 1호’가 뭐야?’ 이렇게 잘못 발음해서 묻더군요. ‘애장품 1호는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야.’ 이렇게 고쳐서 다시 말해주고 설명해줬습니다. 오류를 지나치게 지적하는 식으로 읽으면 책을 읽을 때 긴장합니다. 책을 다 읽고, 부드럽게 발음을 알려주면 좋습니다. 특히 소리내서 읽어주면 관용적 표현에 대해 설명하기가 좋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하잖아. 단두대의 이슬이 뭐야?’ 이렇게 묻길래 시각적 이미지를 연상시켜줬어요. ‘피가 빨간 이슬처럼 맺혔다. 결국, 사형을 당했다는 말이지.’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의도를 갖고 과도하게 뭔가를 알려주려고 하면 힘들어 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이 안 되도록 질문에 답해주세요.”

“엄마. 나 초등학교 때 읽어주셨던 <사라>라는 책은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때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따뜻해져요.”

부모의 책 읽어주기는 아이와 부모 사이의 교감을 돕고, 아이의 정서를 돌봐주는 역할도 한다. 강씨는 “큰아들은 가끔 초등 3년 때 내가 읽어준 책 이야기를 이렇게 꺼낸다”며 둘째가 태어났을 때 큰아들한테 읽어줬던 책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가 태어난 때라 행여 큰아이가 소외감을 느낄까 싶어서 둘째를 재우고 <사라>라는 책을 매일 30분씩 읽어줬습니다, <시크릿>의 어린이판 같은 책이었어요. 당시 아이 내면의 힘을 기르도록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그게 당시 저희 아이 상황과 잘 맞았던 거죠. 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은데 지금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를 잘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아이들은 뭐가 궁금해서 읽어달라고도 하지만 부모랑 교감하고 싶어서 읽어달라고 하는 일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더 크면 이렇게 같이 책을 볼 새가 없잖아요. 애들 다 키운 뒤에 ‘그래,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책은 열심히 읽어줬어.’ 훗날 그런 말을 하며 엄마 나름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으면 좋은 일 아닐까요?”

김청연 기자 carax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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