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 소통
<로스트 랭귀지>
앤드루 로빈슨 지음, 최효은 옮김, 이지북 <문자를 향한 열정>
레슬리 애드킨스·로이 애드킨스 지음, 배철현 옮김, 민음사 문자는 종종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으로 꼽힌다. 허공으로 사라지던 말이 문자로 기록됨에 따라 소통의 양상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지식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건네질 수 있었고, 이는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현재까지 연구에 기대 보면 문자의 역사는 5000년 남짓하다. 이 기간 동안 여러 문자가 만들어졌는데, 그중에는 기록은 남아 있으나 이제는 쓰이지 않는 문자가 여럿 있다. <로스트 랭귀지>는 이처럼 흔적만 남은 문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불어 문자 해독에 대한 안내이기도 하다. 500쪽 가까운 분량이라 자칫 엄두가 안 날 수도 있지만, 고대 문자를 찾아가는 길이 생각만큼 지루하지는 않다. 이 주제를 처음 접하여 용어나 지명 등이 낯설다면 따로 표시를 해 두고 책 여백이나 메모지에 적어가며 읽으면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작은 정성은 의외로 효과가 크다. 문자 해독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기호를 말로 바꾸는 것, 즉 소리 내어 읽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록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해독이란 소리로 음역하며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둘 중 한 가지 혹은 둘 모두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 추론이 다른 사례에 두루 잘 맞아떨어져 정합성을 인정받는다면 그 문자의 수수께끼는 풀렸다고 보는 것이다. 문자를 해독할 때 기초가 되는 작업은 글을 쓰는 방향을 알아내고 수 체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집트 성각문자(聖刻文字·Hieroglyphs)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가는데, 이와 비슷하게 생긴 에트루리아(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옛 나라) 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적는다. 어느 방향으로 적혔는지 알아야 문서에서 어디에 공간을 두었는지, 글자가 어떤 식으로 몰려있는지, 문자의 방향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숫자 표기는 문자와는 별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수 체계는 문자 해독의 중요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해당 언어 사용자들의 과학 기술 수준이나 세계관을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마야 문자 해독은 숫자 표기 및 진법 등 수 체계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문자 해독은 증거 수집, 일반화, 검증, 적용, 반례 탐색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은 일반적인 과학 탐구 과정과 유사하다. 그러니 규칙성을 발견하고 일반화하는 데 흥미를 가진 여러 과학자들이 문자 해독에 뛰어들었던 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이집트 성각문자를 연구한 토머스 영은 물리학자이자 의사였으며, 양자전기역학의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은 한때 마야 문자 해독에 매달렸다. 이 책의 후반부는 여전히 미해독 상태로 남아 있는 메로에어, 에트루리아어, 선상문자 A, 원 엘람어, 롱고롱고어, 사포텍어, 파나마 지협어, 인더스어 등을 소개한다. 이들 문자를 살펴보는 과정은 단지 문자의 생성이나 사용에 관한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의 이해로까지 확장된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문자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고대 이집트의 성각문자이다. 성각문자는 약 500개로 이뤄진 상형문자 체계로 표음문자와 표의문자가 섞여 있다. 이 문자는 1822년 프랑스 학자인 샹폴리옹이 해독했다. 샹폴리옹 이전에도 그의 스승인 실베스트르 드 사시나 스웨덴 외교관이었던 오케르블라드, 영국의 토머스 영 등 여러 학자가 해독을 시도했다. 이 중 드 사시는 성각문자에 표음문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추론하고, 토머스 영은 일부 성각문자의 음가까지 발견해냈으나 결국 샹폴리옹에 이르러서야 해독은 완성되었다. <문자를 향한 열정>은 문자 해독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샹폴리옹의 생애에 대한 책이다. 흔히 천재는 타고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일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천재는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천재성은 천재 개인이 속한 사회 제도, 정치적 배경, 교육 환경, 가족의 경제력 등 사회적 관계망 가운데 발휘된다는 것이다. 샹폴리옹은 문자 해독에 필요한 지적 호기심과 인내력, 분석력, 통념을 뛰어넘는 직관 등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다. 특히 외국어 습득에 탁월했다. 열여섯살이 되기 전에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아람어, 페르시아어 등 여러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천재라 불릴 만했다. 그러나 성각문자 해독을 시도했던 이전 학자들의 성과(혹은 오류)가 없었다면,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통해 수많은 유물을 프랑스로 들여오지 않았다면, 형의 정신적·경제적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그가 최초의 성각문자 해독자로 역사에 이름을 새길 수 있었을까. <문자를 향한 열정>을 읽으며 그의 천재성과 더불어 인간관계, 사회적 배경 등을 눈여겨볼 이유다. <문자를 향한 열정>에서는 샹폴리옹의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경쟁자였던 토머스 영이나 드 사시 등 주변 인물의 옹졸함을 드러내는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샹폴리옹이 성각문자 해독을 주제로 쓴 논문을 발표한 이후에 토머스 영의 심경을 ‘체면을 차리기 위해 경쟁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질투심이 거의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와 같이 적고 있다.(242쪽)
<로스트 랭귀지>에선 좀 다르다. 샹폴리옹이 성각문자를 해독하기 전 드 사시나 토머스 영이 성각문자에 표음문자가 섞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 발상이 샹폴리옹에게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데 상대적으로 무게를 두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각문자 해독 후 샹폴리옹이 토머스 영의 공로를 애매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같은 사안에 대한 두 책의 다른 관점을 비교하며 읽으면 재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김수연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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