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의산문답>
홍대용 지음, 이숙경 김영호 옮김,
꿈이있는세상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정약전 원저, 손택수 지음, 아이세움 담헌 홍대용은 조선 후기 실학자다. 과학, 수학, 철학, 음악, 문학 등 영역을 넘나들며 두루 궤적을 남겼다. 홍대용의 가슴을 가득 채운 것은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이었다. 그는 쉼 없이 솟아오르는 질문의 답을 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의산문답>은 그의 과학 사상이 집약된 책으로, 관념과 추상을 넘어 경험과 실증에 뿌리내린 탐구 정신을 드러낸다. 홍대용은 1765년(영조 41년) 숙부 홍억이 서장관으로 연경(지금의 베이징·북경)에 파견되었을 때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동행한다. 여행 중 그는 서양 및 중국의 과학, 종교 서적을 구하고, 발명품을 직접 관찰, 시연해 보았으며,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열띤 토론을 벌이며 앎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했다. <의산문답>은 이 여행에서 돌아와 지은 책이다. 이숙경과 김영호가 읽기 쉽게 풀어 적은 <의산문답>은 국역과 더불어 주요 용어, 인명,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한 주를 달아 이해를 도왔다. 덕분에 홍대용 책을 처음 읽는 사람이라도 그 사상의 일면을 이해하는 여정이 크게 힘들지 않다.
<의산문답>은 허자와 실옹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세우고 그들의 대화로 우주와 세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다. 허자는 30년 동안 숨어 지내며 책을 탐독한다. 사람의 본성과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뜻을 깨치고자 했다. 겨우 그 이치를 깨달았다고 여긴 허자는 속세로 나와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으나, 다른 이들이 알아주지 않았다. 다시 도피의 길을 떠나 수십 리를 걸어가던 중 ‘실거지문’(實居之門)이라 적힌 돌문을 보게 된다. 돌문으로 들어서니 괴상하게 생긴 거인이 나무 위에 지은 집에 홀로 앉아 있고, 쪼개진 나무판에는 ‘실옹지거’(實翁之居)라 쓰여 있었다.
거인은 허자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는데, 코넌 도일 소설의 주인공 셜록 홈스가 왓슨을 처음 만난 장면과 비슷하다. 허자의 음성, 옷차림, 태도 등에서 단서를 잡고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추리해 낸 것이다. 그러고 나서 실옹은 허자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한다. 허자는 자신의 기대와 상상으로 실옹의 정체를 구성하여 대답한다. 이를 들은 실옹은 허자를 꾸짖는다.
“너는 정녕 저 돌문에 적힌 ‘실거지문’과 쪼개진 나무에 쓰인 ‘실옹지거’를 보지 못했단 말이냐? 네가 분명 저 돌문으로 들어왔고 나무에 쓰여 있는 글자를 보았으니, 나의 이름이 실옹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인데 도리어 모른다 하고, 나의 현명함은 알지 못했을 것인데 도리어 안다고 하니, 너의 헛됨이 참으로 심하구나.”(27쪽)
실옹의 호통에는 실증과 논리를 중시한 홍대용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본 것과 들은 것, 확인할 수 있는 것, 누가 보아도 명명백백한 것이 아니면 헛되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런 사고방식의 맹점도 있다. 그러나 당시 명분을 중시하던 유교적 가치관이 만연했음을 고려할 때, 이와 정면 대립하는 상쾌한 반론임에는 분명하다.
<의산문답>에서 홍대용은 실옹의 입을 빌려 지구가 둥글고 자전하며, 우주는 무한하다는 현대의 천문학에 근접한 우주론을 역설한다. 또 일식과 월식, 바람과 구름, 비와 눈, 서리와 우박, 천둥과 벼락, 무지개 등 자연 현상의 원리를 천체의 위상이나 물의 상전이(相轉移) 등 개념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한편 인간이 다른 동식물보다 특별히 높은 지위에 있지 않으며 하늘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물이 평등하게 존엄하다고 주장하고,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며 이 세상 어디든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진술과 세계관을 관통하는 핵심은 ‘관점의 전환’이다. 우주의 중심을 지구에 놓고, 존재의 중심을 인간에 놓으며, 세계의 중심을 중국에 놓았던 당시의 통념을 깨고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한 것이다. 홍대용은 당시 지배층과 대립하는 이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관념의 세계에서 뽑아낸 이론으로 실재 위에 군림하고자 했던 양반 계급의 안일과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조선 후기 천문, 지리 과학서로 <의산문답>을 꼽는다면, 생물학 분야에서는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빼놓을 수 없다. 정약전은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흑산도에 유배되어 끝내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승을 하직했다. 동생 약종이 순교하고, 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되어 온 집안이 풍비박산된 처참함 중에서도 그는 학자로서의 결기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형을 받는 죄인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이것이 <자산어보>가 백과사전처럼 기록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정약전은 그림을 잘 그렸다. 그가 그린 ‘동물도’를 보면 염소의 털 한 가닥 한 가닥이 살아 있고, 눈에 눈곱까지 들러붙어 있다. 이처럼 정확하고 치밀한 관찰력은 <자산어보>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개체의 모양, 크기, 색깔, 질감 등을 골고루 적어놓았기에 읽는 이는 직접 보지 않고도 마치 눈앞에 나타난 듯 생생하게 생김새를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세심히 공들인 기록이기는 하나, 특별히 관심이 있어 찾아 읽는 이가 아니라면 원전의 국역으로는 밋밋할 수 있다. 그리하여 중·고등학생이 읽을 만한 책으로 손택수의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골라보았다. 이 책은 원전에 더해 정약전의 생애 전반을 소개하고, 그의 아우 정약용, 저술에 큰 도움이 되었던 흑산도 주민 창대 등 정약전과 함께 호흡했던 이들의 삶을 더불어 전한다.
<자산어보>를 완역한 것은 아니지만 처음 읽는 이에게는 부담되지 않을 만한 분량이며, 해설이 자상하고 그윽하다. 이 책을 읽고 정약전과 <자산어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이태원의 책 <현산어보를 찾아서>로 이어가면 좋을 것 같다. 다섯 권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한번쯤 해볼 만한 도전이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김수연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홍대용 지음, 이숙경 김영호 옮김,
꿈이있는세상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정약전 원저, 손택수 지음, 아이세움 담헌 홍대용은 조선 후기 실학자다. 과학, 수학, 철학, 음악, 문학 등 영역을 넘나들며 두루 궤적을 남겼다. 홍대용의 가슴을 가득 채운 것은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이었다. 그는 쉼 없이 솟아오르는 질문의 답을 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의산문답>은 그의 과학 사상이 집약된 책으로, 관념과 추상을 넘어 경험과 실증에 뿌리내린 탐구 정신을 드러낸다. 홍대용은 1765년(영조 41년) 숙부 홍억이 서장관으로 연경(지금의 베이징·북경)에 파견되었을 때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동행한다. 여행 중 그는 서양 및 중국의 과학, 종교 서적을 구하고, 발명품을 직접 관찰, 시연해 보았으며,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열띤 토론을 벌이며 앎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했다. <의산문답>은 이 여행에서 돌아와 지은 책이다. 이숙경과 김영호가 읽기 쉽게 풀어 적은 <의산문답>은 국역과 더불어 주요 용어, 인명,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한 주를 달아 이해를 도왔다. 덕분에 홍대용 책을 처음 읽는 사람이라도 그 사상의 일면을 이해하는 여정이 크게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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