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논술 원리와 실제
■ 통합논술의 원리
사례만 논거로 제시하면 부적절
통합논술의 모든 문제에 대해 특별히 정해진 답안 형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다. 통합논술은 논제의 유형과 요구 내용에 따라 답안의 형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입논술에서 우선적 평가 대상은 답안의 외적 형식이기보다는 논제의 요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 능력(논리적, 창의적 내용)이다. 실제 논술지도 현장에서는 개념 설명이나 요약 문제, 또는 200~300자 정도의 짧은 답안을 요구하는 논제에도 서론·본론·결론 형식을 적용한 답안을 종종 보게 된다. 이 경우 답안 내용의 충실도를 떨어뜨리기 쉽다. 오히려 문장이나 단락을 독창적 방식으로 구성하여 답안의 설득력을 높인 경우 형식에 치중한 답안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결국 형식의 적합성은 논제의 요구에 얼마나 잘 맞는가에 따라 판정된다.
통합논술 문제의 답안은 논리적 설명이나 설득, 논증의 형식을 취하는 글로서, 편의상 모두 논술문이라고 칭한다. 논술문의 기본적 요건은 내적으로는 주장(또는 판단)과 근거이고, 외적으로는 문장과 단락의 논리적 구성과 연결이다. 특히 단락은 글의 논리성을 부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단락의 구성은 단락 내 문장의 배치에 관한 것이고, 단락의 연결은 글 내부의 단락 배치에 관한 것이다.
논술문의 단락은 중심문장과 뒷받침문장으로 구성된다. 중심문장에는 단락의 핵심어와 소주제가 담긴다. 중심문장은 되도록 짧게 쓰되 소주제가 분명히 드러나게 써야 한다. 뒷받침문장에는 부연문장과 논거문장이 있다. 부연(敷衍)문장은 중심문장과 논거문장 뒤에 덧붙이는 문장으로, 앞 문장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상술하는 역할을 한다. 학생들의 답안에서는 앞 문장과 동일한 내용을 표현만 바꾸어 쓴 문장이 자주 발견된다. 이는 환언(換言)이나 부언(復言)에 해당되는 문장으로 중복 표현에 따른 감점을 초래할 수 있다. 논거문장은 앞에 제시한 주장이나 판단에 대한 이유를 나타내는 문장이다. 학생들은 종종 사례만을 논거로 제시하기도 하는데, 사례 논거는 대개 이유를 보완하는 부차적 근거이므로 단독으로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사례를 단독 근거로 사용할 경우 논리의 비약에 해당하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단락의 구조는 주로 중심문장을 앞에 두고 뒷받침문장을 뒤에 배치하는 두괄식이 많이 쓰인다. 이는 논제의 요구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문장을 앞에 둠으로써 독자(평가자)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논지 이해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평가자의 궁금증(중심평가대상)에 우선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평가자의 호감을 유도하는 데 유리하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대입 논술고사의 경우 빠른 속도로 채점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평가자의 피로감을 높이거나 혼란을 초래하는 복잡한 구성은 수험생에게 유리할 리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답안을 무조건 두괄식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락의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논리성이므로 문장의 배치나 연결이 논리적이고 흐름이 자연스러우면 문제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개요 작성 단계에서 문장의 배치와 연결에 문제가 없는지 수시로 점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한 편의 논술문 안에서의 단락 배치와 연결은 논제의 요구 조건이나 유형에 따라 다르다. 논술의 답안은 논제의 요구사항이 단일한지 복합적인지에 따라, 또는 요약, 설명, 논술 등 논제의 유형 및 제한 분량에 따라 단락의 수와 크기 및 배치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는 응시자의 견해가 포함되는 논술형 논제에는 서론·본론·결론의 삼단 구성이 필요하고, 단순한 요약이나 설명 등을 요구하는 논제에서는 본론만 간결하게 서술한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는 300자 내외의 짧은 분량 안에서도 삼단 구성을 요구하기도 하므로 대학별 출제 경향도 알아두어야 한다.
논술문 작성의 기초는 ‘한 단락 쓰기’에서 시작된다. 한 단락 쓰기를 제대로 익히고 나면 단락의 배치나 연결은 일종의 요령에 해당되므로 다양한 논제를 연습함으로써 터득할 수 있다. 여러 단락의 논술문 구성 연습은 ‘개요 짜기’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개요는 논제 분석과 동시에 구성하되 자신에게 맞는 작성 원칙을 개발해야 한다. 개요 작성의 일반적 원리와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논제의 유형과 궁극적인 요구 내용을 파악한 뒤 답안 전체의 논지를 정한다.
둘째, 각 논제의 요구사항별로 대응하는 단락의 수와 크기를 정한다.
셋째, 논지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단락의 순서를 정한다.
넷째, 각 단락의 중심문장을 작성한다.
→ 중심문장들만 순서대로 연결해도 논지가 분명히 드러나는지 점검한다.
다섯째, 각 단락의 뒷받침문장을 작성한다.
→ 문장의 배치와 연결이 자연스러운지 점검한다.
여섯째, 작성된 개요가 논제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였는지 검토한다.
※ 개요는 되도록 표로 작성하고, 각 문장에는 번호를 적어 문장 수와 분량을 한눈에 알 수 있게 작성한다.
※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뒷받침문장부터는 중요 어휘들만 기입해도 된다.
다음 논제에 대한 개요 작성 사례를 살펴보자. 논제는 ‘2011년 홍익대 수시’ 문제(<함께하는 교육> 2012년 3월5일치 참고)의 하나로 ‘제시문 (카)의 입장에서 제시문 (자)와 (차)의 시각을 비교 분석하라’는 것이며 제한 분량은 1000±100자이다.
[논제와 제시문 분석]
1. (카)의 입장 분석 및 구체화
<2022> 입장: 법관의 판단에 대한 확신은 (신뢰성을 확보해 주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가능 → 문제는 법관의 주관적 신념(양심)이 객관적 신뢰를 확보하는 방안 필요 → 법관의 판결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외형적 형식이나 장치 필요
2. (자)의 시각: 법정의 신뢰성은 외적 요건에 의한 권위에서 비롯함
<2022> 법정의 외형적 요건을 갖춤 → 인적 구성과 건물의 구조 및 법정의 운영 절차, 법관의 태도 등
<2022> 법관의 내면적 자질(자격)도 표정과 행동에 나타남 → 외적으로는 판결을 신뢰할 만함(객관적 신뢰 확보)
※ 필자의 불신을 감추고(억누르고) 있음 ← 필자가 분위기에서 주관적으로 느낀 점(1인칭 시점)
3. (차)의 시각: 법정의 신뢰성은 외적 요건에 의한 권위에서 비롯함
<2022> 외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함 → 법정의 위치와 시설, 법관의 태도에 불신의 요소가 많음
<2022> 법관의 내면적 자질(자격) 불인정 → 법관 자부심 부재(부끄럽게 여김), 부정행위 가능(뇌물, 횡령 등)
※ 필자의 불신이 겉으로 드러남 ← 필자가 객관적 환경을 바탕으로 추론(전지적 작가 시점)
■ 통합논술의 실제
상대방을 인정할 때 대화가 가능하다
※ 다음 문제에 대해 출제 대학이 제시한 2가지의 모범답안을 보고 그 답안을 쓰기 위해 작성했을 개요(역개요)를 위의 예시 개요표를 참고하여 각각 작성해 보자.
(자료 3)
‘대화적 관계’ 혹은 ‘대화적 삶’은 마르틴 부버(M. Buber)의 핵심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개념을 통해서 인간관계와 삶의 현상들을 파악하며 진단하고 있다. 인간의 참다운 관계는 대화적 관계일 때 가능하며 그래서 대화적 원리를 인간 삶의 기본 원리로서 추구한다. 부버가 말하는 진정한 대화는 말로 하든지 침묵으로 하든지 대화의 참여자가 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의 의도에 귀를 기울여 둘 사이에 생동하는 상호성이 생기는 대화를 말한다. 그것은 ‘너’를 진정으로 들으려고 하는 ‘나와 너’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는 서로가 상대방인 ‘너’를 진정으로 들으려고 한다. 부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대화의 내용이나 진행이 어느 일방에 의해서 결정되거나 주도되지 않고, 서로의 관계와 참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화나 대화적 삶은 반드시 상호성의 원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 이삼열, ‘마르틴 부버에서 본 대화의 철학’
(자료 4)
어렸을 때 겪은 일이지만 난 아주 기분 나쁜 기억을 한 가지 가지고 있다. 6·25가 터지고 나서 우리 고향에는 한동안 우리 경찰대와 지방 공비가 뒤죽박죽으로 마을을 찾아드는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경찰인지 공빈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또 마을을 찾아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은 우리집까지 찾아 들어와서 어머니하고 내가 잠들고 있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을 얼굴에다 내리비추며 어머니더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이 경찰대 사람인지 공비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답을 잘못 했다가는 지독한 복수를 당할 것이 뻔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상대방이 어느 쪽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채 대답을 해야 할 사정이었다. 어머니의 입장은 절망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절망적인 순간의 기억을,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가려 버린 전짓불에 대한 공포를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 이청준, ‘소문의 벽’
[문제] (자료 3)의 관점에서 (자료 4)를 분석하고, (자료 4)에 나타난 상황을 극복하고 진정한 대화를 위해 필요한 방안을 제시하시오. (800자 내외) - 2013 외대 모의
[참고]
문제의 분석 대상인 (자료 3)과 (자료 4) 앞에 제시된 영문 제시문 두 편과 한글로 쓰인 (자료 1)과 (자료 2)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시문 A>와 (자료 1)은 문맥이나 전제된 상황 없이도 언어의 논리적 체계만으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며, <제시문 B>와 (자료 2)는 문맥이나 상황 맥락 없이는 언어만으로 명확한 소통을 이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예시답안 1] → 2 단락 구성
(자료 3)은 대화를 통해 인간관계와 삶의 현상을 파악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사람 간의 참다운 관계를 맺게 하는 진정한 대화적 소통을 위해서는 상호적으로 진심을 가지고 교감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하지만 (자료 4)에 제시된 상황은 대화의 원리가 지켜지지 않아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화자의 절망적인 순간으로 기억되는 그때 화자의 엄마는 집을 찾아온 누군가에게 강압적으로 대화를 요구당했다. 그때의 “당신은 누구 편이냐”는 질문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진정성도 담겨 있지 않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말이었기 때문에 상호성도 없다. 이와 같이 (자료 4)는 전쟁으로 인해 삶의 기본적 원리인 대화가 잘못된 방법으로 강요되는 시대의 아픔과 동시에, 대화로 인해 상처를 얻은 개인의 아픔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화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이다. (자료 4)의 상황에서도 엄마는 상대방의 상황을 알았더라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 또한 집에 들어온 낯선 이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민간인의 입장을 생각했더라면 물음에 대한 답을 강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개인의 마음을 보여주기도, 상대방의 마음을 볼 수도 있는 의사소통 과정이다. 이러한 진실된 관계에서는 각자 전달하려는 목적만 있는 말만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주는 태도가 더 바람직하다고 믿어진다. 그러한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생겨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고 대화를 통해 삶을 더 풍족하게 할 수 있다.
[예시답안 2] → 3단락 구성
(자료 3)은 진정한 대화의 원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진정한 대화는 상호성의 원칙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상대의 발화 의도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상대에게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려는 존중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대화의 내용이나 진행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상호간의 소통과 참여가 있어야만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료 4)를 봤을 때 (자료 4)에서는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과거 상황에 대해 기분 나쁨과 절망감, 공포의 감정을 느낀다. 그 원인은 우선 상대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낯선 사람은 적을 색출하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또한 자료 안의 대화 상황에서는 대화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으며, 대답을 강요하는 일방적인 대화라는 점에서도 상호성이 없어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료 4)의 상황을 극복하려면 진정한 대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선 제시문에 등장한 낯선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어 서로를 파악한 뒤, 자신이 무슨 의도를 갖고 대화를 하려는 것인지 밝히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방적이고 강제적으로 요구한, 대화가 아닌 대답만을 듣고 한 번에 상대를 파악하면 안 된다. 대화를 나눠보고 서로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제시문의 ‘나’와 ‘어머니’ 역시 대화에 참여해 스스로의 의견과 생각을 밝혀야 한다. 이러한 상호성이 진정한 대화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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