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6일 일요일. 교육공동체 ‘나다’의 인문학 수업이 열리고 있다.
교육공동체 ‘나다’의 수업
필기도구 없어도 되고, 반말해도 되는 시간
‘듣는 수업’ 아니라 ‘참여하는 수업’이 돼야
필기도구 없어도 되고, 반말해도 되는 시간
‘듣는 수업’ 아니라 ‘참여하는 수업’이 돼야
“청소년이 평소에 하는 정치활동으로는 뭐가 있지?”(활동가 임성민씨)
“없어!”(학생 1)
“서명운동?”(학생 2)
“학급회의!”(학생 3)
“평소에 학급회의는 하냐?”(임성민씨)
“아니. 한다고 해도 애들이 빨리 끝내라고 하지. 의견 없다고 해. 어차피 내놔도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학생 3)
지난 12월16일 일요일. 서울 충정로에 있는 진보교육연구소의 한 공간. 교육공동체 ‘나다’의 활동가 임성민씨와 학생들의 질문과 대답이 꼬리를 문다. 나다의 인문학 수업에 참여하는 열 명의 학생들이 모인 시간은 오후 2시쯤. 보통 학생들이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 낮잠을 자거나 학원 갈 준비를 할 시간이다.
최근 나오는 청소년 대상 인문학 강좌들은 주최하는 곳마다 프로그램 구성 방식이 다르다. 흔히 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놓고 함께 읽는 경우도 있다. 롤모델이 될 만한 인물들이 와서 강연을 하기도 한다. 신문에 나오는 사회적 이슈를 놓고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도록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날 나다의 인문학 수업은 사회적 이슈 그리고 책을 매개로 청소년 일상의 문제에서부터 인문학의 의미를 찾아보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나다는 청소년 인문학 수업이 많지 않았던 2001년에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로 시작을 알렸다. 그 뒤 2004년 청소년, 학부모, 철학교사들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인 ‘교육공동체 나다’로 출발한 뒤 인문학, 철학 관련 수업들을 이어가고 있다. 활동가 임씨는 “최근에는 학교, 공부방 등에서 인문학 수업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수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학생들은 엄밀히 말해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수업에 참여하러’ 온 분위기였다. 처음엔 부모의 권유로 발을 들이게 됐지만 이 수업의 선택권은 학생 자신한테 있었다. 이날도 임씨는 처음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한테 조심스럽게 “여기에 왜 왔니?”라고 물었다. “오늘 들어보고 별로면 안 와도 돼. 솔직하게 말해줘.”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학생들 손에는 필기도구가 없었다. 스마트폰 하나만 달랑 들고 온 학생도 있었다. 특별히 뭘 적지 않아도 되는 수업이었다. 원하는 경우, 임씨한테 반말을 해도 됐다. 임씨는 “이 수업에서만큼은 친구처럼 평등한 관계에서 자신의 생각들을 마음껏 말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이날 수업 주제는 ‘정치’였다. 꽤 무거운 주제였지만 무상급식, 일제고사, 학교폭력 가해자의 학생부 기재, 그리고 셧다운제 등 대선후보들의 교육 공약에 나온 사안들에서부터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자 학생들은 질문을 하기 바쁘게 자기 생각을 털어놨다. 수업의 결론은 선거로 나라의 대표를 뽑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지만 대표를 뽑은 뒤에도 끊임없는 견제가 필요하다는 데 이르렀다.
전동중 3년 이가원양은 초등학교 때 엄마의 권유로 나다의 방학특강을 들었다가 이번에 다시 수업을 듣게 됐다고 했다. 자기 생각을 유독 적극적으로 드러낸 이양은 “학교에서 이렇게 말하면 무시를 받을 수도 있고, 야유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걸 생각 안 해도 되어 좋다”고 했다. 진관중 2년 주명우군은 “조금 틀려도 된다. 내 마음대로 마음속에 있는 말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백신중 2년 정세진군은 “어른들은 ‘신문 봤냐?’ ‘어떤 내용이야?’ ‘왜 그걸 기억 못하냐?’ 이렇게 강요하는데 인문학 수업을 통해서는 사회현상에 대해 듣고 말하다가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알게 돼 좋다”고 했다.
인문학 수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인문학 수업 교재를 누리집에 올려두자 논술학원에서 복사를 해가기 시작했다. 자료는 모든 사람들한테 열려 있지만 사교육 시장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아 자료가 필요하면 나다 쪽에 전화를 걸어 어떤 의미로 필요한지 상의를 하고 쓰는 방식으로 바꿨다. 임씨는 “사실 수업 매뉴얼이 아무리 잘 짜여 있어도 아이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고 어떤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라 매뉴얼을 갖고 간다고 해도 제대로 된 인문학 수업을 못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임씨는 학생들과 인문학 수업을 하면서 느낀점을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했다. 하나는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 만나서 인문학 수업을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임씨는 “도덕 교과 대신 인문학이나 철학을 교과에 포함시키고 공교육 안에서 확대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문학은 이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처럼 평범한 학생들한테만 필요한 학문은 아니다. 임씨는 “또 하나의 고민은 빈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없다는 점”이라며 “빈곤 청소년처럼 소수자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중요한 화두인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이 전무하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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