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상한 일자리를 발견했다. 엄청나게 부유한 재단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5일 출근해서 재단에 설치된 ‘시간제거’ 기계에 평생 하루에 4시간 이상 8시간 중 자신이 선택한 시간만큼 들어가라. 이것이 일의 전부다. 그러면 그 시간 분의 임금이 나온다. 기계에 들어가면, 주관적으로는 기계에 들어갔다고 생각한 순간 직후에 기계에서 나온다고 느낀다. 신체의 휴식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당 임금은 당신이 먼저 제의해야 한다. 제의한 임금이 재단이 비밀스럽게 정한 기준보다 낮으면 당신이 제의한 대로 임금이 결정되고, 재단이 정한 기준보다 높으면 영원히 이 일은 할 수 없다.” 당신은 시간당 얼마의 임금을 말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돈으로 환산한 당신의 시간 가치를 의미한다. 선택한 시간을 완전히 무(無)로 만드는 대가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시간제거기에 들어가는 시간당 대가를 자신이 현재 받고 있는 시급보다 높게 부른다. 왜냐하면 일이란 보통 다른 사람의 삶에 기여하고 세상에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약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완전히 무의미하거나 오히려 해악을 가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받던 시급보다 더 낮은 금액을 재단에 제시할 것이다.
4시간이라면 친구를 만나 실컷 놀 수도 있고, 재미있는 영화도 보고 만화도 보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매일 없어진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버는 데 도움 되지 않는 활동을 하는 것’을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 뜻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수면기계에 들어가는 일은 돈을 버는 일이지만, 그 시간은 죽은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시간을 죽이는’ 활동이지만 본인에게는 유의미한 휴식 활동일 수 있다.
“무엇이 유의미한 활동이냐”의 판단 기준이 자신이 될 때도 “어느 시기의 남는 시간을 저축해서 다른 시기에 꺼내 쓰면 참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활동을 할 수 있을 때 시간은 가장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시간을 저축해서 꺼내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요령은 쓸 수 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이 자투리로 이루어져 있다. 화장실 사용하기, 서서 버스 기다리기, 서거나 앉아서 지하철 기다리기, (서거나 앉아서) 버스 타기, (서거나 앉아서) 지하철 타기, 친구 기다리기, 혼자 음식 주문하고 음식 기다리기, 컴퓨터 부팅 기다리기, 지하철 환승구 걸어가기 등등. 이 자투리 시간을 잘 보내면, 자투리들을 저축해서 새로 통째로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
자투리 시간에 좋은 일 중 하나는 ‘반복 훈련’이다. 서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새로운 것보다는 이미 했던 것을 반복하는 데 적합하다. 앉아서 보내는 시간은 새로운 내용을 독서하기에 좋다. 중요한 것은 자투리 종류별로 사람마다 잘되는 활동의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자투리 시간별로 착 달라붙는 활동을 찾아낼 수 있다. 실험을 반복하다 보면 “지하철에서 앉으면 무조건 번역”하는 식으로 습관이 붙게 된다. 처음에는, 휴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투리 시간을 모두 열거해서 종이에 적고, 잘 들어맞는 활동을 옆에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모든 자투리 시간에 적극적인 행위를 할 필요는 없다. 그 시간에는 휴식이 가장 적절하면 휴식 시간으로 정해둔다.
<이것이 공부다>·<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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