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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앎은 사랑의 첫걸음이다

등록 2012-12-03 11:56수정 2012-12-03 13:50

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소통
소통은 관심에서 시작하고 관심은 앎을 낳는다. 그리고 앎은 사랑의 첫걸음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이 말은 그의 저서 <인간과 동물>의 부제로 쓰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알면 사랑한다’보다는 교과서에 실린 수필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최재천 교수는 사랑으로 통하는 지식을 담은 책을 여럿 펴냈다. 그중 청소년에게 권하고 싶은 첫 번째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개미제국의 발견>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책과의 첫 만남은 십 년도 더 전 일이지만, 어귀에 실린 ‘나의 개미세계 여행’이라는 잊을 수 없는 수필 때문이다.

평생 몰입할 일을 시작하는 계기는 종종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한다. ‘나의 개미세계 여행’은 개미 연구 대가인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가 되도록 저자의 마음에 불을 지핀 우연한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내용을 소개하고 싶지만 직접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생략한다.)

‘나의 개미세계 여행’을 읽고 호기심이 발동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 개미에게 전에 없던 관심을 갖게 될 확률이 높다. 본격적으로 개미 이야기가 시작되는 ‘개미 사회의 경제’를 비롯한 모든 장에서 저자는 개미 사회를 인간 사회에 빗대어 설명한다. 일사불란하게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개미 군락의 협조 체계를 컨베이어 벨트식 분업 공정으로, 생존에 가장 유리한 군락의 적정 크기를 규모의 경제로 연결하는 식이다.

이는 다분히 인간 중심적 관점이기도 한데, 그 때문에 결국 개미 이야기는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된다. 개미가 인간보다 먼저 농사를 지은 지구 최초의 농사꾼임을 아는 순간 자신을 최초의 경작자로 꼽는 인간의 오만이 떠오른다. 또 인간에 필적할 정도로 자원을 끌어모아 사용하기는 하기만 과시적으로 소모하지 않는 개미의 습성은 악착같이 희소한 것에 집착하는 인간의 탐욕과 대조된다. 이름처럼 거만할 것만 같은 여왕개미가 사실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몸으로 일개미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일개미의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평생 교미하고 알 낳는 일을 한다는 걸 알고 나면 보이는 그대로 믿었던 무지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 밖에도 <개미제국의 발견>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여왕개미와 합종연횡하는 아즈텍 여왕개미의 행태나 곰팡이가 스는 것을 방지하려고 번데기 껍질을 이용해 도배를 하는 습지 개미의 지혜,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적정 시간 일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일개미의 시간표 등 개미의 여러 가지 생존전략을 읽을 수 있다. 인간과 가장 닮은 곤충이 개미라는 말은 여러모로 일리가 있다.

개미가 인간 사회생활과 흡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곤충이라면, 인간과 외양마저 비슷한 동물이 엄연히 있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가 그러하다. 이들은 그럭저럭 비슷해 보이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침팬지는 집단 구성원이 계속 변하고 그에 따라 사회적 위계도 제한적으로만 성립한다. 반면 고릴라 집단은 엄격한 위계질서가 지배하고, 집단의 경계도 뚜렷하다. 오랑우탄은 대개 혼자 다니며, 교미할 때만 암컷과 수컷이 잠시 만날 뿐이다.

<유인원과의 산책>은 이들 영장류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여성 과학자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의 이야기다. 이 세 사람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릴 때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고, 바깥 활동을 좋아했으며, 그들이 택한 영장류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깊이 사랑했다는 점이다. 또 이들은 모두 케냐 출신 영국 고고학자 루이스 리키의 제자였다.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해낸 엄청난 일을 보면 그들의 스승에게 사람을 보는 남다른 안목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는 각각 침팬지, 마운틴고릴라를 관찰했는데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서식 환경을 조작하거나, 동물의 몸에 전자칩을 넣는 등의 인위적 개입을 최대한 자제한 채 조용히 그리고 오랫동안 그들을 관찰하고, 이야기하듯 기록한 것이다. 제인 구달은 학사 학위도 없이 연구에 참여했는데, 오히려 이런 배경 덕분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이 가능했다. 비루테 갈디카스는 좀 달랐다. 현대적 자료수집과 통계 기법을 교육받은 갈디카스는 한 번에 한 개체만을 골라 그 행동을 분(分) 단위로 점검표에 기록하는 초점동물표집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영장류를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한 도구로 보지 않았다는 점은 앞의 두 사람과 같았다.

세 여성 과학자는 영장류와 소통하기 위해 적당히 멀리에서 시작하여 아주 천천히 서식지에 접근했다. 주로 호기심 많은 어린 영장류들이 먼저 인간에게 손을 건넸다. 마음을 나누는 데는 눈빛을 읽고 손을 잡고 털을 고르는 정도의 신체 접촉만으로도 충분했다. 결국 다이앤 포시는 디지트라는 수컷 고릴라와 깊이 교감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고릴라가 ‘영혼을 두드리는 눈빛’을 지녔다고 말했다. 생물학자 이언 레드먼드는 다이앤과 고릴라는 인간과 동물이 맺을 수 있는 최고의 관계였다고 인정했다. 그들은 완전히 평등한 조건에서 다만 함께 있는 것을 원했고,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평화와 충만함을 공유했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은 이런 소통의 힘을 담은 말이 아닐까. 다이앤은 어려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양아버지에게서도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했지만 양아버지는 더럽다고 사주지 않았다. 인간의 틈에서 늘 고독했던 다이앤은 결국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기댈 수 있었다. 끈기 있게 기다리며 조금씩 고릴라 디지트에 대해 알아갔던 긴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김수연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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