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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부모 주도권 포기한 만큼 아이의 주도성 커진다

등록 2012-11-19 10:20

박재원의 공감학습
박재원의 공감학습
박재원의 공감학습
“앞으로 네 일은 내가 아니라 네가 결정해라”는 태도 필요
기본은 자녀에 대한 믿음…사교육 불안감에 떨지 말아야
함께 사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돈을 준다. “메모지에 적은 대로 장을 봐 와라.” 장에 다녀온 며느리에게 음식 메뉴를 정해주면서 하는 말, “이 메뉴를 지금부터 자기주도적으로 열심히 만들어라!” 경제권도 메뉴 선택권도 없는 그 며느리는 과연 자기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자기주도 학습이 대유행이지만 현실은 너무나 모순투성이다.

자기주도 학습의 허구적 논리

어린 시절 분명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유치한 생각은 꿈이 될 수 없다는 부모의 핀잔이 기억에 남아 있다. 한번 주눅이 든 다음부터는 유치한 꿈 대신 부모가 그린 인생 설계도를 따라가야 무탈하다는 사실을 학습한다. 부모님의 설계에 의해 정해진 일들, 특히 학교 밖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학습지를 하고, 학원에 다니는 일만 해도 사실 벅차다. 간혹 정말 꿈을 꾸고 싶지만 꿈을 꿀 여유가 없다. 잠깐 나는 짬은 스트레스 풀기에도 빠듯하다. 그래서 자주 듣는 말, “꿈을 꾸라고 했는데 왜 게임만 하려고 해!”

꿈을 구체화시켜 목표를 정해야 자기주도적이 된다는 말에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정하기는 했다. 자신에게 헌신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부모의 바람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목표까지 확실하니 플래너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라고 한다. 일단 학원과 과외 시간처럼 ‘의무’를 기록하고 나니 별 여유가 없지만, 자기주도 학습 시간이 부족하면 안 된다고 독촉하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무리하게 계획을 세울 수밖에. 정말 계획은 완벽한데, 계획대로 실천하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왠지 의욕보다는 부담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또다시 자주 듣게 되는 말, “계획대로만 하면 되는데 무슨 핑계가 그렇게 많냐고…”

부모에게 의존적인 어린아이를 독립시키려면 당연히 자기주도성을 길러줘야 한다. 그래서인지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아이에게 자기주도적일 것을 요구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은 점점 의존적으로 퇴화되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을까?

일부 자기주도 학습 판매자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꿈→목표→계획→실천’이라는 단순한 공식대로 당신들은 살았냐고?” “캠프에 가서 유명인사의 동영상을 보고, 진로검사를 하고, 선배들과 대화를 하고, 촛불의식을 하고…그렇게 해서 불과 며칠 만에 만들어진 것이 과연 한 인간의 소망을 담은 꿈일 수 있느냐고…”

캠프에서 자기주도 학습을? 또다른 ‘부모 주도’의 폐해

지역 강연회에서 만난 한 아빠의 밝아진 표정이 기억난다.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의사가 꿈이라고 했던 아들이 점차 한눈을 팔아 충고를 했는데 반항을 해서 당황했다고. 그런데 자기주도 학습 캠프에 관한 얘기를 듣고 조심스럽게 권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그리고 캠프에 다녀온 아이가 다시 의대를 목표로 계획을 세워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말을 해서 무척 기뻤단다. 하지만 처음에는 정말 캠프에서 배운 대로 하면 될 것 같아 열심히 했는데 점점 계획대로 잘되지 않아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고 한다. 자괴감에 빠진 아이를 보면서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오늘 강연을 통해 해법을 찾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

어릴 적 그렇게 말도 잘 듣고 총명했던 아이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급당황하기 시작한다. 아이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여유도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보지만 신통치 않다. 그 순간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켜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상황은 더 악화되고 만다. 비슷한 사례를 많이 상담했지만 놀랍게도 아이 탓만 했지 캠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아이를 그렇게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는 반성은 전혀 보지 못했다.

진실은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하지만 정말 자기주도성이 강한 아이들을 키워낸 부모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알파맘’이니 ‘헬리콥터맘’이니 하는 말에 피식 웃을 뿐인 그들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분명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아이 인생에 결정적이라고 믿는 세태에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기에 함부로 지시하거나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어른이 잘 타이르고 특히 부모가 못된 버릇을 고쳐야 반듯하게 자란다는 생각, 바로 동양의 서열문화가 낳은 부모 우월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또 사교육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주변 엄마들의 충고보다는 아이의 감정과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불안감을 유발하는 학원 홍보물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아이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 아이를 업고, 끌고 가면서 앞으로 치고나가는 엄마들을 보면서 불안감에 떨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선택한 아이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를 부모로서 꼭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작된 불안감과 경쟁 논리에서 벗어나야

자녀를 의존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부모들의 순수한 바람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부모가 하루라도 빨리 아이의 영재성을 읽어내고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린아이의 철부지 생각보다는 부모의 판단이 우월할 수밖에 없기에 부모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이 주도하는, 그래서 아이는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길을 선택한다.

아이 중심으로 교육을 시키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경쟁에서 앞서 갈 수 있다고 훈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자를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부모들이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아이의 자기주도성 발달 기회를 빼앗는다.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도 부모들을 조급하게 만든다. 학년과 학기별 교육과정이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을 얼마나 시켜야 앞서 갈 수 있는지 가늠하는 비교기준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부모들은 한가하게 아이에게 공부를 맡길 수 없다.

자신의 삶과 아이의 삶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들이 난리를 치면 주변 부모들이 모두 불안에 떤다. 그런 불안감이 없으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실 자기주도 학습은 공염불이 되거나 더욱 교묘하게 아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상품으로 변질되고 만다. 아이를 믿고 아이에게 공부를 맡기고 싶지만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아이 탓을 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기준이 존재하는 학교 교육이 아니라 경쟁 심리와 불안감을 무한히 자극하는 학교 밖 사교육 논리를 이제는 간파해야 한다. 아이를 믿지 못하는 마음은 바로 부모의 진심이 아니라 조작된 불안감과 경쟁 논리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을 때가 됐다.

‘캥거루족’에 이어 ‘연어족’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이의 삶을 자신의 의도대로 기획하고 관리해온 부모들에게는 사필귀정이 아닐까. 세상은 아이에게 주도권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부모가 주도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외치자. “세상은 내 아이를 믿지 말라고 말하지만 부모인 나만큼은 아이를 믿어야 아이가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지 않겠냐고!”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하자. 주변의 이야기보다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자. 지금 당장 아이에게 약속하자. “앞으로 네 일은 내가 아니라 네가 결정해라.” “내가 하는 말은 참고사항 정도로만 생각하면 된다.” 부모가 주도권을 포기한 만큼 아이의 주도성은 자라난다.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박재원의 부모효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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