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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특성화고 일제고사, 시행 첫날부터 ‘낙제점’

등록 2012-10-15 18:55수정 2012-10-15 21:54

컴퓨터로 시험 치르며 오류 빈발
프로그램 정지되고 음성 안들려
나중에 다시 치러 정답 노출도
출제도 상의서 맡아 비판 일어
특성화고(옛 전문계고) 학생들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대신 치르는 직업기초능력평가가 시행 첫날부터 파행 운영되면서 교육 현장이 큰 혼란을 겪었다. 이 시험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위탁을 받은 상공회의소가 진행했다.

교과부는 15일 전국 475개 특성화고 2학년 학생 4만1183명을 대상으로 직업기초능력평가를 실시했으나, 일부 학교에서 1교시 의사소통 영역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컴퓨터 프로그램이 정지하거나 음성이 들리지 않는 등 문제가 발생해 아예 시험을 치르지 못하거나 지연 실시되는 등 파행이 초래됐다. 직업기초능력평가는 문제지가 아닌 컴퓨터를 이용해 치러진다.

서울 ㄱ고교에서는 1교시 1번 문제를 푼 뒤 2번 문제로 화면이 넘어가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경기도의 ㄷ고교에선 아예 음성이 들리지 않아 1교시 나머지 문제를 20분 동안 풀다 그만두고 4교시가 끝난 뒤 1교시 시험문제를 다시 풀었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1교시 시험의 답안을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를 풀어도 답안이 전송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 학교도 있었다. 교과부는 이날 전국적으로 31개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해 8개 학교는 아예 사흘 뒤 시험을 다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직업기초능력평가는 전국의 모든 특성화고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계고의 일제고사처럼 기초적인 학력을 평가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이날 처음 치러졌다. 지난해까지는 인문계고 학생들과 동일한 시험을 봤으나, 국어·영어·수학 과목을 배우는 시간이 절반에 불과한데도 같은 시험을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올해부터 바뀌었다.

문제는 시험지를 나눠준 뒤 거둬들이는 방식의 인문계고와는 달리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교과부 관계자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취업을 하면 컴퓨터를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이용한 평가방식으로 바꾼 것”이라며 “일부 학교가 패치파일을 업데이트하지 않아 빚어진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교사들은 시스템 차원의 문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경기도 ㄷ고 교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시험 1주일 전 최종 패치파일을 업데이트한 뒤 아무도 접속하지 못하도록 수업도 제대로 못하면서까지 컴퓨터실 문을 잠가놓았다가 이날 열어 시험을 치렀다”며 “패치 문제라는 교과부 설명은 일선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전국 646개 특성화고 2학년 12만여명이 동시에 시험을 치를 만한 시설이 없다 보니 사흘에 나눠서 평가를 하는 것도 문제다. 3개 시험의 난이도를 맞추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미 일제고사로서의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면서 시스템 구축과 시험문제 출제까지 기업인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에 맡겨 놓는 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교과부는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낸다는 목적으로 30억원의 용역비를 주고 상공회의소 쪽에 평가사업의 진행을 위탁했다. 상공회의소는 사설 시험문제 출제업체인 ㅇ사에 출제를 맡겼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날 논평을 내어 “국가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를 상공회의소가 주관하고 그 정보를 기업체가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초법적인 발상은 큰 문제”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장기간의 시험을 사용자 단체가 학교 교육과정을 방해하면서까지 실시하는 행태는 공교육의 기반을 허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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