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외고 동아리 ‘이든샘’ 소속 학생과 가야복지관 공부방 ‘새날교실’ 학생들이 초밥과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군포시가야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청소년들의 소통과 교감능력이 경쟁력
학교와 지역사회단체의 지원도 늘어나
학교와 지역사회단체의 지원도 늘어나
재능기부는 각자가 지닌 재능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돈을 내는 기부는 1회성인 데 비해 재능기부는 전문성과 지식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기부라는 점에서 한 단계 진화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청소년들도 재능기부에 관심이 많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의 재능기부활동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 관심 있는 학생들의 재능기부 참여가 쉽지 않지만, 학생들의 재능기부활동을 지원하는 학교와 지역사회단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군포시가야종합사회복지관 부속 가야지역아동센터는 토요일에 부모가 직장에 나가는 탓에 갈 곳이 없는 8~13살의 초등학생 29명을 대상으로 공부방 ‘새날교실’을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운영한다. 새날교실 교사는 안양외고 1학년 12명, 2학년 11명으로 구성된 ‘이든샘’ 동아리 학생들이다. 조승희(안양외고2) 이든샘 회장은 “7년 전 동아리 선배들이 아동센터에 가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소년을 교사로 쓰기에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이은아 가야지역아동센터장은 “아무리 많이 배운 청소년들이라 하더라도 배움 면에서 성인들을 능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성인 교육 기부자들을 찾으려고도 했다”며 “학생들은 시험기간에는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탓에 센터에 나올 수 없다는 점도 우려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센터 쪽에서 고등학생들을 선생님으로 받는 이유는 그들이 교감능력이 뛰어나고 학생들과 소통을 잘하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기부자와 대상자 일대일 수업이기 때문에 그만큼 교감과 소통은 중요하다”며 “남을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오빠·누나와는 소통의 장벽이 크지 않기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조 회장은 “학습지도뿐만 아니라 1년에 한두번은 요리프로그램이나 나들이 같은 놀이 활동을 한다”며 “활동을 하고 나면 아이들이 우리를 더 잘 따른다”고 밝혔다.
청소년 재능기부자들의 강점은 ‘친화력’이다. 이 센터장은 “수혜자들은 기부를 받을 때 기부자들의 마음을 제일 먼저 받는다”며 “이 때문에 청소년들이 가지는 ‘교감’의 파급력은 굉장하다”고 치켜세운다. 성인들에 비해 수업능력은 떨어져도 청소년 재능기부자들이 경쟁력을 가지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연계 기관 및 방법을 몰라 재능기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능기부를 학교에서 도와준다면 어떨까. 분당에 위치한 대진고에서는 학교 자체적으로 다문화 학교를 운영한다. 경제적 어려움 탓에 사교육 도움을 받지 못하고, 또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는 다문화 가정의 초·중학생에게 도움을 줄 목적으로 대진고 학생의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 학교 동아리를 만들었다. 현재 1학년 89명, 2학년 53명, 3학년 31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성남시 다문화센터에서 다문화 가정을 소개받아 학생과 연계시킨다. 다문화 학교에서는 4인1조를 이뤄 한 가정을 맡아 주 3회 가정을 방문해 교육한다.
다문화 학교 대표를 맡고 있는 유숙자 학부모는 “꼭 학습 면에서만 도움을 주려는 건 아니다”라며 “다문화 학생들의 선생님이자 언니, 오빠가 되어주는 게 진짜 목적”이라고 밝혔다. 다문화 학생인 강연수(13)양은 “다문화 아카데미를 통해 미술, 영어, 체육 실력이 모두 향상됐지만 언니, 오빠들이 진짜 친언니·오빠 같아 정말 좋았다”고 털어놨다. 다문화 아카데미는 방학 중에 다문화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술, 영어, 배드민턴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다음 학기부터 다문화 학교 학생들에게 수업을 받을 예정인 강양은 “좋아요, 그냥 좋아요, 기대도 많이 되고 언니, 오빠들이랑 자주 만날 수 있으니까 좋고, 공부도 잘될 거 같아요. 열심히 할 거예요”라며 들뜬 기대감을 보였다.
농어촌지역에서도 청소년들이 재능기부를 할 공간이 열려 있다. 스마일재능뱅크는 스마일 농어촌 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재능기부 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해 농림수산식품부와 스마일 농어촌운동 국민운동 추진위원회가 설립해 운영하는 농어촌 재능 나눔터다. 이곳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의 취미나 적성에 맞게 노인들을 돌보고 즐겁게 해 드리거나 문화예술 재능기부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재능을 지닌 청소년들은 동아리를 구성해 단체로 재능을 기부하기도 한다. 노래·춤 동아리는 농어촌 마을 축제 때 꾸준히 준비한 실력을 선보여 마을 어른들을 기쁘게 하고, 사진 동아리는 마을 노인들의 영정사진이나 단체 사진 등을 찍어드림으로써 재능기부를 하기도 한다. 또 미술 쪽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마을 벽화 그리기 활동에 참여해 마을 환경 조성에 도움을 준다.
김영우(충주중)군은 글쓰기 재능으로 충북 충주시 동량면 지역아동센터에서 글짓기 교습을 했다. “돈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기부의 보람과 즐거움을 느꼈다”는 김군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주관한 농어촌 재능기부활동 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또 장려상을 받은 이동호(아산 설화고)군은 평소 관심 있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지식을 바탕으로 충남 아산시 내이랑 마을에 주민 편의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설치했다. 이군은 “내이랑 마을에 재능기부를 함으로써 전세계의 정보격차를 좀더 줄여보겠다는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청소년들의 재능기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 남을 돕는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농어촌자원개발원 재능관리팀 김대래 차장은 “학생들은 아직 배움의 단계이기 때문에 기부할 수 있는 이렇다 할 재능을 가진 친구는 많지 않다”며 “청소년들의 재능기부 활동에선 ‘나눔’에 대해 배우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농어촌 재능기부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스마일재능뱅크(www.smilebank.kr)에 회원가입하고, 재능기부 분야와 희망지역을 선택하면 참여 가능하다.
김지원(안양외고), 신유진(성남 불곡중) 학생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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