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 교과서 삭제 ‘없던일로’
시인이 국회의원이 됐다는 이유로 10년째 교과서에 실려온 그의 시를 삭제하려 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무모한 시도는 교과서 검정심의회가 10일 삭제 권고 결정을 번복함으로써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논란은 애초 종잡을 수 없는 평가원의 잣대에서 시작됐다.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과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의원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교과서에 이들을 언급하거나 이들의 작품을 싣는 게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다는 논리는 지나친 비약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더구나 여권의 국회의원과 공천심사위원장을 지낸 김춘수 시인과 이문열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었다. 평가원은 민주통합당 당원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올해 대선의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글도 문제 삼지 않았다. 평가원의 논리를 따르자면 국회의원은 정치인이지만 나머지는 아니라는 비상식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교과서검정심의회는 내부 회의 방식의 문제점도 드러냈다. 평가원 관계자는 “6월 회의 때 일부 위원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가 국회의원이 됐으니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논의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검정심의회는 정치인의 범주를 정하고 정치적 중립성의 맥락을 설정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확장하지 못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 문제에 대한 유권해석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뢰한 평가원의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법이 쥐여준 스스로의 권한을 다른 기관에 무책임하게 떠넘긴 탓이다. 앞으로 교과서 내용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선관위에 달려갈 것이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교과서다. 중립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교과서검정심의회의 위상에 큰 상처가 난 탓이다. 이날 검정심의회 회의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평가원이 하루 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 소집해 열렸고, 스스로의 결정을 번복한 가장 주된 근거는 외부 기관의 유권해석이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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