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향 교사가 문화고 재직 당시 학생들과 집단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우지향 교사 제공
꾸준히 아이들 만나는 전문상담교사 전국 900여명뿐
아이들의 접근성 높이고 정규직 교사로 임용해야 해
아이들의 접근성 높이고 정규직 교사로 임용해야 해
얼마 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북 영주의 중학생 이아무개군. 그는 심리검사에서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고 40여일이 지나도록 이군의 담임교사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학교에서도 별다른 조처 없이 사실상 방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이은 학교폭력 사건으로 교육과학기술부는 ‘정서행동발달 심리검사’를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서 동시 시행하고, 폭력예방교육 실시나 상담교사 인력 확충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전에 비하면 다양해진 대안이지만 불행한 사건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담을 통한 예방이 중요하다. 정부의 잇따른 대책에도 학교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상담전문교사들의 고충은 여전하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강아무개 전문상담교사. 이곳은 환경이 열악해서 전교생 30%가 빈민층이고 결손가정도 많아서 크고 작은 사고가 연일 일어난다. 그는 처음에 교문지도를 하며 문제아들을 알아갔다. 그래도 학교를 파악하고 아이들이랑 친해지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는 교장선생님께 부탁해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상담수업을 배정받았다. 또래관계를 주제로 학급별 집단 상담을 진행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학급 분위기가 좋아지고 폭력이나 교우관계로 인한 문제도 전보다 줄었다. 강 교사는 “상담교사는 정기적으로 아이들과 접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 하나하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담임들이랑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아이들 상담뿐만 아니라 학부모 상담 때도 큰 도움이 됐다”고 얘기했다.
그는 한주에 8시간에서 14시간 수업을 하지만 공식인정은 안 된다. 창의적 체험활동 담당교사의 정상수업 시수로 들어갈 뿐, 그는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상담기록으로 적는 게 전부다. 수업시수나 생활지도로 성과급 체계 등급을 나누는데, 그는 수업시수가 없다 보니 항상 거의 최하등급이다.
그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하는 거지만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든다”며 “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많이 하면서도 그에 대한 처우는 교과교사에 비해 형편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강 교사의 경우 비교과교사임에도 특별히 수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상담교사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상담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꾸준히 상담을 하는 전문상담교사는 전국에 900여명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혼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내성적이었던 ㄱ양. 어릴 때부터 엄마아빠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감정조절을 못해서 친구들한테 공격적인 말을 하고 폭력을 휘둘러서다.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중학교 1학년 때 강 교사를 만났다. 지금 고1이 된 ㄱ양은 “상담을 받으며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선생님이 내 얘기를 들으며 함께 울어주고 다독여줘서 마음이 편해졌다”며 “자해 경험이 몇 번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날 잡고 보듬어줘서 안정을 되찾고 삶의 목표도 생겼다. 지금은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고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원묵고의 우지향 전문상담교사는 체계적인 상담을 위해 “아이들의 접근성이 높은 물리적 공간과 정규직 교사 임용을 통한 안정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상담실이 독립된 공간에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예전에 근무했던 문화고의 경우는 교문 바로 옆 건물에 상담실이 있어서 학교 안 가는 아이들도 상담실은 왔다 갈 정도였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70%가 전문상담사이지만 그나마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고 있다.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도 없고, 자격요건이 검증이 안 된 이들도 있어서 상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전문상담교사가 정규직으로 전 학교에 배치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덧붙였다.
우 교사에게 상담을 받았던 1학년 ㄴ양은 애들이랑 싸우고 문제가 생겨 학교를 안 가려고 했는데 상담을 받은 뒤 친구들이랑 지내는 게 수월해졌다고 한다. “처음엔 상담실에 오는 게 망설여졌다. 작년에 상담했던 언니가 그 뒤로 안 좋은 소문이 퍼져서 힘들어하는 걸 봤다. 상담실이 교무실 바로 옆에 있는데 조금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이나 애들이 볼까봐 조금 그렇다”고 털어놨다.
상담은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게 아니다. 아이에게 편하게 얘기할 상대가 되어주고 아이를 격려하고 지지해주면 된다. 앞서 만난 ㄱ양의 이야기는 학교상담 시스템이 지속적이고 긴밀하게 이뤄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단순히 상담을 받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처음 본 사람한테 자기 비밀을 다 털어놓고 헤어져버리면 불신만 깊어지니까. 사람 하나하나 천천히 깊게 친해져서 영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나는 학교상담을 통해 인생의 좋은 멘토를 잘 만났다.”
상담실은 아이들이 편하게 찾아와 얘기를 나누는 쉼터 구실을 해야 한다. 똑같은 예산이 내려와도 현재 학교별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학교폭력과 그로 인한 자살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지금, 관리자인 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의 상담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관심이 필요한 때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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