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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어른들 ‘경제적 셈법’에…지영이의 웃음 사라질판

등록 2012-06-05 20:37수정 2012-06-05 20:38

지난 1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광정초등학교에서 정규수업을 마치고 방과후 교실에 모인 어린이들이 자연관찰 일기를 쓰다 장난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규정대로라면 이 학교는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통폐합 위기에 놓이게 된다.  양양/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1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광정초등학교에서 정규수업을 마치고 방과후 교실에 모인 어린이들이 자연관찰 일기를 쓰다 장난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규정대로라면 이 학교는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통폐합 위기에 놓이게 된다. 양양/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농어촌 ‘학교 통폐합 추진’ 파장
‘전교생 17명’ 양양 송포초 가보니
교과부, 작은 학교 통폐합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나서
한학교 6학급·한반 20명 기준
강원도 682곳 중 절반이 대상

“과외받는듯 공부해 좋은데…”
학생들 돌봄 기능 상실 우려
“농촌 살리겠다며 학교 없애나”
교장 선생님 ‘정책 모순’ 지적

저 멀리 소담한 교문 안쪽에서부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가 우렁차고 카랑카랑하다. 딱 봐도 개구지게 생긴 아이들 네댓이 외길을 따라 큰길 쪽으로, 느리지만 당당하게 걸음을 옮긴다. 하굣길은 여유로워 보인다.

지난 1일 오후 5시께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에 있는 송포초등학교 앞 거리는 한산했다. 시끄러운 아이들 가운데 씩씩하고 밥 잘 먹게 생긴 녀석이 5학년 박배균이다. 그 옆에는 같은 반 친구 이지영과 지영이의 한 학년 위 친언니인 소영이, 그리고 소영이의 같은 반 친구 이해성 등이 한 무리를 이뤘다.

팽이치기와 축구, 나무타기가 3대 취미인 배균이는 생긴 것 이상으로 밥을 잘 먹는다. “점심때 학교에서 주는 국수를 한 번에 여섯 그릇까지 먹어봤어요.” 학교 텃밭에서 기르는 상추, 고추, 깻잎도 물에 쓱쓱 씻어 점심 급식 때 먹는다. 집에서 매일 10~30분 걸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통학하다 보니 잘 먹는 것일까?

배균이와 지영이, 소영이, 해성이는 학교생활이 매우 재미있다. 수업이 끝나도 학교에서 플루트나 사물놀이, 영어, 수학을 배우고 목요일마다 선생님과 읍내 수영장에 가는데다, 다른 지역으로 현장학습도 자주 간다. 제주, 울산, 광주는 물론 서울 어린이대공원도 선생님과 가봤다. 심심찮게 전교생이 모여 캠핑도 한다.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요리교실과 컴퓨터교실에 참여한다. 물론 멀리 가는 여행 빼고는 대부분 완전 공짜다.

도시의 초등학생은 상상하기 힘든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는 송포초가 전교생 17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이기에 가능하다. 다른 두명의 친구와 함께 6학년 1반 세명 가운데 하나인 소영이는 “우린 그냥 과외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공부해 너무 좋다”며 까르르 웃었다. 큰 학교에선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돈을 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소영이가 느끼는 애정만큼 학교가 오래 버텨줄지는 알 수 없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송포초처럼 작은 학교는 계속 운영하기 어렵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적어도 한 학교에 6학급 이상, 고등학교는 9학급 이상 꾸려져야 하고, 한 반에는 20명 이상 재학해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시행령 개정안대로라면, 신입생이 없는 탓에 1학년은 아예 없고 2학년(2명)과 4학년(1명)을 통합해 1개 반을 꾸린 송포초 같은 학교는 더이상 설 자리가 없다. 강원도교육청 속초양양교육지원청은 향후 인근 상평초(재학생 49명), 이 학교의 공수전분교(5명), 현서분교(5명), 오색초(10명), 한남초(48명), 손양초(44명)와 함께 송포초가 통폐합돼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 강원지역 전체를 놓고 보면 초·중·고 682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378곳이 통폐합 대상이다.

학교 통폐합은 서울에 살면서 한 학급 규모만 40명 안팎인 큰 학교에 아이를 보내면서 나라의 정책을 만드는 어른들 셈법으로는 너무나도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다. 송포초 같은 작은 학교를, 경제와 효율의 잣대로만 바라보면 답은 뻔하다. 이 학교에는 17명의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14명 안팎의 어른이 일한다. 정규직 교사 7명과 교장선생님 1명, 공동수업을 진행하는 보조교사 1명, 저학년 아이를 보살피는 보육교사 1명, 조리사, 행정직원 등이다.

이 학교의 2·4학년 통합과정을 맡고 있는 임호성 교사는 예전에 21개 학급이 있는 큰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작은 학교 아이들이 그 학교로 흡수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임 교사는 “작은 학교에서 온 아이들은 원래 큰 학교 소속인 아이들과는 달리 수업이 끝난 뒤 스쿨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겉도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학교 통폐합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큰 학교에 흡수된 아이들이 ‘2등 학생’ 취급을 받으며 적응장애를 겪는 것도 아이의 성장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송포초에서 자동차로 15분가량 떨어진 광정초의 경우도, 재학생은 52명으로 송포초보다 많지만 상황은 매한가지다. 작은 골프연습장을 갖춘 이 학교 아이들은 이날 방과후에 스윙연습을 한 뒤 교사들의 차를 타고 양양농업센터에 들러 배나무를 돌보는 현장학습을 했다. 이 학교에서 1학년(11명)을 맡고 있는 심현숙 교사는 “한 학급에 36~37명인 학교에 있다가 작년에 와보니 아이들이 내 눈에 하나하나 다 들어오고, 모두가 수업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물론 많은 친구들과 사귈 수 없다는 점은 작은 학교의 단점이다.

이 학교의 함동섭 교장은 정부의 조처가 모순됐다고 본다. 그는 “귀촌과 귀농의 가장 큰 문제가 교육인데, 학교를 없애면서 시골로 오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들 작은 초등학교는 지역사회에서 마을공동체의 구심점 구실을 한다. 학부모들도 아이를 큰 학교에 보내고 싶은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 통폐합에는 반대한다. 송포초에 6학년 소영이, 5학년 지영이 그리고 3학년 승현이까지 세 아이를 보내고 있는 고영희씨는 “1년에 한 번 가을 운동회 때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음식도 해서 마을잔치를 한다”며 “송포초 학부모 중에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학교가 5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얼마 뒤 굴렁쇠 굴리기 대회가 있는데, 큰 학교 애들은 대표를 뽑아야 하지만 우리는 나가고 싶은 애들은 다 나갈 수 있어서 좋아요.” 소영이가 또 까르르 웃었다.

양양/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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