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남수 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이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에서 주최한 ‘입시 경쟁 교육을 넘어 새길 가는 교사 등대지기학교’에서 강연하고 있다.
서남수 전 교육부 차관 ‘교사등대지기학교’ 강연
학벌 위주 사회에서 교육정책 펴기 어려워
학생부 성적의 신뢰도 및 타당도를 높여야
학벌 위주 사회에서 교육정책 펴기 어려워
학생부 성적의 신뢰도 및 타당도를 높여야
지난 5월1일 저녁 7시.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교사들이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 세미나실로 한 명 두 명 들어왔다.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이 주최한 ‘입시 경쟁 교육을 넘어 새길 가는 교사 등대지기학교’에 등교하는 길이었다.
오는 6월12일까지 매주 1회씩 7회 동안 이어지는 등대지기학교의 첫 강연자는 서남수 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이다. 서 전 차관은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1980년에 문교부로 발령받았다. 그 뒤 경기도와 서울시 부교육감을 역임하고, 참여정부에서 차관 직을 수행할 때까지 약 30년간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뼈대를 만들고 다듬는 데 힘을 기울였다.
전반부 1시간은 역대 정부에서 펼쳤던 교육 정책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사회에 미친 영향들을 정리했다. 후반부에는 우리 교육 40년의 성과와 한계, 현 교육 문제와 대안들을 말했다. 강의는 9시30분까지 쉬는 시간 없이 열띤 분위기로 이어졌다.
서 전 차관은 우리나라가 방대한 공교육체제를 인류 교육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짧은 기간에 구축했다고 말을 꺼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우리 교육에 문제가 많지만 그동안 우리나라가 이뤄낸 교육성과가 대단하다는 전제 아래 교육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로 ‘초·중등교육 완전 취학’, ‘고등교육 보편화 단계 진입’을 성과로 지목했는데,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발전에 교육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점을 높이 샀다.
마력을 발휘하는 학벌주의
그러나 서 전 차관은 진정한 ‘교육열’이 아니라 ‘출세열’에 기반해 교육이 성장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이 생겼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을 만들기에만 열의를 보이다 보니 좋은 학벌을 얻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됐다. 그 결과 학교에서 성공하면 사회적으로 성공이 가능하다고 인식하게 됐고, 그 부담을 교육정책을 펴는 정부가 고스란히 졌다는 점을 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서 전 차관은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학벌주의가 모든 제도를 뛰어넘어 마력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 역대 정부가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개혁을 했지만 학벌을 중시하는 수직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책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대학 입학생들의 수능 성적에 따라 대학 서열을 매기는 현실이 모든 교육 문제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서 전 차관은 현 정부의 교육 정책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우리 교육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한 정책인 ‘중학교 무시험’과 ‘고교 평준화’가 바로 보수정권이었던 박정희 정부 시절에 만들어져 노무현 정부까지 꿋꿋이 이어져왔다는 사실을 예로 들며 이전 정부까지는 입시경쟁 교육을 해소·완화·극복하겠다는 일관된 정책 흐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현 정부가 고교평준화 등 역대 정부의 입시경쟁 완화 정책을 평등주의적 획일화 정책으로 폄하하고, 왜곡된 고교 정책 등으로 학교 서열화와 입시경쟁을 조장했다며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정도라며 답답해했다.
서 전 차관은 18대 국회에서는 정당 간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교육위원회에 올라온 안건이 거의 통과되지 않았다며 이념적 시각으로 교육정책을 접근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정치와 사회에 만연한 이념 갈등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언론, 교원단체, 학부모단체, 시민단체도 이념적으로 대립하면서 헌법 가치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외면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아이들을 학교 안으로 불러들여라
서 전 차관은 대입 정책의 핵심은 학교생활기록부 비중을 높이는 것이라며 적어도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 성적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까진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도 내신성적 반영 비율 확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속사정은 있다. 대학들은 특목고 아이들을 선발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내신성적 비중 확대에 소극적이다. 학생, 학부모는 내신 교과목이 여러 개라 수험부담이 커진다며 부정적 태도를 취한다. 고교도 학생들이 내신성적에 매우 민감해지면 공정성 관련 항의가 심하다는 이유에서 부정적이다. 이런 이유 탓에 내신 반영 비율이 낮아지면 학교 밖에서 치는 수능이나 논술 비중이 커지게 돼 입시경쟁 교육에 유리한 사교육이 번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떻게 학생부 성적의 신뢰도 및 타당도를 높여야 할지가 관건이다. 서 전 차관은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균형 맞춰 조화롭게 운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런데 절대평가 도입은 교육 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예민하게 받아들이면서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그는 진보 쪽은 등수 위주의 교육을 버리고, 개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교육 본질에 합당하다고 주장하지만, 현 상황에서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학교생활기록부가 사실상 무력해진다는 점을 경고했다. 그는 언젠가는 교육 본질에 맞는 절대평가로 가야 한다고 했지만, 성적 부풀리기 탓에 학생부가 거의 반영이 안 되면 아이들은 수능과 논술 수업을 받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며 세밀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전 차관은 ‘우리 아이들이 이 입시경쟁 교육의 질곡에서 고통받도록 방치해도 좋은가?’란 관점에서 교육개혁이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이념 대립을 멈추고 교육의 미래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약 30년간 교육 관련 공무원으로 살았던 그는 오히려 밖에서 교육 관련 얘기를 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자신이 말하면 그게 기사화되고 파장이 일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공직에서 물러나 이런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돼 정말 좋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강연을 마쳤다.
글·사진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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