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릉중 축구부 학생들은 훈련을 하듯 함께 모여 교과공부를 한다.
학생선수, 체대진학반 학생들의 고민
체육하면 공부 못한다는 편견
‘학습권 보장’ 아직 먼나라 얘기
체육하면 공부 못한다는 편견
‘학습권 보장’ 아직 먼나라 얘기
부천대 생활스포츠학과 1학년 정수완씨는 중학교 때부터 사격을 했다. 여자 10m 공기권총 사격선수는 중·고교 시절 정씨의 간절한 꿈이었다. 중학교 때는 평일 훈련이 잦았다. 전국체전 등 시합이 있으면 훈련을 위해 수업에 빠지는 일이 많아졌다. 영어와 수학 등 주요과목을 몇 시간 못 들으면 공부할 마음이 사라졌다. 다행히 수행평가에 신경을 쓰며 성적을 유지했다. 학생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공부할 생각을 많이 안 했다.
“공부는 기본만 하자”는 생각이 바뀐 건 부천 원종고(교장 나상집)에 들어가면서부터다. 2학년 때 만난 사격부 감독 임성철 체육교사는 어느 날 성적표를 가져오라고 했다. “공부하라”고 말해주는 주변 사람은 많았지만 공부에 진짜 신경을 써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임 교사는 공부 과정에도 신경을 써줬다. 훈련 중간에 팝송을 틀어놓으며 영어가 들리도록 도와줬다. 훈련은 남들처럼 수업을 다 듣고 방과후에 했다. “너희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에 참여 못하니까 최대한 수업에 집중하고, 메모도 잘 해둬.” 임 교사가 자주 해준 말이었다. 정씨는 어느 순간 공부가 간절한 학생으로 변해갔다. 고3, 시합 며칠 전 책상 앞에 메모지로 이런 문구를 적어뒀다. “선생님, 저 훈련 갔을 때 진도 많이 나가지 말아주세요.” 정씨는 “제가 운동을 하면서도 공부도 소홀히 안 한다는 걸 선생님들께 많이 드러냈다”며 “일부러 앞자리에 앉고, 질문도 많이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 4월26일에 만난 원종고 3학년 김슬기양도 선배인 정씨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사격 특기자전형을 준비중이었다. 혹시라도 대회가 있어서 자리를 비워도 큰 걱정이 없다. 반에는 김양의 ‘또래멘토’가 있다. 사격부 학생 한 명당 두 명의 멘토 친구가 붙어 대안교사 구실을 해준다.
운동을 하면서 공부에까지 몰두하는 학생들은 비단 사격부만이 아니다. 같은 날 만난 이 학교 3학년 장승호군은 2학년 후배 김도연양에게 “2학년 때 성적 관리를 정말 잘 해두라”고 단단히 일렀다. 둘은 ‘방과후학교 체대진학반’ 선후배다. 장군은 이 학교 김진환 체육교사 등을 통해 체대 입시에서 실기와 더불어 공부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김 교사는 방과후학교 체대진학반 학생들을 불러 영어 쪽지시험 등을 치게 한다. 장군은 “그런 과정을 통해 전보다 성적이 오르면서 좋은 점이 많다”고 했다. “운동도 잘하고, 성적도 어느 정도 유지하니까 친구들이 인정해줍니다.”(웃음) 김도연양은 “체육선생님들을 통해 체대에 가려면 공부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정보를 제대로 접했고, 열심히 해보는 중”이라고 했다.
학생들한테 공부의 필요성을 알린 임성철 교사는 “운동선수, 체대준비생 이전에 학생이니까 그 시기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하고, 친구들과도 교류해야 하는데 이런 친구들이 공부나 학교문화에서 배제되고 소외받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원종고 사례는 학교 쪽과 운동부 감독, 코치 등의 공동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 임 교사가 사격부 감독을 맡으면서 시작된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만드는 과정’은 2012년 김진환 체육교사가 감독을 맡으면서도 이어진다.
실제로 이 학생들이 운동만 잘한다고 해서 진학 등 미래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체대준비생의 경우, 학교마다 실기전형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 학교를 정해 두고 그 학교에 맞춤한 실기 준비를 해야 한다. 대다수의 대학이 수능성적을 요구한다. 운동과 함께 공부는 놓치면 안 되는 두 마리 토끼다. 이런 어려움은 학생선수 처지일 때 더하다. 정수완씨는 고3 때 사격 특기자로 진학을 하고 싶었지만 그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사격의 경우, 전국에서 8위 안에는 들어야 안정적으로 진학을 합니다. 저도 수시 직전까지 특기자전형을 꿈꿨는데 막판에 좌절됐습니다. 다행히 선생님께서 내신 관리에 신경을 써주셔서 지금 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죠. 대안도 생각하고 운동해야 합니다.”
물론 체육을 하는 학생들이 오직 진학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장승호군은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에 가면 체육만이 아니라 교양도 배우잖아요. 공부 기초가 없으면 그런 수업을 들었을 때 이해가 어렵겠죠. 나중에 제 삶을 위해서도 공부는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 문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2010년부터 ‘공부하는 학생선수 지원 시범사업’이란 이름으로 전국 4개 시도의 초·중·고 12곳 정도를 시범학교로 지정해 운영하는 수준에서 관심을 보인다. 다행히 요즘 들어 자생적으로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길러낸 학교들이 주목을 받는다. 오래전부터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온 서울 공릉중 축구부 사례도 그런 경우다.
지난 4월30일 서울 중앙고 운동장에서는 공릉중 학생들과 중앙고 학생들의 친선 축구경기가 한창이었다. 공릉중(교장 김영국) 선수들의 얼굴은 그을리지 않았다. 김경수 감독은 “중간고사 때 훈련 없이 시험 준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릉중은 원종고처럼 학생들의 수업 들을 권리를 보장해준다. 역시 학교쪽과 감독 등 지도자들의 배려로 이뤄진 일이다. 김 감독은 지금은 없어진 태릉중 축구부를 맡았을 때부터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 축구선수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뒤 자기 길을 잘 못 찾는 제자들을 보면서 시도해본 일이다.
현재 공릉중 축구부에서 뛰는 학생선수 가운데에는 공도 잘 차고 공부도 잘하는 꿈나무들이 있다. 3학년 김지호군과 2학년 김은중군이다. 둘 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 김지호군은 축구만큼 역사를, 김은중군은 수학을 좋아하고 잘한다.
두 학생의 시간표에는 ‘축구’만 있는 게 아니다. 7시30분에 등교해서 30분 정도 기초훈련을 한 뒤로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수업을 듣는다. 방과후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6시30분에서 7시 사이에 귀가한 뒤로는 각자 공부를 한다. 훈련 시간이 이렇게 짧아서 되겠냐고 할 수도 있다. 김 감독은 고개를 흔들었다.
“예전에는 정말 무식하게 훈련만 시켰죠. 말로만 ‘운동은 과학’이라고 말했는데 머리 쓰는 두뇌축구를 하려면 정말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충분한 휴식과 영양관리를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질적인 운동을 해야 좋은 플레이가 나옵니다.” 김지호군은 훈련 시간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훈련만 많이 해서 체력이 떨어졌을 때는 기술을 써도 의미가 없더라구요. 관절에도 안 좋구요.”
학생선수들의 내신 성적 체크는 코치가 직접 한다. 훈련 중간에 영어와 한문 시험도 본다. 김 감독은 각 교과목 교사들에게 축구부 학생들에 한해 열심히 한 친구에게는 칭찬카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성적 떨어지면 오늘은 벤치에 있는 거다!” 학생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말이다. 축구하는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면서 주변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김 감독은 “색안경을 벗은 분들이 많다”고 했다.
“축구하는 친구들이 공부도 잘하고 다른 아이들도 리드하니까 인식도 달라집니다. 중요한 건 사회적 인식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운동만 시키는 경우가 95%입니다.”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고 싶은 김지호군과 김은중군한테는 고민이 있다. 김 감독은 언론에서 꼭 얘기해줬으면 싶은 말이 있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아이들을 공부하는 선수로 키우는 고교에 보내고 싶지만 너무 멀고, 뽑는 인원도 한정돼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지역에도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양성하는 팀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실제 공릉중을 졸업하고 서울 상문고에 진학한 2학년 이한빈군은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30분 거리를 통학한다. 집주변에서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키우는 고교를 찾았지만 가까운 곳에는 그런 학교가 없었다. 고교에 와서 중학교 때 다양한 환경에서 운동을 해온 친구들을 만난 이군은 최근 들어 느끼는 게 많다.
“중학교 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을 경험해 보지 않은 친구들은 체계적으로 안 하던 공부를 하게 돼 힘들어하고, 공릉중 후배들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인근 고교를 찾지 못해 어려워합니다. 중·고교에서 운동과 공부가 병행하는 시스템이 정착해서 후배들이 고교에 가서도 공부하며 축구를 하게 됐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한겨레 인기기사>
■ 안전 장담하더니 ‘광우병 토론 불참’ 문자만 ‘달랑’
■ 청 경호처, 늑장부리다 홍석현에 수십억 차익 안겼다
■ 정봉주 팬 카페 ‘미권스’ 카페지기 긴급체포, 왜?
■ 쪼그라드는 ‘청계장학금’
■ 형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남편, 어떡하죠?
왼쪽부터 부천 원종고 방과후학교 체대진학반 김도연양, 장승호군, 사격부 김슬기양이 한자리에 모여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슬기(가운데)양의 사격 훈련 모습.
서울 공릉중 축구부 김지호(왼쪽)군과 김은중(오른쪽)군이 훈련을 하고 있다.
■ 안전 장담하더니 ‘광우병 토론 불참’ 문자만 ‘달랑’
■ 청 경호처, 늑장부리다 홍석현에 수십억 차익 안겼다
■ 정봉주 팬 카페 ‘미권스’ 카페지기 긴급체포, 왜?
■ 쪼그라드는 ‘청계장학금’
■ 형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남편, 어떡하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