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가 크게 늘어날 거라며 주5일 수업제를 공격하지만, 실제 학원가에서는 이미 월2회 놀토를 시행했을 때부터 주말반을 개설해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교육 3주체 모두 힘들어해…학원들도 볼멘소리
학생, 방학 줄고 주중 학습시간 늘어나
학부모, 불안한 마음 사교육에 의존해
* 교육 3주체: 학생·교사·학부모
학생, 방학 줄고 주중 학습시간 늘어나
학부모, 불안한 마음 사교육에 의존해
* 교육 3주체: 학생·교사·학부모
“어디 가는 길이에요?” “학원에 가요.” “몇 학년이에요?” “고1이요.” “어디 살아요?” “상계동이요.” “그런데 왜 대치동까지 와서 학원을 다녀요?” “이쪽이 잘 가르치니까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지난 21일 토요일 낮 12시30분께 지하철 3호선 대치역을 빠져나와 학원으로 발걸음을 급히 옮기던 고1 남학생 한 명이 질문에 빠르게 답한 뒤 사라졌다.
오후 1시께 대치동은 학원에서 수업을 듣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온 학생들로 북적였다. 올해 3월부터 각 학교에서 주5일 수업제가 전면 시행됨에 따라 토요일 학원가 풍경은 달라졌다. 대치동, 목동과 함께 서울의 3대 학원가로 꼽히는 중계동도 비슷했다. 같은 날 오후 6시께 중계동 학원가는 중고생으로 넘쳐났다. 오가는 사람 10명 가운데 7~8명이 중고생이었다.
주5일 수업제는 올해 3월부터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행됐다. 이 제도는 ‘학교 밖 체험활동 증가’, ‘충분한 휴식으로 학습효과 증대’, ‘다양한 개성과 취미 계발’, ‘가족 간 유대 강화’란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시행 이전부터 주5일 수업제가 사교육비 부담을 늘릴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학생들은 주5일 수업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학원 다섯 군데를 다닌다는 김아무개(서울 재현고1)군은 “토요일에 학교 안 가니까 좋긴 한데, 방학이 줄어들어 별로다”라고 말했다. 학원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던 이영란(서울 상계제일중3)양은 “토요일 오전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좋긴 한데, 주중에 수업이 늦게 끝나면 학원에 가기 전 준비할 시간이 없어 힘들다”고 밝혔다. 다른 학생들의 대답도 비슷했다. 대체로 토요일에 학교에 가지 않게 된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평일 수업 증가와 방학 기간 단축 그리고 토요일 오전 학원 학습에 관해선 부정적이었다. 강아무개(서울 ㅊ고1)양은 “차라리 격주로 쉬던 때가 좋았다”며 “엄마가 아침부터 학원에 가라고 하기 때문에 토요일에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고 털어놨다.
주5일 수업제가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는 까닭은 토요일 오전부터 학원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정준교(서울 상명중2)군은 “주5일 수업제가 시행되면서 학원이 아침 10시부터 수업을 진행한다”며 “특히 요즘엔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어 비는 시간 없이 밤 10시까지 계속 수업한다”고 밝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9일 주5일 수업제 전면 시행에 따른 학원 특별지도·점검을 실시한 결과 311건의 불법행위를 적발해 시정명령 등 행정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주말 이용 숙소 제공의 불법 기숙형 학원’ 적발 사례가 눈에 띄었는데, 이 학원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재학생을 대상으로 ‘기숙형 학원’을 운영하다 적발돼 교습정지, 등록말소 등 중징계를 받았다. 신문규 교육과학기술부 학부모지원과 사교육대책팀장은 “학생들에게 토·일요일까지 학습 부담을 준다는 건 문제가 있다”며 “주5일제 관련해서 신고하지 않고 운영하는 주말반을 단속하고 있으며 특히 기숙학원과 유사하게 운영하는 ‘기숙형 학원’은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주5일 수업제를 시행한 지 두달 남짓밖에 안 돼 사교육비 실태를 조사한 자료는 없다. 신 팀장은 “주5일 수업제로 사교육비가 눈에 띌 만큼은 아니지만 분명히 늘긴 했다”며 “통계자료는 없지만 물리적으로 학원에서 가르치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에 학원비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5일제 관련해 사교육비가 늘어나게 된 원인을 교과부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최주영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은 “교과부에서 주5일 수업제를 충분한 준비 없이 도입하는 바람에 사교육비 부담이 늘었다”며 “토요일에 학생들을 밖으로 내모는 상황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학원들만 발 빠르게 대처하기 때문”이라고 그 까닭을 설명했다. 최 부회장은 특히 “10가구 가운데 3가구가 주5일 근무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토요 프로그램 또는 지역 아동을 위한 보육시설을 사전에 갖춰 놓지 않아 학부모들은 손쉽게 학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 여건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저소득층 가정을 배려하지 않고 주5일 수업제를 시행해 문제가 많다는 뜻이었다. 중1(남), 중2(여) 자녀를 둔 정아무개(46·서울 성북구)씨는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당장 학원비를 늘리진 않았지만 토요일 오전에 집에 아이들이 있는 걸 보면 불안하다”며 “뭔가 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어떨까? 학부모에겐 사교육비 부담을 지우고, 학생에겐 학습 노동을 강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주5일 수업제는 교사들에게만 좋은 제도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주5일 수업제는 교사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경기도 ㅅ초등학교 김아무개 교사도 미흡한 준비를 문제로 지적했다. 김 교사는 “수업시수는 그대로인데 수업일수를 맞추려다 보니 방학이 줄어들었다”며 “주중에 수업을 더 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는 가르치기 힘들고 아이들도 수업을 받기 버거워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5일 수업을 도입하면서 만든 토요학교를 관리하기 위해 학급당 2명의 교사를 배치해야 한다”며 “교사가 많지 않은 학교에선 교사들이 토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므로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토요학교 참여율이 6~7% 수준으로 저조하다”며 “토요학교를 미리 시행한 뒤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5일 수업제 전면 시행에 따른 문제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러나 교과부가 교육과정을 그대로 둔 채 수업일수만 줄임으로써 오히려 교육 3주체인 학생·교사·학부모의 부담만 늘어났다. 교과부는 주5일 수업제 도입에 따른 문제점을 파악해 제도를 개선하는 등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최 부회장은 “주5일 수업제 실시엔 동의하나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는 경쟁교육이 심한 상황에서 교과부가 사전에 대안 프로그램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아 저소득층 가정에 사교육비 부담을 늘렸다”며 “학생들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여가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한 이 제도가 결과만 놓고 볼 때 학생들이 학교 수업은 수업대로 받으면서 토요일까지 학습노동에 시달리도록 만들어 오히려 여가시간을 줄어들게 했다”고 비판했다.
교과부의 단속에서도 드러났듯이 주5일 수업제 시행에 따라 기숙형 학원을 비롯한 미등록 주말반 과정이 생겨나면서 학원만 살찌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학원 쪽의 주장은 조금 달랐다. 학원운영을 지원하는 김현 아카인포(아카데미인포메이션) 사업본부장은 “최근 학원계는 주5일 수업제와 상관없이 냉랭하다”며 “학원장들은 경제가 어렵고 사교육시장이 과잉돼 경영난에 처하자, 되기만 한다면 불법이라도 기숙형 학원을 운영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기숙형 학원을 운영하기 위해선 숙소를 마련하고 음식도 제공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고 법적 위험부담도 커 대부분 법 테두리 안에서 운영하려 한다는 설명이었다. 김 사업본부장은 “주말반 관련해서도 시민들의 오해가 크다”고 말했는데, 그는 “마치 주5일제가 시행되면 모든 학원이 주말반을 열고, 또 모든 학생들이 주말반에 몰릴 거라 생각한다”며 “그러나 주말반을 열어도 몇몇 학원을 제외하면 모집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강사 임금이 부담돼 잘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남 ㄱ학원의 강아무개 강사는 “연초에 기숙형 학원을 운영하려 했으나 학생이 모이지 않아 하지 못했다”며 “모집만 됐으면 기숙형 학원을 운영했을 거다”라고 밝혔다. 이 학원에서는 과목당 20만원씩 받고 주말반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조차도 학생이 많이 모이지 않아 운영이 어렵다고 밝혔다. 강 강사는 “최근 주5일 수업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학원만 살찌운다’는 말이 언론에 많이 나오고 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며 “수능시험이 쉬워지고, 교육방송(EBS) 연계 출제율이 높아지면서 학원생이 많이 줄었다”고 반박했다.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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