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공부도 다 때가 있는 법, 몰아서 하다 탈날라

등록 2012-04-23 10:31

교과목 집중이수제 들여다보기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중인 교과목 집중이수제. 여러 학년과 학기에 걸쳐 이수하던 과목을 학년별 또는 학기별로 몰아서 교육하는 제도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학기당 이수과목 수를 축소해 학생들에게 학습 부담을 줄이고 수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교사 입장에서는 실험실습 중심의 수업을 진행할 수 있으며 담당 학생을 대하는 시간이 많아져 학생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수업의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각 학교가 과목별 수업시간만 충족하면 수업 시점도 자율적으로 편성하도록 했다. 교과부의 의도대로라면 수업의 효율성은 물론 수업시수 20% 증감을 통해 학교교육의 특성화와 다양화가 이뤄져야 한다. 과연 현실도 그렇게 되고 있는지 직접 학교 현장을 찾아가 교사와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Q 학생들 학습 부담 - 한번에 200쪽, 어떡하죠?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진명여고. 현재 이 학교 2학년 16개 반은 둘로 나눠져 한국사와 일반사회, 음악과 미술, 가정과 정보, 제2외국어 등을 학기 교차이수하고 있다. 문과반에 재학중인 ㄱ양은 지난해 국사 과목을 집중이수했다. “국사 같은 경우는 자세히 봐야 하는데 도저히 불가능하다. 한 학기에 한권을 다 끝내야 하니 시간에 쫓겨서 주마간산 식으로 진도를 뺀다.”

옆에 있던 ㄴ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 시간에 소단원 하나씩 나가는데, 따라가기 힘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버거워한다. 시험범위도 200페이지에 달해 이해도 못하고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집중이수제가 학생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라지만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드는 게 현실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ㄱ양은 또 “가장 큰 피해는 시험을 볼 때 단위수가 급격히 늘어난 점이다. 한번 망치면 회복 불가능한 성적이다. 이 때문에 세부사항을 공부 못하고 굵직굵직한 것만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는 모의고사는 생각 안 하고 내신에 급급한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단위수는 일주일을 기준으로 과목시수를 뜻한다. 가령 국어가 일주일에 5시간 들어 있으면 국어의 단위수는 5단위가 된다. 대학입시에서 비교과 내신에 포함되는 과목 중 집중이수 과목의 단위수가 높아져 학생들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말이다.

음악과 예체능도 집중이수를 하면서 아이들의 감성발달을 돕기는커녕 학습내용도 제대로 습득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ㄴ양은 “미술은 선생님이 첫 주에 미술의 역사를 빠르게 훑고 시험 보기 직전에 중요한 부분만 콕 집어서 말해주겠다고 했다. 이후 나머지는 실기만 계속하고 나중에 이 그림 시험에 나온다고 하니 아이들은 그것만 본다”고 말했다. ㄷ양도 “전에는 음악이나 미술이 부담도 덜하고 기분전환도 됐는데 지금은 거의 노동에 가깝다. 빠른 시간에 억지로 욱여넣는 것 같아 즐기기보다는 오히려 흥미를 잃었다”고 털어놨다.

Q 교사와 학생들의 소통 - 서로 얼굴 까먹겠어요!

이수중학교 박수현 국어교사는 얼마 전 동학년 교사 협의를 하던 중 집중이수제의 문제를 느꼈다. “국어교과는 집중이수제 과목이 아니다 보니 크게 문제점을 못 느끼지만 집중이수 과목을 담당하는 동료 교사들이 담임 업무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더라. 한 학기 동안 자기 반 아이들 수업이 없는 경우 아이들 지도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파악하는데 하루 중 아이들 보는 건 조례와 종례 시간 20~30분 정도가 전부라 생활지도나 상담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구로중학교 2학년인 이혜정(15)양도 현재 담임이 국사교과를 담당하는데 지금은 집중이수 학기라 수업시간에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있지만 2학기 때는 못 만나게 된다. 이양은 “담임선생님인데 과목에 따라 한 학기만 수업을 들으니 멀어질 거 같다. 친한 사이가 되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얘기했다.

이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진명여고의 임덕준 윤리교사는 “교과부의 취지는 한 교사가 자주, 오래 들어가면 대면접촉도 늘고 발표활동도 늘어 교육효과가 높아지지 않겠냐는 것인데,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는 하루 2번만 들어가도 아이들은 자주 보니까 지겨워서 ‘왜 또 들어왔냐’는 식이다. 그렇다보니 한 학기 같은 과목을 3명이 나눠서 들어간다. 당연히 활동 중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진도 나가기 바쁘다”고 말했다.

그는 “과목수만 줄고 일주일 수업시수는 같은데 학습 부담이 줄어든다고 하면 이를 받아들일 이는 없다. 또한 예체능이나 도덕, 가정 등 아이의 발달과 능력을 고려해서 지속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는 과목까지 집중이수제에 포함시키는 건 안 좋다. 지금처럼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역기능이 크다”고 주장했다.

Q 수업의 완성도 - 한 시간에 한 시대가 날아가요

경남 창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강만호 교사는 작년까지 중학교에서의 5년 근무를 마치고 현재 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근무중이다. 그는 교과교육 이외에도 아이들과 함께 합주나 합창대회를 하고 싶지만 턱없이 부족한 시간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전에는 그나마 주당 1시간은 유지했는데 그마저도 집중이수제를 통해 1학기밖에 수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음악·미술 같은 예체능 과목은 아이들이 감성·인성을 기르도록 체험적 활동이 꾸준히 이뤄져야 함에도 입시교과에 밀려난 상태”라며 “집중이수제는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다. 과목수에 맞추다 보니 자율성이 더 떨어지고, 입시 외 과목들은 집중이수제의 희생양이 돼버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집중이수제로 학기당 10~13과목이던 이수과목을 8과목 이하로 축소한 상태다.

앞서 얘기한 진명여고 학생들의 경우 학급마다 진도도 다르고 배웠던 부분들도 차이가 났다. ㄴ양은 “한국사 시험 보기 직전 범위가 너무 많이 남아서 유인물로 대체해서 달달 외웠는데, 다음 학기 친구 반은 처음부터 그냥 프린트물로만 수업을 했다”고 전했다.

ㄱ양은 “서로 이수 시기가 달라서 모의고사에 관련 있는 과목은 형평성 문제도 있고, 교차이수 때는 시험 때 유인물을 바꿔서 보기도 한다. 이건 무슨 시간여행도 아니고, 한 시간에 한 시대가 날아가 버리니 제대로 알기 힘들다. 다행히 나는 근현대사까지는 배워서 광복은 됐지만, (ㄷ양을 가리키며) 얘는 광복도 안 되고 끝났다”고 말했다. ㄷ양은 “그마저도 근현대사를 한 시간 만에 노래로 끝내고 더 알고 싶으면 방과 후에 배우라고 했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당연히 알려줘야 하는데 혼자서 근현대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들은 집중이수제로 인해 오히려 아이들의 선행학습이 늘었다며 예습을 하지 않고서는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신성호 전교조 정책연구국장은 “교과목 집중이수제는 교사의 전문성 파괴, 전입생 미이수 중복 문제, 임용숫자 감소 등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건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2년에 했던 것을 몰아서, 3학년 때 할 것을 1학년에 배우다 보니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며 “일단, 현재 학기당 8과목인 이수과목을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시와 관련없는 과목들은 어쩔 수 없이 못 들어가고 해당 과목 선생님들은 다른 과목을 부전공으로 가르치거나 창재 시간에 배치된다. 이것마저도 안 되면 진로상담실에 앉아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교과목 집중이수제는 이제 시행한 지 1년이 좀 넘었다. 모든 제도에는 시행착오나 부작용이 있겠지만, 교사와 학생들에게 들은 집중이수제의 ‘현재’ 평가는 혹독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한겨레 인기기사>

‘KTX 민영화’ 찬성 23%<반대 66%
양지로 나온 ‘포르노’
또 청와대 방해작전? 김문수 출마선언에 친박계 ‘불쾌’
MBC 보도제작국 해체 ‘보복성’ 조직개편 논란
북 신형 미사일이 가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