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단양초등학교 대곡분교 학생들과 원어민 교사가 방과후 교실에서 생활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읽기·듣기 중심에서 벗어나 말하기·쓰기 능력 키운다
원어민 수준으로 발음 못해도 뜻만 통하면 돼
수능 대체 결정나면 2016년 입시부터 적용돼
원어민 수준으로 발음 못해도 뜻만 통하면 돼
수능 대체 결정나면 2016년 입시부터 적용돼
*국영시 : 국가영어능력시험
“큰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라 국가영어능력시험(NEAT, National English Ability Test, 이하 국영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보다는 둘째 아이가 지금 중학교 1학년이라 국영시가 대학교 들어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궁금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으로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지방에 있는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경상북도 성주에서 고1, 중1 두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 박덕희씨는 국영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불안하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비슷하다. 백지원 대전 중앙중학교 영어 교사는 “학부형들은 뭔가 다르게 해야 할 것 같은데 학교에서 지시하는 건 없어서 불안해하며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학부모들은 학원 수업을 들어야 하나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백 교사는 “고등학교에서 먼저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중학교 교사들은 체감하지 못한다”며 “지난해에 교육청에서 말하기·쓰기 수행평가를 강화하라고 지시가 내려와 선생님들은 어떤 식으로든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영시는 기존 영어 교육이 읽기와 듣기에 치우친 문제풀이 위주로 이뤄져 학생들이 의사소통능력을 키우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읽기·듣기·말하기·쓰기의 네 기능을 평가할 목적으로 도입한 시험이다. 올 하반기에 본시험이 시행될 예정이나 아직까지 세부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학생·교사·학부모의 최대 관심사는 국영시가 수능 외국어 영역을 대체할지 여부다. 교과부는 지난해 5월 “학생들이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히 국가영어능력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며 “시험의 공신력 인정 정도와 의견수렴 결과를 종합해 2012년 하반기에 수능 대체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만일 국영시가 수능 외국어 영역을 대체하기로 결정된다면 현재 중3 학생이 대입 시험을 치르는 2016학년도 입시부터 적용된다.
기존 수능 외국어 영역과 국영시는 어떤 점이 다를까? 국영시는 인터넷 기반 시험(IBT, Internet-based Test)이다. 따라서 쓰기와 말하기를 직접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존 수능 시험에선 읽기와 듣기 시험만 치렀기 때문에 쓰기와 말하기는 간접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영시에선 수험생이 직접 마이크에 대고 말한 내용이 녹음되고, 컴퓨터에 답안을 직접 쓰기 때문에 직접 평가가 가능하다. 읽기와 듣기도 인터넷 기반 시험의 특성을 활용해 위치 찾기, 도표 정보 찾기 등 클릭형 문항이 출제된다.
또 국영시는 1급(성인)과 2, 3급(고등학생)으로 나눠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학생이 진로를 고려해 필요와 수준에 따라 2, 3급 가운데 선택해 응시할 수 있다. 영어교육채널 이비에스이(EBSe)에서 국영시 말하기 영역을 강의하는 강원도 동해상업고등학교 김수진 교사는 “2급은 실용 영어 및 기초 학문 영역에서의 영어 사용 능력을 평가하고 수능과 비슷한 난이도”이며 “3급은 일상생활 및 간단한 업무 상황에서 쓰이는 실용영어능력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2013학년도 시험부터 수준별로 이원화해 시험이 치러지는 수능 외국어 영역과도 관계가 깊다. 교과부는 “국영시가 수능 외국어 영역을 무리 없이 대체할 수 있도록 국영시 2, 3급을 수능 B, A형과 연계했다”고 밝혔다.
이비에스이에서 듣기·읽기 영역을 강의하는 서울 경수중학교 이은정 교사는 “수능 A형은 국영시 3급 수준으로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실용 영어 능력을 평가”하며 “수능 B형은 국영시 2급 수준으로 대학에서 학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영어 능력을 평가한다”고 관계를 설명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내용은 국영시는 영역별로 A, B, C, F 등급을 준다는 점이다. 수능처럼 외국어 영역 전체 점수가 나오지 않고 읽기·듣기·말하기·쓰기 영역에 따로 등급이 매겨지기 때문에 대학은 특정 영역의 등급만 요구할 수도 있다.
영역별로는 어떻게 달라질까? 읽기·듣기 영역은 기존 수능에서도 충분히 평가했던 내용이라 언뜻 봐선 다른 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 교사는 “교과서 중심의 어휘 2000~3000 단어 위주로 시험에 출제되고, 실용적 내용이 많이 추가됐다”며 “학교와 집처럼 일상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지문들, 여행하거나 직장에서 일할 때 접하는 실용문 등 다양한 상황에서 쓰는 어구나 표현 등을 익숙하게 익혀야 읽기를 쉽게 풀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영시에서 주 관심 대상은 말하기와 쓰기다. 기존에 평가하지 않았던 영역이라 학부모·교사·학생 모두 낯설어하기 때문이다. 말하기 영역은 총 4문항으로 이뤄져 있는데, ‘연계질문에 답하기, 문제 해결하기, 그림 묘사하기’는 2, 3급 공통이고 3급에선 ‘그림 보고 질문에 답하기’, 2급에선 ‘발표하기’ 문항이 출제된다. 3급은 실용 100%, 2급은 학업 관련 70%, 실용 30%로 출제된다.
실용 관련 문항에 관해서 김수진 교사는 “학교나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상황에서 쓰는 실용적인 표현을 연습하면 된다”며 “난이도는 교과서 수준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아 학교 교육만 마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의사소통능력을 갖췄는가를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급 시험에만 있는 발표하기(presentation)는 조금 더 연습을 해야 한다. 발표하기는 실제 대학에서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 포함된 평가 항목으로 지난 2월27일에 <교육방송>(EBS)에서 방송된 국영시 말하기 2급 특강에서 서울 국제고 주민혜 교사는 “발표하기는 말하기 2급의 특징적인 문항”이라며 “그래프나 도표를 보고 수치를 정확히 말하되 비교 표현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어진 자료가 무엇인지 파악한 뒤 비교급 문장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학부모는 말하기 시험을 볼 때 발음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해야 하는지 걱정한다. 박덕희씨는 “말하기 시험이 실시되면 어학연수를 갔다 온 아이들이 유리하지 않겠냐”며 우려를 표했다. 주 교사는 “과제완성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판단될 정도의 내용을 말로 해야 된다”며 “발음은 이해가 가능할 정도면 감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쓰기 역시 말하기와 더불어 낯선 평가 방식이다. 쓰기는 2급에서 2문항, 3급에서 4문항이 출제된다. 이비에스이에서 국영시 쓰기 영역을 강의하는 서울 숙명여자중학교 정우정 교사는 “2, 3급 모두 상황에 맞게 표현하는 능력이 주요 채점 기준”이라며 “2급의 경우엔 기초학술주제, 3급의 경우엔 실용적 주제와 관련된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평가의 주요 특징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 교사는 “앞뒤 문맥이 잘 연결돼야 하고, 문장이 따로 놀지 말아야 한다”며 “한 문단 안에서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국영시가 인터넷 기반 시험이기 때문에 수만명이 동시에 시험을 칠 수 있는 시설을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 백지원 교사는 “기계적 오류 때문에 답안 저장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가 교사들 사이에 돌고 있다”며 “하드웨어가 잘 구축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지난 2월17일, 21일에 시행될 예정이었던 전국 고교생 및 중·고교 교사 대상 국가영어능력평가 예비시험이 갑작스럽게 취소돼 시스템이 불안정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시행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손충모 대변인은 “아직까지 세부 일정조차 발표를 유보하고 있는 이 시험은 토플과 토익, 텝스 등 이미 공인된 다른 시험에 비해 객관성과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이어 손 대변인은 “국가가 강제하는 시험이 하나 더 늘어나게 돼 스펙이 하나 추가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학생들은 학업 부담이 늘고,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의존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손 대변인은 “온 나라의 모든 영역에서 영어 교육이 지나치게 확대되고 강화되는 건 비효율적”이라며 “문화·예술·체육·창작에 관련된 교육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 쪽으로 교육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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