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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교에 ‘남녀탐구생활’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12-03-12 12:02수정 2012-03-15 13:24

남녀차별을 주체로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낸 표어로 게시판을 함께 꾸몄다. 왼쪽부터 함진희 교사와 허두영군, 김연우양.
남녀차별을 주체로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낸 표어로 게시판을 함께 꾸몄다. 왼쪽부터 함진희 교사와 허두영군, 김연우양.

청소년 양성평등교육 현장을 가다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케이블티브이 프로그램인 ‘남녀탐구생활’의 시작 멘트다. 이 코너는 남자와 여자의 특징을 콕 집어내서 남녀 관계를 자세하고 재미있게 묘사해 온갖 화제와 패러디를 낳았다. 학교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학생과 여학생, 남교사와 여학생, 여교사와 남학생 등 이성 간에 부딪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동성이나 이성 간 성희롱에서부터 남녀차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게 잘못된 성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지금 우리 교실에도 남녀탐구생활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초등학교 3학년인 ㄱ양은 얼마 전 환경미화를 하면서 짜증이 났다. 함께 게시판을 만들기로 한 남자애들이 놀기만 해서다. 다 같이 하자고 했지만 자기들이 하면 색깔도 이상하고 꼼꼼한 것은 못한다며 그런 건 여자들이 잘한다고 미뤘다. 담임이 여선생님인 친구 ㄴ군도 요즘 학교생활에 불만이 있다. 음악시간에 반주를 하는데 여자애들에 맞춘 음이 너무 높아서 제대로 노래를 부를 수 없다. 또한 점심 급식 때 앞에 서도 여자애들이 우선이라며 뒤로 가라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중학생인 ㄷ군은 평소 행동이 좀 여성스러운 편이다. 보통 남자애들은 여자애를 부를 때 성을 붙여서 부르는데, ㄷ군은 다정하게 “민지야~”라고 불렀다. 이런 모습을 본 남자애들은 “뭐냐, 게이 아냐?” 이러면서 놀리고 바지를 벗기기까지 했다. 결국, ㄷ군은 3년 동안 왕따를 당했다.

이 사례에서 보듯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차별이 많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생이나 교사 대부분 성에 따른 차별이나 희롱을 직접 겪거나 들은 경험이 있었다. 여성가족부 산하에 있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이런 남녀차별적 의식과 관행을 개선하고자 양성평등 교육 및 성인지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재 양성평등 선도·시범학교, 남녀평등상, 생애주기별 양성평등의식교육사업 등을 진행중이다.

여자니까… 남자니까… 이게 싫어요

경남 창원에 있는 풍호초등학교는 지난해 양성평등 선도학교로 지정·운영됐다. 당시 양성평등교육 전담교사로 활동했던 권성훈 교사(현재 창원 안골포초등학교 근무)는 “양성평등교육에서 아이들이 성에 따른 ‘차이와 차별’을 제대로 구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이다 보니 체험활동이 학습효과가 높다. 남녀가 어울려 예체능 활동을 하며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상대가 어떤 걸 더 잘하는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세정(13)양은 “처음에는 학교에서 여자니까, 남자니까,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 교육을 통해 남자랑 여자는 다르지만 그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평소 여자니까 조신하라는 말을 하셨는데, 활동한 내용을 많이 이야기해서 잘못됐다는 걸 아셨는지 요즘엔 자제하신다”고 얘기했다.

양성평등 실천방안을 위해 아이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는 학교에도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이 축구를 한다고 운동장을 대부분 차지해 불만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에 ‘남녀 운동장 사용의 날’을 만들어 일주일에 남학생과 여학생이 하루씩 운동장을 번갈아 사용하고 나머지는 함께 쓰도록 했다. 또한 화장실 입구에 공통으로 하나만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에 대한 불편사항을 접수해 여자 화장실은 칸마다 휴지를 설치했다. 선생님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양성평등교육이라는 용어 자체도 낯선데, 학교에서 그걸 가르치기란 교사 입장에서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주최하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관한 남녀평등상 교육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용인 남곡초등학교 함진희 교사의 수업은 흥미로운 동시에 아이들의 생각을 ‘깨는’ 방식이었다. 함 교사는 여전히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 있고, 맞벌이 부부임에도 여성이 집안일을 맡아 하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연신중학교 학생들이 생애주기별 양성평등교육 캠페인 활동 중 직접 만든 피켓들.  은평가정폭력상담소 제공
연신중학교 학생들이 생애주기별 양성평등교육 캠페인 활동 중 직접 만든 피켓들. 은평가정폭력상담소 제공
연신중학교 학생들이 생애주기별 양성평등교육 캠페인 활동 중 직접 만든 피켓들.  은평가정폭력상담소 제공
연신중학교 학생들이 생애주기별 양성평등교육 캠페인 활동 중 직접 만든 피켓들. 은평가정폭력상담소 제공
교과서 내용 고쳐가며 양성평등 깨달아

그는 교과서를 분석해 성차별적이거나 성 고정관념에 대한 내용을 뽑아 ‘조금은 딴 생각’이라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었다. 창의적 체험활동시간뿐만 아니라 전 교과목 수업과 연계해 꾸준히 진행했다. “예를 들어 국어교과서에 ‘지혜로운 아들’을 주제로 제시문이 나오는데 2개의 글 모두 효자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에 대해 다 함께 토론을 해서 ‘지혜로운 남매’나 ‘지혜로운 오누이’로 이야기를 바꿔보는 것이다.” 남자만 우월한 것이 아니라 남녀가 모두 효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자 한 것이다.

또한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온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여자는 유관순, 신사임당, 논개, 심청 등 4~5명뿐이었다. 함 교사는 여자가 그것밖에 안 될까 싶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 장미란, 조수미 등을 찾았다. 김연우(10)양은 그 수업을 떠올리며 “난 김연아를 위인으로 뽑아서 직접 그렸다. 교과서에 여자는 없고, 남자만 있어서 여자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두영(10)군도 “전에는 안 그랬는데 수업을 듣고 나서 엄마를 잘 돕고 아빠한테도 같이 집안일을 하자고 얘기한다”고 했다.

함 교사는 교과서 내용뿐만 아니라 삽화도 문제라고 말했다. “즐거운생활 교과서 악보 옆 그림을 보면 여자는 치마를 입고 나비를 쫓아다니고 남자는 바지를 걷고 물고기를 잡는다. 대부분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게 묘사된다. 아이들이 성 고정관념에 빠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중간 중간 그런 그림을 어떻게 바꿔볼까 아이들과 이야기해서 실제 바꿔 그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아직 가치관이 성립되기 전이기 때문에 선생님이나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다. 또한 신체 변화와 함께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시기이므로 양성평등교육이 더더욱 중요하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연신중학교는 지난해 생애주기별 양성평등교육을 했다. 남녀평등을 주제로 이론수업과 길거리 캠페인을 벌였다. 이 교육에 참여했던 이민지(17)양은 “‘여자는 빨강, 남자는 파랑’인 줄만 알았는데, 평소 당연시 하던 것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간혹 체육시간에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를 하라고 하고 환경미화는 여자애들이 손재주가 좋다며 여학생에게 더 시키는 선생님들이 있다”며 “성에 따른 차별이 없어진다면 자기의 개성을 살리고 서로 간에 벽이 허물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 격차 지수를 보면 한국은 135개국 중 10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만큼 우리의 양성평등의식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김현정 팀장은 “양성평등은 소통문화의 핵심과 관련한 부분이다. 여성의 성역할이 많이 바뀌었지만 성평등지수는 여전히 낮다. 성교육이 성적인(sexual) 부분에만 국한됐다면, 양성평등은 남녀의 역할과 인식에 대한 전반적 얘기를 다루고 있다. 단순히 왜 차별받느냐가 아니라 성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보완을 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착화된 성의식이 남성에게는 권익을 세워주기보다 더 많은 부담을 주고 여성에게는 유리천장과 일과 가정의 양립을 힘들게 하는 현실을 만든다. 이런 의식이 바뀌려면 교육이 절실하다. 양성평등교육이 단발성이 아니라 체계화·의무화돼서 장기적으로 사회의 의식변화를 만드는 촉진제가 돼야 한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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