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8일 경기도 안양시 동안고등학교에서 ‘더불어 사는 평화교육’의 하나인 명상수업이 진행됐다. 1학년 1반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보내는 축복(격려)의 메시지를 적어 한곳에 모았다. 미래의 자신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는 활동을 명상수업 때 많이 하고 있다. 한겨레 휴센터 제공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행복한 학교 만들기
‘내 안의 나’ 성찰하면 마음가짐 바뀌어
‘평화교육’은 학교폭력 막는 장기적 대안
‘내 안의 나’ 성찰하면 마음가짐 바뀌어
‘평화교육’은 학교폭력 막는 장기적 대안
“… 닫힐 대로 닫혀 있던 제 마음을 선생님께서 열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진행 멘트에 따라 천천히 명상을 해 나가면서 저는 제일 먼저 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저 자신의 좋지 않은 점들만을 바라보며 저를 굉장히 바닥인 애로 취급해 왔는데요, 제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존재로서 이 세상에 오게 됐는지를 이 프로그램의 명상 시간들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께서 저를 안아 주셨지요. 그때 저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습니다. 터뜨리지는 않았지만 그 감동은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진심 어린 포옹이 정말 감사합니다. 이 모든 시간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ㄱ(고2)양이 명상수업을 마친 뒤 담당 강사에게 쓴 편지 가운데 일부분이다. ㄱ양은 지난해 1학기 내내 왕따를 당했었다. ‘매점 셔틀’(매점에서 빵·음료수 등을 사오라고 시키는 행위)은 기본이고, 욕을 먹고 맞기까지 했다. ㄱ양은 그 당시를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세상에 나 혼자 남겨져 있는 것 같아 외로웠다”고 떠올린다.
2학기 들어서 ‘왕따’ 문제는 해결됐다. 그러나 ㄱ양의 마음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마음을 완전히 터놓고 지내기에는 상처가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그런 ㄱ양에게 2월 초에 학교에서 이뤄졌던 총 12시간의 명상수업은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감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너희들은 소중한 사람이다.” “남들이 바라보는 모습만이 참모습은 아니다.” “너희들은 아름답고 천사 같은 존재다.” 조금은 낯간지러울 수도 있는 강사의 멘트였지만 힘든 일을 겪었던 ㄱ양에겐 마음에 와닿는 소중한 말이었다. ㄱ양은 “명상을 하며 버려야 할 것들을 하나씩 떠올린 뒤 내려놓다 보니까 눈물이 났다”며 “‘사랑한다’, ‘용서한다’란 말을 되뇌다 보니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게 됐다”고 밝혔다.
명상수업은 경기도교육청이 시행하는 ‘더불어 사는 평화교육-창의인성증진 프로젝트’(이하 평화교육) 프로그램이다. 명상이라고 해서 단순히 가부좌를 틀고 생각에 잠기는 수업이 아니다. ‘음악 듣기’, ‘롤링페이퍼’, ‘얼굴 그리기’, ‘편지 쓰기’ 등 자신을 성찰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경기도교육청은 김상곤 교육감 주도 아래 지난해 9월15일 ‘경기평화교육헌장’ 선포식을 열고, ‘교육 3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모두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평화교육은 모든 형태의 폭력을 근절하고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평화로운 교실과 학교를 만드는 걸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엔 5개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했고 올해엔 12개 학교로 늘려 진행한다.
그런데 단순히 명상수업만으로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을까? 김수완(안양 동안고2)양은 “나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진 못했다”며 “명상수업을 받기 전엔 실수하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사랑받고 있다는 멘트가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자존감이 높아져 실수하는 자신도 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원소희(파주 해솔중2)양도 “처음에 명상은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노래도 들려주고, 기체조도 해서 재밌었다”며 “롤링페이퍼와 수업 전후에 자기 얼굴 그리기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원양은 “수업을 받은 뒤 공부에 급급했던 마음이 사라졌고, 마찰이 있었던 친구와의 관계도 좋아졌다”며 “특히 수업이 끝난 뒤 담임선생님께서 우리를 한 명씩 안아주면서 ‘○○야 잘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놨다.
학생들은 학업 부담이 없는 명상수업에서 교사와 소통하며 자신이 인정받는다는 생각을 꾸준히 키운다. 명상수업 보조교사로 참여했던 오경희 교사(해솔중 국어)는 “교과 진도를 나가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잘못해도 ‘천사야’라고 부르고, ‘사랑’과 ‘감사’란 단어를 많이 쓰며 수업을 진행했더니 분위기도 좋아지고 아이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청평중학교에서 명상 지도를 했던 김우인 강사(한겨레 휴센터)는 “청소년들은 그동안 사회에서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어서 부정적 자아상을 많이 갖고 있다”며 “칭찬을 많이 하고, ‘잘못했다’보다는 잘못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쌓여 학생들의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마음을 읽고 헤아리는 활동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근 학교폭력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에게서 분노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특성이 많이 보인다고 말한다. 강승완 서울대 의대 보완통합의학연구소 대표는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고, 또래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폭력적으로 분출하는 특성이 있다”며 “이 아이들은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분석했다.
명상수업은 분노 조절에도 효과가 있었다. 이강산(가평 청평중3)군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3~4개월 병원에 있는 동안 잠시 방황했다.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위 어른들에게 불손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는 딴 자리에 가서 앉기도 하고 장난도 많이 쳤다. 동네나 학교에서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16시간의 명상수업은 그에게도 하나의 계기가 됐다.
“2학년이 된 뒤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화나면 아무것도 안 보였거든요. 어른한테 싸가지 없이 행동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명상수업을 받은 뒤엔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 화낸 적도 없어요. 얼마 전에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 크게 다툴 뻔했는데 참았어요. 예전 같았으면 크게 싸웠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가끔 집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기도 해요.” 이군은 “명상수업을 받고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며 “내 이름을 대면 안 좋게 소문이 나 있었는데, 앞으로는 ‘착한 이강산’으로 불리고 싶다”고 희망을 얘기했다.
경기도교육청 이승준 학교혁신과 장학사는 “시범학교로 지정한 5개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명상수업 전후 상태를 비교했더니 감성적인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며 “학교폭력의 원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학교교육을 통해서 개선시킬 실마리로 평화교육을 진행하고, 교사 교육도 확대해 장기적인 대안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교사와 학생의 인식이 부족한 점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나혜숙 교사(수원 이목중 영어)는 “학교 선생님의 역할이 분명했으면 한다”며 “사전 연수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완양도 “처음 시작할 땐 전혀 몰랐던 수업이라 ‘명상하면 뭐가 좋아질까’란 생각이 들어 의아했다”며 “공부할 때 학습목표를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이 차이가 나듯 명상수업도 그 효과를 좀더 자세하게 알려주고 시작하면 집중이 잘돼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지난 1월4~7일 진행된 경기도교육청 ‘더불어 사는 평화교육’ 교사직무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이 세이브(SEIV) 명상 지도실습을 소그룹으로 배우고 있다.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명상을 전달하기 위한 작업이다. 한겨레 휴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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