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자유
통합논술세미나/ 1. 자유사회와 정부의 역할
■ 책 소개
<자본주의와 자유>
밀턴 프리드먼 지음, 심준보·변동열 옮김/청어람미디어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막상 신자유주의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다. 이것의 정체를 알려면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을 읽으면 된다. 1962년에 나온 <자본주의와 자유>는 프리드먼의 대표작으로, 국가가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을 때 경제는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가며, 각종 규제·노동자 보호·사회보장은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고 모두를 가난하게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처음에는 이단으로 취급받았으나,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살아생전에 소수파에서 주류가 되는 영광을 맛봤다. 한데 그가 죽은 뒤 불과 2년 뒤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사태 근본 원인이 프리드먼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그의 명성에도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 풀무질
제35대 미국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취임사,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오”라는 말은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은 “이 구절은 국가가 보호자, 시민이 피보호자임을 은연중 전제하는 가부장적 표현으로,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보는 자유인의 신념과 배치된다”고 비판한다.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정부를 주인 또는 신격으로 보고 시민을 종이나 숭배자로 본다는 의미다. 국가란 구성원인 개인들의 집합체이지 개인 위에 군림하거나 개인을 초월하는 게 아니다. 자유인은 정부를 수단이나 도구로 여길 뿐, 호의를 베풀거나 선물을 주는 시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인은 시민들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들과 일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국가적 목적도 인정하지 않는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자유사회에서 정부와 관련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권한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정부의 주된 기능은 외부의 적들로부터는 물론 동료 시민들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것, 즉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사적 계약을 실현하며 경쟁적 시장을 육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제활동과 그 밖의 활동에서 자발적인 협력과 민간 기업에 의존함으로써, 민간 부문이 확실하게 정부 부문의 권력을 견제하고, 표현·종교·사상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둘째, 정부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정부가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면 연방정부보다는 주정부가, 주정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행사하는 편이 낫다. 민간 부문이 정부 권력을 견제해야 소련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가 강요하는 개인적 자유의 속박을 너무도 당연히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식 경제제도의 본질적 특성들을 수용한 국가에서도 정치체제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확신해 ‘민주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이 많다. 이런 견해는 망상에 불과하다. 정치와 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정치체제와 경제체제 사이에는 오로지 특정한 조합들만이 가능하다. 특히 민주적이라는 말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한 사회주의 사회는 결코 민주적일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외환통제 때문에 미국에서 휴가를 보낼 수 없었던 영국인이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 때문에 러시아에서 휴가를 보낼 수 없었던 미국인이나 똑같이 본질적인 자유를 박탈당한다. 전자는 자유에 대한 경제적 제한이고 후자는 정치적 제한이지만, 둘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다. 미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퇴직연금에 자기 소득의 10%를 납입해야 한다고 법이 강제하고 있다면, 이러한 강제를 받는 시민은 그에 상응하는 만큼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면허 없이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시민, 제조업자가 정한 가격보다 낮게 팔았다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투옥된 사람, 자기가 원하는 만큼 밀을 재배할 수 없는 농부 등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자유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경제체제는 권력의 집중이나 분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 경쟁적 자본주의는 정치적 자유도 촉진한다. 경제적 권력을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분리하고, 그러한 방식으로 전자가 후자를 상쇄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개인들의 자발적 협력 장소 광범위한 정치적 자유를 자랑하면서도 주요한 경제활동을 조직하기 위해 자유 시장에 맞는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사회는 어느 시대 또는 어느 지역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나 고대 로마의 초창기에도 그러했다. 개인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사회조직의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제행위를 어떻게 조정해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수백만명의 경제행위를 조정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군대나 현대 전체주의 국가처럼 강제력으로 중앙에서 지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들의 자발적 협력인데, 이것이 바로 시장의 방식이다. 이는 ‘쌍방 당사자 모두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동시에 쌍방에게 똑같이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 있다’면 쌍방 당사자 모두가 이득을 본다는 명제에 기반하고 있다. 이게 자유민간기업 경제다. 쌍방이 교환에서 이득을 보지 못한다면 교환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강제력 없이도 협력은 이뤄진다. 만약 우리가 물물교환에 계속 의존해야 한다면 기능의 전문화와 분업은 진전될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교환을 용이하게 해주고 구매 행위와 판매 행위를 분리해주는 수단으로서 화폐가 출현했다. 자유경제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원해야 한다고 특정 집단이 규정짓는 바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바를 제공한다. 자유 시장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논의는 자유 그 자체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자유시장이 존재한다고 정부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정부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토론장으로서나, 정해진 규칙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심판자로서나 필수불가결하다. 시장은 정치적 수단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항의 범위를 축소하고, 그럼으로써 정부가 게임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 정도를 최소화한다.
■ 마치질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일치할까?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소련에서 전체주의적 사회주의가 강요하는 개인적 자유의 속박을 너무도 당연히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식 경제제도의 본질적 특성을 수용한 국가에서도 정치체제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확신한 나머지 ‘민주사회주의’를 옹호한다.”(<자본주의와 자유> 1장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관계’) 윗글에서 ‘러시아식 경제제도의 본질적 특성을 수용한 국가’는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복지국가를 의미한다. 프리드먼은 정치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경제적 자유는 필수불가결하다고 입이 닳도록 강조한다. 이 말은 역으로 경제적 자유가 없다면 정치적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당신이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먼저 경제적 자유를 확실하게 확보해야 한다”는 게 <자본주의와 자유>의 기본 명제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에 관한 프리드먼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프리드먼은 홍콩·싱가포르·대만·한국 등은 시장지향적 정책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1960~1980년대 경제 발전 시기에 모두 독재체제였다. 대만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간 계엄령 상태였다. 싱가포르는 리콴유 총리가 1965년부터 1990년까지 26년간 집권했고, 그의 아들 리셴룽은 2004년부터 총리를 맡고 있다. 1989년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 진압했을 때 리콴유는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중국이 분열된다”며 적극 지지했다.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영국 식민지였다. 자신을 통치하는 자를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따라 스스로 뽑을 수도 없었던 홍콩에 정치적 자유라는 잣대 자체를 들이댈 수 없다. 더구나 프리드먼 지지자 대부분은 동아시아 경제 성장기에 정치적 억압은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합리화한다. 프리드먼은 뉴딜정책도 맹비판한다. 뉴딜정책 가운데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다. 농산물 과잉생산 금지를 통한 가격 통제, 공정경쟁규약을 작성해 기업간 지나친 경쟁 금지,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인정, 최저임금제 실시,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로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 실업자와 빈곤층 구제 등이 그것이다. 뉴딜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케인스와 이 정책을 집행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주의자로 공격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그 시절에도 지금도 자본주의 첨병국가다. 여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프리드먼은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이는 아마도 그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가 자본주의에서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만의 자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난한 자는 사실상 경제적 자유가 없다는 점을 그는 무시한다. 초원에서 늑대의 자유는 양들에게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프리드먼은 늑대의 자유를 규제해 양들의 자유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마치 양들의 자유도 없애버렸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 담금질 초과근로하다 의식 잃은 고교생, 누구 책임? 지난달 17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한 주에 50시간 이상 일하던 고등학교 3학년 현장실습생이 과로로 쓰러졌다. 실습생 김아무개(18)군은 “어지럽고 머리가 쑤신 듯 아프다”며 같은 학교 학생한테 심한 두통을 호소한 뒤 의식을 잃었고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군은 토요일인 이날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자동차에 페인트를 분사하는 작업장에서 특근을 한 뒤 기숙사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려고 등록금을 모으려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김군은 주야간 맞교대와 격주 주말 특근 등으로 매주 평균 54시간을 일하고 한 달 평균 170만원가량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15~18살 청소년의 경우 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 1주일 46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야간근무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공장은 주야 맞교대를 하며 하루 평균 10시간, 격주로 특근 8시간을 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실습은 학교에서 배운 전공과 관련한 실무·전문 기술을 산업 현장에서 익히는 직업교육이다. 그러나 최근 취업률을 높이려는 학교 쪽과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업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학생들은 전공과 관련 없는 단순·장시간 노동을 했다. 김군은 누구의 강요에 따라 초과근로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노동했다. 따라서 그가 변을 당한 것도 그 자신의 책임이라고 해야 할까? 밀턴 프리드먼의 논리에 따르면 김군의 책임이다. 비슷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누구나 운전할 때 안전띠를 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는 “당신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며 강제한다. 많은 나라들은 대마초 흡연을 엄벌에 처한다. 그러나 대마초는 담배보다는 중독성이 약하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대마초를 피운다는데 왜 국가가 막는가? 지난해 10월 최철원 M&M 전 대표는 회사 인수합병에 반대해 1인시위를 한 유아무개씨를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한 뒤 2000만원을 줬다. 만약 유씨가 2000만원을 받고 아무 불만이 없었더라도, 경찰이 알았더라면 최씨는 구속됐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먼의 논리대로라면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 합의하에 두들겨 맞아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대신 돈을 받는 직업을 갖는 데 국가가 개입할 근거가 희박하다. 자살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고통이 두려워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내 준 의사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혼자 죽기 힘들어 동반자를 구하는 자살 사이트 운영자를 처벌하는 근거가 무엇일까? 극단적 사례지만 이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는 수준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개입 수준은 누가 결정할 것인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의 상당수는 이 때문에 발생한다.
■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다음 두 글을 읽고 어느 의견에 동의하는지 써 보시오. (600자) ① 문명의 크나큰 진보는, 건축이나 회화에서건 과학이나 문학에서건 또는 공업이나 농업에서건 간에, 결코 중앙집권적인 정부가 이룩한 것이 아니다. 비록 절대군주에게서 부분적인 자금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콜럼버스가 의회 다수파의 명령에 따라 중국으로 가는 새 항로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아인슈타인과 보어…에디슨, 헨리 포드, 제인 애덤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알베르트 슈바이처 같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인간에 대한 지식과 이해, 문학, 기술적 가능성 혹은 박애사업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아니다. 그들의 업적은 개인의 뛰어난 재능, 완강하게 고수한 소수 의견, 다양성과 차이를 용납한 사회 분위기의 합작품이었다. (<자본주의와 자유> 서론) ② 다른 무엇보다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처럼 특별한 인물들도 수없이 많은 제도적, 조직적 지원을 받지 않았으면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지식을 습득하고, 또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실험해 볼 수 있도록 해 준 과학 인프라, 크고 복잡한 조직을 갖춘 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한 회사법 및 기타 상거래 관련 법률, 이들이 설립한 회사에서 고용한 엔지니어·경영진·노동자 등을 양산한 교육 시스템, 회사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던 금융 시스템, 새로 개발한 기술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특허법과 저작권법이 모두 그 예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15장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다’) 2. 아래는 <자본주의와 자유> 2002년판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아래 지문의 내용이 <자본주의와 자유> 본문에 나오는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에 관한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과 다른지 아닌지 비교·분석해 보시오. (800자) “나는 이 책을 마친 후,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홍콩의 사례를 통하여 비록 경제적 자유가 시민적·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시민적 자유의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바람직한 조건이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경제적·시민적 자유를 고양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제적·시민적 자유를 억제하기도 하는 정치적 자유의 역할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밀턴 프리드먼 지음, 심준보·변동열 옮김/청어람미디어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막상 신자유주의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다. 이것의 정체를 알려면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을 읽으면 된다. 1962년에 나온 <자본주의와 자유>는 프리드먼의 대표작으로, 국가가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을 때 경제는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가며, 각종 규제·노동자 보호·사회보장은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고 모두를 가난하게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처음에는 이단으로 취급받았으나,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살아생전에 소수파에서 주류가 되는 영광을 맛봤다. 한데 그가 죽은 뒤 불과 2년 뒤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사태 근본 원인이 프리드먼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그의 명성에도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 풀무질
서울 서초구에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프리드먼에 따르면, 자유사회에서 정부와 관련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권한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정부의 주된 기능은 외부의 적들로부터는 물론 동료 시민들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것, 즉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사적 계약을 실현하며 경쟁적 시장을 육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제활동과 그 밖의 활동에서 자발적인 협력과 민간 기업에 의존함으로써, 민간 부문이 확실하게 정부 부문의 권력을 견제하고, 표현·종교·사상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둘째, 정부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정부가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면 연방정부보다는 주정부가, 주정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행사하는 편이 낫다. 민간 부문이 정부 권력을 견제해야 소련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가 강요하는 개인적 자유의 속박을 너무도 당연히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식 경제제도의 본질적 특성들을 수용한 국가에서도 정치체제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확신해 ‘민주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이 많다. 이런 견해는 망상에 불과하다. 정치와 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정치체제와 경제체제 사이에는 오로지 특정한 조합들만이 가능하다. 특히 민주적이라는 말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한 사회주의 사회는 결코 민주적일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외환통제 때문에 미국에서 휴가를 보낼 수 없었던 영국인이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 때문에 러시아에서 휴가를 보낼 수 없었던 미국인이나 똑같이 본질적인 자유를 박탈당한다. 전자는 자유에 대한 경제적 제한이고 후자는 정치적 제한이지만, 둘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다. 미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퇴직연금에 자기 소득의 10%를 납입해야 한다고 법이 강제하고 있다면, 이러한 강제를 받는 시민은 그에 상응하는 만큼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면허 없이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시민, 제조업자가 정한 가격보다 낮게 팔았다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투옥된 사람, 자기가 원하는 만큼 밀을 재배할 수 없는 농부 등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자유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경제체제는 권력의 집중이나 분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 경쟁적 자본주의는 정치적 자유도 촉진한다. 경제적 권력을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분리하고, 그러한 방식으로 전자가 후자를 상쇄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개인들의 자발적 협력 장소 광범위한 정치적 자유를 자랑하면서도 주요한 경제활동을 조직하기 위해 자유 시장에 맞는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사회는 어느 시대 또는 어느 지역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나 고대 로마의 초창기에도 그러했다. 개인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사회조직의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제행위를 어떻게 조정해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수백만명의 경제행위를 조정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군대나 현대 전체주의 국가처럼 강제력으로 중앙에서 지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들의 자발적 협력인데, 이것이 바로 시장의 방식이다. 이는 ‘쌍방 당사자 모두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동시에 쌍방에게 똑같이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 있다’면 쌍방 당사자 모두가 이득을 본다는 명제에 기반하고 있다. 이게 자유민간기업 경제다. 쌍방이 교환에서 이득을 보지 못한다면 교환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강제력 없이도 협력은 이뤄진다. 만약 우리가 물물교환에 계속 의존해야 한다면 기능의 전문화와 분업은 진전될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교환을 용이하게 해주고 구매 행위와 판매 행위를 분리해주는 수단으로서 화폐가 출현했다. 자유경제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원해야 한다고 특정 집단이 규정짓는 바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바를 제공한다. 자유 시장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논의는 자유 그 자체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자유시장이 존재한다고 정부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정부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토론장으로서나, 정해진 규칙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심판자로서나 필수불가결하다. 시장은 정치적 수단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항의 범위를 축소하고, 그럼으로써 정부가 게임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 정도를 최소화한다.
■ 마치질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일치할까?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소련에서 전체주의적 사회주의가 강요하는 개인적 자유의 속박을 너무도 당연히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식 경제제도의 본질적 특성을 수용한 국가에서도 정치체제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확신한 나머지 ‘민주사회주의’를 옹호한다.”(<자본주의와 자유> 1장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관계’) 윗글에서 ‘러시아식 경제제도의 본질적 특성을 수용한 국가’는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복지국가를 의미한다. 프리드먼은 정치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경제적 자유는 필수불가결하다고 입이 닳도록 강조한다. 이 말은 역으로 경제적 자유가 없다면 정치적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당신이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먼저 경제적 자유를 확실하게 확보해야 한다”는 게 <자본주의와 자유>의 기본 명제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에 관한 프리드먼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프리드먼은 홍콩·싱가포르·대만·한국 등은 시장지향적 정책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1960~1980년대 경제 발전 시기에 모두 독재체제였다. 대만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간 계엄령 상태였다. 싱가포르는 리콴유 총리가 1965년부터 1990년까지 26년간 집권했고, 그의 아들 리셴룽은 2004년부터 총리를 맡고 있다. 1989년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 진압했을 때 리콴유는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중국이 분열된다”며 적극 지지했다.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영국 식민지였다. 자신을 통치하는 자를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따라 스스로 뽑을 수도 없었던 홍콩에 정치적 자유라는 잣대 자체를 들이댈 수 없다. 더구나 프리드먼 지지자 대부분은 동아시아 경제 성장기에 정치적 억압은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합리화한다. 프리드먼은 뉴딜정책도 맹비판한다. 뉴딜정책 가운데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다. 농산물 과잉생산 금지를 통한 가격 통제, 공정경쟁규약을 작성해 기업간 지나친 경쟁 금지,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인정, 최저임금제 실시,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로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 실업자와 빈곤층 구제 등이 그것이다. 뉴딜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케인스와 이 정책을 집행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주의자로 공격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그 시절에도 지금도 자본주의 첨병국가다. 여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프리드먼은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이는 아마도 그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가 자본주의에서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만의 자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난한 자는 사실상 경제적 자유가 없다는 점을 그는 무시한다. 초원에서 늑대의 자유는 양들에게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프리드먼은 늑대의 자유를 규제해 양들의 자유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마치 양들의 자유도 없애버렸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 담금질 초과근로하다 의식 잃은 고교생, 누구 책임? 지난달 17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한 주에 50시간 이상 일하던 고등학교 3학년 현장실습생이 과로로 쓰러졌다. 실습생 김아무개(18)군은 “어지럽고 머리가 쑤신 듯 아프다”며 같은 학교 학생한테 심한 두통을 호소한 뒤 의식을 잃었고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군은 토요일인 이날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자동차에 페인트를 분사하는 작업장에서 특근을 한 뒤 기숙사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려고 등록금을 모으려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김군은 주야간 맞교대와 격주 주말 특근 등으로 매주 평균 54시간을 일하고 한 달 평균 170만원가량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15~18살 청소년의 경우 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 1주일 46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야간근무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공장은 주야 맞교대를 하며 하루 평균 10시간, 격주로 특근 8시간을 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실습은 학교에서 배운 전공과 관련한 실무·전문 기술을 산업 현장에서 익히는 직업교육이다. 그러나 최근 취업률을 높이려는 학교 쪽과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업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학생들은 전공과 관련 없는 단순·장시간 노동을 했다. 김군은 누구의 강요에 따라 초과근로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노동했다. 따라서 그가 변을 당한 것도 그 자신의 책임이라고 해야 할까? 밀턴 프리드먼의 논리에 따르면 김군의 책임이다. 비슷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누구나 운전할 때 안전띠를 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는 “당신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며 강제한다. 많은 나라들은 대마초 흡연을 엄벌에 처한다. 그러나 대마초는 담배보다는 중독성이 약하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대마초를 피운다는데 왜 국가가 막는가? 지난해 10월 최철원 M&M 전 대표는 회사 인수합병에 반대해 1인시위를 한 유아무개씨를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한 뒤 2000만원을 줬다. 만약 유씨가 2000만원을 받고 아무 불만이 없었더라도, 경찰이 알았더라면 최씨는 구속됐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먼의 논리대로라면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 합의하에 두들겨 맞아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대신 돈을 받는 직업을 갖는 데 국가가 개입할 근거가 희박하다. 자살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고통이 두려워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내 준 의사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혼자 죽기 힘들어 동반자를 구하는 자살 사이트 운영자를 처벌하는 근거가 무엇일까? 극단적 사례지만 이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는 수준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개입 수준은 누가 결정할 것인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의 상당수는 이 때문에 발생한다.
■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다음 두 글을 읽고 어느 의견에 동의하는지 써 보시오. (600자) ① 문명의 크나큰 진보는, 건축이나 회화에서건 과학이나 문학에서건 또는 공업이나 농업에서건 간에, 결코 중앙집권적인 정부가 이룩한 것이 아니다. 비록 절대군주에게서 부분적인 자금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콜럼버스가 의회 다수파의 명령에 따라 중국으로 가는 새 항로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아인슈타인과 보어…에디슨, 헨리 포드, 제인 애덤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알베르트 슈바이처 같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인간에 대한 지식과 이해, 문학, 기술적 가능성 혹은 박애사업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아니다. 그들의 업적은 개인의 뛰어난 재능, 완강하게 고수한 소수 의견, 다양성과 차이를 용납한 사회 분위기의 합작품이었다. (<자본주의와 자유> 서론) ② 다른 무엇보다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처럼 특별한 인물들도 수없이 많은 제도적, 조직적 지원을 받지 않았으면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지식을 습득하고, 또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실험해 볼 수 있도록 해 준 과학 인프라, 크고 복잡한 조직을 갖춘 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한 회사법 및 기타 상거래 관련 법률, 이들이 설립한 회사에서 고용한 엔지니어·경영진·노동자 등을 양산한 교육 시스템, 회사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던 금융 시스템, 새로 개발한 기술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특허법과 저작권법이 모두 그 예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15장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다’) 2. 아래는 <자본주의와 자유> 2002년판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아래 지문의 내용이 <자본주의와 자유> 본문에 나오는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에 관한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과 다른지 아닌지 비교·분석해 보시오. (800자) “나는 이 책을 마친 후,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홍콩의 사례를 통하여 비록 경제적 자유가 시민적·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시민적 자유의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바람직한 조건이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경제적·시민적 자유를 고양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제적·시민적 자유를 억제하기도 하는 정치적 자유의 역할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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