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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우리학교에는 꿈찾기 도와주는 길잡이가 있다

등록 2011-10-17 11:07수정 2011-10-17 11:08

성수고 학생들은 “진로진학상담교사 덕분에 진로설정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하게 됐고, 진학에 대한 손에 잡히는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왼쪽부터) 성수고 1년 이동석군, 류범선군, 유지찬군, 김종우 진로진학상담교사, 성수고 3년 허윤아양, 노슬기양.
성수고 학생들은 “진로진학상담교사 덕분에 진로설정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하게 됐고, 진학에 대한 손에 잡히는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왼쪽부터) 성수고 1년 이동석군, 류범선군, 유지찬군, 김종우 진로진학상담교사, 성수고 3년 허윤아양, 노슬기양.
진로진학상담교사가 있는 서울 성수고를 가다
수업과 상담 병행하는 전문가
자기이해…직업선택까지 도와
“진학만 있고, 진로는 없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소리다. 하지만 이제는 진학과 진로가 손을 잡고 공교육 안으로 들어온다. 그 중심에는 ‘진로진학상담교사’가 서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2학기부터 전국적으로 1500여 명의 진로진학상담교사를 교과교사로 발령을 냈다. 내년 3월, 이 수는 1500명으로 늘고, 2014년에는 전국 모든 중·고교에 5383명의 진로진학상담교사를 배치할 예정이다. 진로진학상담교사는 공교육 안에서 진로, 진학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과 지도를 전담한다.

서울 성수고 1학년 홍석재군은 항공우주공학과 진학이 꿈이다. 적성검사를 받으면서 항공우주공학 분야에 관심을 품게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홍군과 꿈 사이에는 큰 장벽이 있었다. 그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간다는 카이스트에만 항공우주공학 관련 학과가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학교 진로진학상담 김종우 교사에게서 항공대학교에도 관련 학과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 덕분에 공부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제가 도전해볼 만한 목표가 생기니까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이 학과에 가는 데 제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명확하게 보였죠. 선생님께서 내신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수학, 영어 등을 보충해야 해요.”

홍군한테 알토란 같은 정보를 제공한 김종우 교사는 지난해까지 이 학교에서 일본어을 가르쳤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진로진학상담교사로 일하면서 전국 진로진학상담교사 협의회장도 맡고 있다. 진로진학상담교사제도는 진로, 진학에 대한 상담과 지도를 전담하는 교사를 학교에 배치하는 것으로 지난 3월, 교원자격검정령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새롭게 도입됐다. 지난 8월까지 1500여 명 교사가 약 12주, 총 600시간의 연수를 받고 진로진학상담 정교사 자격을 얻었다. 이들은 보통 학교 안 진로, 진학교육 전반을 담당하면서 <진로와 직업> 교과 수업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가운데 진로활동 등을 지도한다.

김 교사처럼 진로진학상담교사로 발령받은 선생님들은 교직생활을 한 지 대개 10년이 넘었다. 김 교사는 “본래 담당했던 과목들은 각기 다르지만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된 사연들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했다.

“제 경우에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탓에 진로탐색 자체를 해보지 못했거든요.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시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농사나 장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저도 진로를 찾는 경험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었는데 지금 학생들도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속이 상했습니다. 거기다 제 아들의 진로, 진학 고민도 한몫을 했죠. 교사 자녀라면 그런 고민이 없을 것 같지만 제 아들도 진로나 진학 문제에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저만 이런 건 아닙니다. 연수 받을 때 선생님들 말씀 들어보면 자녀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어떤 선생님은 부모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에 자녀가 다니는 게 창피해서 말 안 하고 지냈는데 자기반성을 하면서 지원했다고 하시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교사로서 존재감을 찾고 싶다는 바람도 한몫을 했다. 김 교사는 “교사로 20년을 일했는데 어느 순간에 내가 지식을 파는 상인처럼 느껴졌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수업만 하는 사람으로만 남을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적절한 기회가 왔다”고 했다. “지금요? 당연히 만족합니다.”

김 교사가 진로를 바꾸고 학교생활에 만족하게 된 이유는 학생들한테 그만큼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던 지난 10월11일. 성수고 본관 3층 상담실에는 여느 때처럼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예고 없이 불쑥 방문하는 학생들은 이제 막 대학 정보에 눈을 뜬 1학년부터 곧 수능을 치러야 하는 3학년까지 다양했다. 김 교사는 “이렇게 학생들이 시시각각 상담실을 찾기 때문에 기왕이면 점심도 일찍 먹고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 상담실은커녕 다른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가 보여주는 시청각물로 진로수업을 받던 학생들은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존재에 만족스러워 했다. 1학년 류범선군은 “중학교 때는 상담실 자체가 없었는데 고교에 올라와서 이런 공간이 있고, 선생님이 계신다는 걸 보고 놀랐다”며 “별일 없어도 자주 들르게 된다”고 했다. 인터넷 등을 통해 혼자서도 진로탐색을 해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학생들은 “혼자 하는 것과 선생님이 직접 눈앞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1학년 유지찬군은 “진로나 진학에서 중요한 건 그냥 주어진 정보가 아니라 이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며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대학들과 정보교류도 하시고, 들어온 정보를 분석해서 우리한테 알려주시니까 정말 알짜 정보를 얻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3학년 노슬기양은 지난 8,9월 수시철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다.

“수시 쓸 때 전년도 입시 성적 등을 분석해주셨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배치된 뒤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한참 진로탐색을 해야 하는 1학년 학생들한테 진로와 직업에 대한 의식이 싹트고 있다는 점이다.

1학년 이동석군은 “모르는 학과가 정말 많았었는데 선생님께서 새로운 학과를 100개 이상 알려주셔서 학과와 관련한 직업들도 찾아봤다”고 했다. 류범선군은 “카지노학과도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된 학과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참 다양한 학과가 있더군요. 직업도 그렇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에 관심이 많아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근데 의사만이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방사선사, 물리치료사도 의학과 관련한 일이자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당장 이 분야로 갈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구체적인 목표를 정할 수 있어서 공부를 하는 데도 힘이 생겼죠.”

김 교사는 “궁금한 게 많아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을 볼 때 보람도 느끼지만 부모상담을 하면서는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상담실을 찾아와 “우리 아이가 이 점수로 어떤 학과를 갈 수 있는지 알려 달라”며 점쟁이식으로 진학상담을 요구할 때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김 교사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진로진학상담교사들한테는 학생이나 학부모나 ‘나’를 버리고 점수에 얽매이게 하지 않게 하자는 원칙이 있다”고 했다.

“고1 학생들한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쭉 써보라고 했었어요. 이게 진로찾기의 첫단추거든요. 나를 알아야 내가 갈 방향을 정하죠. 근데 그걸 보면 정말 눈물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힘들어했던 이야기, 아버지 직장에 처음 가보고 아버지가 일하시는 모습에 감동받은 이야기 등 다양한 사연들이 나오죠. 이렇게 아이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활동부터 하고 있어요. 진로찾기나 직업설정 등은 자신한테서 비롯되니까요. 그리고 병행해야 할 게 직업세계가 얼마나 다양한가를 아는 겁니다. 초등학생들을 보면 교사가 되려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가장 쉽게 볼 수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아이들한테 경험치를 늘려줘야 합니다. <제빵왕 김탁구>가 뜨면서 빵 관련 업종이 주목을 받았잖아요. 아이들은 단순하게 ‘이거 하면 대박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남들이 주목하니까 나도 주목하는 게 아니라 남들과는 상관없이 나한테 맞는 게 뭔지를 찾게 해줘야 합니다.”

진로진학상담교사 시스템은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다. 시행 초기라 현장에서는 섭섭한 상황도 벌어진다. 학교장이나 동료교사들이 진로진학상담교사를 ‘수업 안 하는 교사’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아직 시행 초기라 홍보가 안 된 탓에 수업이 있는 1학년과, 진학 선택을 코앞에 둔 3학년을 제외하고 2학년의 경우는 상담실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기도 한다.

김 교사는 “그런 점에서 앞으로 할 일이 많은 것 같다”며 “수능이 끝나면 학교 안 설명회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을 모시고 진로와 진학이 왜 중요한지 관심을 갖게 하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더 중요한 부분은 교사의 전문성을 확보해주는 것입니다. 진로와 직업, 진학은 생명체처럼 변합니다. 연수를 통해 업그레이드를 안 하면 안 되죠. 그런 부분에서 교육에 대한 투자와 지원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 진로진학상담교사는?

많은 학교에서 진로와 진학상담은 진학담당교사의 몫이었다. 진학상담교사는 다른 교과목 수업을 하면서 진학 상담을 별도로 해주는 구실을 해왔다. 담당하는 교과목이 있기 때문에 진로지도보다는 고교나 대학 선택을 돕는 진학 위주의 상담을 주로 했다. 따라서 ‘입시전문가’로서의 구실이 강조됐다.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진학담당교사와는 차이점이 있다. 진로진학상담교사는 학생의 진로활동 전반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면서 진로의 일부로서 진학상담을 맡는다. 즉, 학생이 자아탐색을 하고 여기에 맞춰 꿈을 설정한 뒤, 꿈에 맞는 활동을 해보고 적절한 학과로 진학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진로교육전문가이면서 입시전문가로서의 구실을 모두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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