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데이트 성폭력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성폭력에 대한 오해와 편견
‘성폭력’ 개념·범위부터 다시 설명 필요해
“저항 못한 네가 문제” 비난해선 안돼
‘성폭력’ 개념·범위부터 다시 설명 필요해
“저항 못한 네가 문제” 비난해선 안돼
“요즘 아이들이요? 남녀공학인지 아닌지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죠. 남학교 가면 ‘콘돔은 먹으면 무슨 맛인가요?’ 이렇게 물어보는 아이들도 많아요. 고교생들은 더 과감한 질문도 많이 하죠.”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추국화 소장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성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고, 과감하게 질문도 잘 한다”고 했다.
문제는 성에 노출돼 있는 것만큼 제대로 된 성폭력 교육은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 학생들이 “여자들이 키스를 해주면 성관계를 원하는 걸로 알았다”, “피해자도 같이 즐기려고 유발한 거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성폭력 피해 학생들이 “성폭력은 행동이 조신하지 못한 아이들이 당하는 것”이라며 사실을 알리는 걸 꺼리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학생들은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성폭력에 대한 학생들과 학부모의 오해와 편견에는 뭐가 있을까?
■ 여성만이 성폭력 피해자에 해당한다?
성폭력 교육을 하려면 성폭력의 개념 정의부터 다시 해둬야 한다. 성폭력이란,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까지 포함해 개인의 자유로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범죄를 말한다. 상대방의 동의나 허락 없이, 일방적인 강요에 의해서,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도 일어나는 성과 관련한 언어, 신체, 심리적인 폭력을 모두 포함한다.
청소년 가해자들은 “나는 장난으로 한 건데 이렇게 돼 미안하지만 억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알아둬야 할 것은 그 행위가 성폭력인지 아닌지를 피해자 처지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해도 가해자의 어떤 행위 뒤에 피해자가 성적 수치감이나 모멸감을 느꼈다면 그건 성폭력에 해당한다. 추국화 소장은 “예를 들어, 여자친구가 수영복 입은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성폭력이 아니지만 수영복 입은 모습에 대해 말로 수치스럽게 설명했다면 그건 겉으로 행위가 드러난 거고, 피해자가 성적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에 성폭력이다”라고 설명했다.
더 중요한 것은 성폭력의 피해자는 반드시 여자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도 여자의 언어나 행동 등에 의해 성적 수치감,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
■ 성폭력 가해자는 주로 낯선 사람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자료를 보면 성폭력 가해의 74%는 아는 사람한테서 일어나며, 13%는 가족 안에서 발생한다. 흔히 성폭력은 신문이나 뉴스에서나 볼 법한 특수한 상황 같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장 교사들은 “성폭력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근 들어서 근친 성폭력이 빈번히 일어난다”고 말한다. 편부모 가정인 경우, 의붓아버지와 딸 사이에서 많이 일어나고, 남매나 사촌 사이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특히 또래 남매나 사촌일 경우, 가해자는 “나는 그냥 잠에 취해서 만진 건데…”라고 얼버무리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족이라도 피해자가 성적 모멸감을 느꼈다면 엄연히 성폭력에 해당한다. ■ 끝까지 저항하지 못한 피해자 잘못이다? 흔히 성폭력 피해자의 부모들은 “너도 행동을 조심했어야 한다”고 비난한다. 이런 비난에 자녀는 오히려 심리적으로 더 고립된다. 성폭력 피해자는 “모든 일이 다 내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 같다”고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기 쉽다. 그 과정에서 상처는 배가된다. 성폭력에서 이루어지는 가해행위는 여러 다른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가해자보다 심리적, 물리적, 상황적, 관계적으로 위축돼 있어 저항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끝까지 저항하면 성폭력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또한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의 방어의무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씌우게 되고, 피해자한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그래. 너는 할 만큼 다 했어.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가해자가 나쁜 놈이지. 나머지 일들은 엄마랑 어른들이 다 알아서 할 거야.” 만약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면 이렇게 피해자 학생한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 ■ 짧은 치마 입고 다닌 게 문제다? “계집애가 짧은 치마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 겪는 거죠.” 가해 학생의 부모들은 피해 여학생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실제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관련 체크리스트를 해보라고 하면 “여자의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말에 동그라미를 치는 일이 많다. 이는 피해자가 어떻게 했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다고 책임을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추 소장은 “강의를 할 때 항상 ‘갈비집 이야기’에 비유를 한다”고 설명했다. “길을 가다가 배가 너무 고픈데 갈비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거예요. 그럼 누구나 먹고 싶겠죠. 하지만 돈이 없어요. 그렇다고 들어가서 먹고 나서 사장한테 ‘사장님네 가게가 길거리로 고기 냄새를 풍겨대서 나도 모르게 먹은 거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렇게 대가를 안 치르고 남의 것을 먹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죠. 옷차림 문제도 마찬가지로 봐야 합니다. 친구가 짧은 치마 입은 건 다른 사람보고 만지라고 제안한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죠. 성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자극을 받았을 경우,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는지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라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 남자는 원래 충동적인 동물이다? “원래 이 시기에는 충동적이잖아요.” 가해 학생의 부모들이 잘 하는 말이다. 잘못된 교육이다. 성적 충동이 아무리 강하고, 강한 때라고 해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한 것은 잘못됐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남자는 원래 충동적인 동물이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가 남성의 공격적인 성적 행동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온 탓도 있다. 청소년 성폭력에서도 학생들이 자기보다 어린 친구나 체구가 작은 친구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억제된 분노나 충동 등을 약자한테 표출하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문제적인 행동을 두고 “본능적으로 원래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유도하면 그야말로 잘못된 성 가치관을 기르기 쉽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도움말: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추국화 소장, 한국성폭력상담소
■ 성폭력 가해자는 주로 낯선 사람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자료를 보면 성폭력 가해의 74%는 아는 사람한테서 일어나며, 13%는 가족 안에서 발생한다. 흔히 성폭력은 신문이나 뉴스에서나 볼 법한 특수한 상황 같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장 교사들은 “성폭력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근 들어서 근친 성폭력이 빈번히 일어난다”고 말한다. 편부모 가정인 경우, 의붓아버지와 딸 사이에서 많이 일어나고, 남매나 사촌 사이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특히 또래 남매나 사촌일 경우, 가해자는 “나는 그냥 잠에 취해서 만진 건데…”라고 얼버무리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족이라도 피해자가 성적 모멸감을 느꼈다면 엄연히 성폭력에 해당한다. ■ 끝까지 저항하지 못한 피해자 잘못이다? 흔히 성폭력 피해자의 부모들은 “너도 행동을 조심했어야 한다”고 비난한다. 이런 비난에 자녀는 오히려 심리적으로 더 고립된다. 성폭력 피해자는 “모든 일이 다 내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 같다”고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기 쉽다. 그 과정에서 상처는 배가된다. 성폭력에서 이루어지는 가해행위는 여러 다른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가해자보다 심리적, 물리적, 상황적, 관계적으로 위축돼 있어 저항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끝까지 저항하면 성폭력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또한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의 방어의무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씌우게 되고, 피해자한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그래. 너는 할 만큼 다 했어.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가해자가 나쁜 놈이지. 나머지 일들은 엄마랑 어른들이 다 알아서 할 거야.” 만약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면 이렇게 피해자 학생한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 ■ 짧은 치마 입고 다닌 게 문제다? “계집애가 짧은 치마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 겪는 거죠.” 가해 학생의 부모들은 피해 여학생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실제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관련 체크리스트를 해보라고 하면 “여자의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말에 동그라미를 치는 일이 많다. 이는 피해자가 어떻게 했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다고 책임을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추 소장은 “강의를 할 때 항상 ‘갈비집 이야기’에 비유를 한다”고 설명했다. “길을 가다가 배가 너무 고픈데 갈비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거예요. 그럼 누구나 먹고 싶겠죠. 하지만 돈이 없어요. 그렇다고 들어가서 먹고 나서 사장한테 ‘사장님네 가게가 길거리로 고기 냄새를 풍겨대서 나도 모르게 먹은 거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렇게 대가를 안 치르고 남의 것을 먹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죠. 옷차림 문제도 마찬가지로 봐야 합니다. 친구가 짧은 치마 입은 건 다른 사람보고 만지라고 제안한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죠. 성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자극을 받았을 경우,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는지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라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 남자는 원래 충동적인 동물이다? “원래 이 시기에는 충동적이잖아요.” 가해 학생의 부모들이 잘 하는 말이다. 잘못된 교육이다. 성적 충동이 아무리 강하고, 강한 때라고 해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한 것은 잘못됐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남자는 원래 충동적인 동물이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가 남성의 공격적인 성적 행동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온 탓도 있다. 청소년 성폭력에서도 학생들이 자기보다 어린 친구나 체구가 작은 친구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억제된 분노나 충동 등을 약자한테 표출하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문제적인 행동을 두고 “본능적으로 원래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유도하면 그야말로 잘못된 성 가치관을 기르기 쉽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도움말: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추국화 소장, 한국성폭력상담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