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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일상에 숨어 있는 청소년 성폭력
때리지도 않았는데 성폭력이요?

등록 2011-10-10 10:21수정 2011-10-10 10:22

김영훈 기자 <A href="mailto:kimyh@hani.co.kr">kimyh@hani.co.kr</A>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그냥 장난으로 한 건데…. 때린 것도 아니잖아요.”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신아무개(2년)군은 억울해했다. 신군은 지난 학기 초, 체육복을 갈아입는 동성친구의 뒷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가 교사한테 불려갔다. ‘친구의 어깨 근육이 멋있어 보여서’ 찍어둔 거였다. 하지만 친구는 “기분도 나빴을뿐더러 괜히 어디다 유출할까봐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교사를 찾아왔다.

서울 강동구의 한 고교에 다니는 김아무개(1년)양은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하는 ‘영의정 게임’이 불편하다. 제비뽑기를 해서 전하와 영의정을 뽑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하가 시키는 대로 영의정과 특정한 행동들을 하는 방식이다. “볼에 뽀뽀하는 게 일반적인데요. 1학년 들어와서 친해진 친구그룹이라서 그냥 맞춰가며 지내고 있는데 솔직히 스트레스 많이 받아요. 저번에는 한 친구가 억지로 시켜서 결국 하게 됐는데 제가 뽀뽀하는 걸로 걸린 거예요. 다들 박수치고 웃더라구요. 저 그날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가해자는 별일 아니라고 한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고 기억조차 못하기도 한다. 반면 피해자는 고통스럽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다. 수치스럽고, 우울하다. 괜히 움츠러든다. 이것도 성폭력일까?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피해자가 수치스러움을 느꼈다면 100% 성폭력이다.

학생 간 성폭력 4년간 4배 늘어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이렇게 학생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 성폭력’의 피해가 늘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김춘진 의원(민주당)이 교과부로부터 제출받은 ‘2006년~2011년 6월 연도별·시도별 학생 간 성폭력 현황’을 보면 학생 사이 성폭력 사건이 2006년 38건에서 2010년 166건으로 4년 만에 4.3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추국화 소장은 “전에는 개인적으로 분을 삭이고 넘어가거나 학교에서도 덮어주는 식으로 넘어갔지만 최근에는 가벼운 일상의 성폭력 사례들도 수면 위로 드러나는 분위기”라고 했다.

양상은 다양하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왕따이거나 체구가 작은 학생을 화장실로 끌고 가 성기를 보여달라거나 자위를 해보라고 요구하는 일이 많다. 여학생들은 매체를 잘 활용한다. 스스로 노출한 사진을 찍어 친구들한테 자랑하듯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맞벌이 환경, 음란물 접속 자주 해

학생들 사이에서 성폭력이 늘게 된 배경에는 여전히 음란물이 놓여 있다. 음란물을 접하고, 왜곡된 성 가치관이 생긴 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폭력 가해자가 된다는 스토리다. 성교육 문제에서 입이 아프도록 자주 등장하는 음란물은 날로 다양해진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음란물과 학생들의 거리가 더 좁아졌다. 스마트폰만 있어도 웬만한 섹시화보 등은 다 내려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누구나 음란물에 빠지는 건 아니지만 음란물에 잘 빠질 수밖에 없는 청소년도 있다. 맞벌이 가정의 중학생일 경우, 방과후 혼자 있을 시간이 주어지면 백이면 백 음란물을 만난다. 대구 경덕여고 이화연 보건교사는 “이 시기가 성에 민감할 시기이기도 하고, 마침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아이 입장에서는 컴퓨터를 켜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제 청소년들이 매체를 보는 것뿐 아니라 매체를 제작까지 한다는 것이다. 추국화 소장은 “가정법원에서 하는 아동청소년성폭력가해자 수감명령프로그램을 받는 학생들을 보면 10명 가운데 2~3명이 매체를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근데 음란물은 예전에도 있던 거 아닌가요? 어른들도 야한 비디오나 만화, 외국 잡지를 보면서 컸잖아요. 자랄 때 야한 거 보는 게 뭐 대수라고….” 엄마들은 음란물 노출과 일상의 성폭력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요즘 음란물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입을 모은다. 추 소장은 “요즘 음란물은 성을 ‘왜곡’하도록 잘 짜여 있다”고 했다. “어머님들이 잘 모르시지만 성적 왜곡이 정말 심합니다. 스킨십부터 관계를 맺는 데까지 50분 동안 긴 스토리로 이어지죠. 아마 성인들은 지겨워서라도 못 볼 겁니다. 대부분의 스토리가 ‘여자는 남자와 성관계를 하면 무조건 다 좋아한다’는 쪽으로 흘러가죠. 그런 걸 보면서 아이들은 상대방이 이렇게 하면 다 좋아할 거라고 잘못된 가치관을 심게 되죠.”

성폭력 가해 학생은 공부를 못할 거고, 환경이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것도 오랜 편견이다. 실제 성폭력 문제로 교사한테 불려오는 청소년들 역시 평범하다. 성적 호기심이 강한 때 음란물 등을 접하면서 충동을 왜곡해 풀었고, 그게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불려온 학생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추 소장은 “나는 그냥 장난으로 한 건데 이런 것도 성폭력인지 몰랐다고 하는 일이 정말 많다”고 했다. “실제로 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하면 큰 문제가 없어요. 심리검사 결과지를 갖고 가면 의사가 그러죠. ‘짜식! 음란물 보다가 걸려서 왔구나!’ 성적 호기심이 왕성할 때니까요.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올라갈 때 성에 관심이 많다는 건 건강하다는 거잖아요. 근데 제대로 된 교육이 뒷받침이 안 된 상태에서 음란물만 접하고 그게 다 맞는 것처럼 여기니까 문제죠.”

‘이게 성폭력?’ 몰라서 저지르기도

실제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성폭력의 기준조차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참보건연구회 대표 김애숙 보건교사는 “아이가 특별히 폭력성이 있어서 성폭력을 하는 게 아니고 어떤 게 성폭력인지 정립이 안 돼 있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는 몰랐더라도 내가 한 행위가 상대방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줬으면 성폭력인 거죠. 이때 언어적인 폭력을 행한 경우에는 성희롱, 직접 몸을 만졌을 경우에는 성추행, 힘을 가했을 경우는 성폭행이라고 하는 거구요.”

성폭력과 관련해 깊은 오해도 있다. 구리 토평초 박은정 보건교사는 “여러 편견 가운데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했다. “유아부터 할머니까지 누구나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잖아요. 단순히 상대가 예쁘고 야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닌데 남학생들은 여자들의 행동이나 옷차림, 외모가 문제라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남자 입장에서 성충동은 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 가운데 하나죠.”

가정부터 올바른 성교육 절실해

흔히 성폭력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학교 안 보건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보건교사들은 “보건의 여러 영역 가운데 성교육이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일년 내내 이것만 가르칠 수도 없다”며 “성교육은 학생 한명 한명을 대상으로 개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특수한 영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교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터졌을 때 학교교육의 탓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부모를 보는 것도 안타깝다. 참보건연구회 김애숙 보건교사는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 부모 입장에서는 ‘뭐 그런 거 갖고 그러냐’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부터 성교육이 돼야 하고, 부모님의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된다”고 했다. “성폭력에서 기본은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애가 얼마나 상처를 받겠니?’라고 말하는 것과 그냥 넘어가는 건 다르죠. 사소한 대목에서도 자녀가 상대방 처지를 생각해보도록 말을 건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 소장은 “입시설명회를 하면 아버지, 어머니 다 오시는 경우까지 합쳐서 120%가 참여하지만 성교육을 하면 기껏해야 20명 정도 오신다”며 “진학에 대한 관심만 있지 내 아이, 다른 아이 인생에 걸쳐 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고 했다. “가해자 부모님들은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이렇게 오점을 남겨야 하냐?’고 하시고, 피해자 부모님의 경우는 피해 입은 자녀의 행실 문제로 몰아가시기도 합니다. 부모님부터 성교육을 받으셔야 한다는 걸 말해주는 태도들이죠.”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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