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시험 보겠습니다. 책 넣으세요.” 29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의 한 강의실. 학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교수는 “시험 볼 시점도 아니고 저도 하고 싶지 않은데 학교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어쩔 수 없습니다”라며 시험지를 앞줄에 앉은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수강생들은 한숨을 내쉬며 그제서야 책을 가방 안에 주섬주섬 챙겨 넣는다. 임 아무개 학생이 수업을 마치고 과방에 들어가 시험을 본 이야기를 하니, 한 선배는 “내가 수업 들을 때는 과제 한 번 안 내던 과목인데 안 됐다”라며 임씨를 놀린다.
세종대학교는 지난 21일 학교의 모든 강사들에게 “면학분위기 조성 및 학습의욕 제고를 위해 (수업당) 과제물을 5회 이상 의무적으로 부과하도록 결정했다”는 내용의 교무처장의 명의로 된 전자우편을 보냈다. 전자우편에는 학기가 끝나고 수강생이 하는 수업 평가에 과제 수를 평가하는 항목을 집어넣을 예정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학교는 30일까지 이에 맞춰 수업계획서를 수정해서 제출하라고 덧붙였다. 지난 달 26일 열린 교수연수회에서 부총장이 과제물 부과 건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교수들은 이미 알고 있던 상태였다.
이날 학교에서 만난 행정학과 양대규(25) 학생은 “수업 6개를 듣는 중이라 시험기간과 주말을 빼면 5.4일 당 하나씩 하던 과제를 이제는 2.1일 당 하나씩 하는 꼴이다”라며 계산을 한 종이를 내밀었다. 정 아무개(23) 경영학과 학생은 ‘‘이미 과제가 많아 학생들이 수업 안 듣고 뒤쪽에 앉아 과제하는 상황”이라며 “교수님이 원래 하려던 과제 2개를 쪼개서 갯수만 늘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교수들도 불쾌감을 숨기지 않는 것을 넘어 집단행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동우(61) 회화과 교수는 “학교의 숫자놀음이 불쾌하다”며 “예술 교육은 실기 위주라 과제의 필요성이 적어 과제를 두 번 내준다”면서 과목별 특성을 강조했다. ㅇ 교수는 “한 마디로 교권 침해”라며 “교수협의회에서 반대 성명서를 내자고 이야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단과 학생 간의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학교가 학생들에게 ‘과제 폭탄’을 때리는 이유는 학생들의 반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세종대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주명건 이사 승인, 생협 퇴출, 등록금 인상분 반환 등 굵직한 이슈를 두고 학교와 학생이 대치 중이다. 학생들이 천막투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고, 이날에는 집회를 열고 재단건물까지 행진했다. ㅎ 시간강사는 “재단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수많은 과제물을 부과해서라도 막아보겠다는 심사”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세종대 수업과 관계자는 “학내 분규와 관계없이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한 조치”라며 “학생들이 책임과 부담감을 가지고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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