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육은 멀리 있지 않다. 엄숙했던 도서관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일상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편한 공간으로 꾸려가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사진은 지난 9월17일, 봉원중학교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에 모여 밤새워 책읽기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학생들이 말하는 ‘나쁜 독서교육’은?
요즘 학생들은 “독서마저 나의 적이 됐다”고 말한다. 책읽기를 공부, 성적, 입시와 연관짓기 때문이다. 독서교육은 입시교육이 아니라 평생교육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교사나 학부모가 바라보는 독서교육과 학생이 느낀 독서교육에는 여전히 괴리가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 책읽기를 방해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독서교육은 뭘까?
어려운 책 추천하지 마세요
봉원중학교 독서동아리가 꽃을 피운 것은 도서목록부터 학생들 스스로 뽑아보도록 결정권을 줬기 때문이다. 실제 학생들은 교사나 부모가 추천한 책보다는 스스로 고른 책에 큰 애착을 보인다. 이자림양은 “맨 처음부터 ‘무슨 책 읽어라!’라고 강요하면 아무래도 거부감이 드는데 내가 자료 찾아가며 고른 책을 읽으면 책에 애정도 느껴지고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특히 추천도서 가운데에는 아이들 수준에 안 맞는 어려운 책도 있다. 또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학생들한테는 어른들이 추천한 책은 모두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유보경양은 “무조건 책을 읽으라고 하면서 고등학교에 가면 읽는 어려운 고전을 추천해주시는 경우가 많다”며 “논술학원 다니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학생한테도 ‘장자’를 다룬 책 등을 읽으라고 하는 일도 있더라”고 했다. 물론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을 적절한 선에서 추천해주는 것이 약이 되기도 한다. 추천을 할 때는 아이의 수준, 관심 등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유양은 “백화현 선생님의 경우 책 읽는 습관이 안 된 친구들한테는 동화책을 권해주시는데 처음에는 코웃음을 치다가도 읽다 보면 그 재미에 빠져들더라”고 했다.
흔히 어른들은 고전이라 불리는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게 독서교육의 첫단추라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학생들은 “책과 친해지도록 환경조성을 해주는 게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이자림양은 “우리 학교 도서관의 경우는 책만 많고 조용한 곳이 아니라 수다도 떨 수 있는 시끌벅적한 공간”이라며 “자유롭게 놀고, 책도 보고, 각종 전시도 구경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책에도 부담 없이 손을 뻗게 된다”고 했다.
“얼마나 읽었냐?”로 평가 마세요
독서왕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로 판가름이 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많이 읽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평생독서의 토대를 닦아야 하는 학창시절에는 책의 양보다 중요한 게 책 한 권을 얼마나 잘 읽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나 교사들은 학생이 읽은 책의 양 그리고 얼마나 맥락성 있는 독서를 했느냐 등의 형식에 얽매인다.
신창우군은 “무조건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독서교육은 싫다”며 “속독해서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에 안 남을 바에는 한 권을 두세 번 읽고 그 책만이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게 나은 것 같다”고 했다. 독서교육에서 책을 천천히 맛보고 곱씹을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보경양은 “독서가 중요하다는 얘기들이 워낙 많이 나오면서 논술, 토론에 이어 속독학원도 많이 생긴다”며 “부모님들께서 학원비 들일 돈으로 간식을 사주고, 친구들끼리 모일 여유를 주면서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토론하도록 도와주시는 게 성적을 올리는 더 빠른 길인 것 같다”고 했다.
평가 위주의 틀에 박힌 독후활동 싫어요
책을 읽은 뒤에는 글로 독후감을 남긴다. 아주 고전적인 방식의 독후활동이다. 학생들은 “왜 글로만 감상을 남겨야 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등을 실시하면서 학부모나 교사들은 여전히 학생이 읽은 것을 글로 얼마나 제대로 정리했는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이자림양은 “책을 읽으면 꼭 글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것만도 좋다”고 했다. “그 뒤에는 그림도 그리고, 신문도 제작하고, 책갈피를 만드는 활동도 해볼 수 있어요. 독후감 쓰기만이 독후활동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한테만 “읽어라” 강요 마세요
흔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교육에서는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한다. 이는 중·고등학생들한테도 똑같이 적용된다.
전상호군은 “보통 독서교육을 할 때 어른들은 책을 읽으라고 강요만 하지 정작 읽는 모습을 보여주시진 않는다”며 “아마 어른들이 책을 읽고 계신 모습을 보면 아이들도 저절로 독서 습관을 들이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실제 봉원중 독서동아리 학생들의 자발성을 끌어내 준 데는 학부모, 교사들의 독서모임도 큰 구실을 했다. 이 학교에는 혜윰나래학부모독서모임, 시나브로학부모독서모임 등 학부모 독서모임과 함께 교사독서모임도 있다. 혜윰나래학부모독서모임의 회장 호경환씨는 “나를 비롯해 자녀가 봉원중을 졸업한 경우에도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엄마가 책 읽는 걸 보면서 ‘어? 나한테만 보라는 게 아니고 우리 엄마도 책을 읽네!’ 소리를 하는 아이도 있다더군요. 아이들한테 모범이 된다는 점도 있지만 엄마가 아닌 개인으로 봤을 때도 의미가 큽니다. 모임을 통해 책으로 소통할 수 있는 평생친구를 사귀게 됐거든요.”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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