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책을 평생의 친구로 삼으려면 책 읽는 시간뿐 아니라 책과 함께 놀고 수다떠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은 올 여름방학 때 중대부중 도서관에서 열린 독서캠프에서 학생들이 책 높이 쌓기 활동을 하는 모습. 주상태 교사 제공
성장소설이 좋은 이유
나와 닮은꼴 만나 든든한 힘 얻어
성적·외모·진로…소재도 풍부해져
과한 독후감보다 수다로 감상나눠
나와 닮은꼴 만나 든든한 힘 얻어
성적·외모·진로…소재도 풍부해져
과한 독후감보다 수다로 감상나눠
“책이 보약이다!” 성장통을 겪는 청소년들한테 흔히 하는 얘기다. 성장기에 접한 보약 같은 책들은 어느 시기에 읽은 책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특히, 성장소설은 마음에 큰 울림을 가져다준다.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요즘 청소년들 곁에는 이런 고전적인 성장소설에 더해 현실맥락적인 성장소설이 놓여 있다. 2008년, <완득이>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뒤 성장소설이 다루는 세상은 정말 다양해졌다. 실제 청소년들은 어떤 성장소설을 읽으며 십대의 고민을 해결할까? 성장소설을 소개할 때 어른들한테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여중생들(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이하 ‘중대부중’) 2년 심재민, 장선하양)과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의 주상태 교사가 학교도서관에 모여 성장소설에 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기억에 남는 성장소설요? <난 죽지 않을테야>라는 책이 있어요. <당나귀 귀>, <이별처럼>과 함께 세르주 페레즈 작가의 3부작 가운데 한 권이죠. 주인공 레이몽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학습능력이 부족하고 행동이 굼뜨다는 이유로 늘 무시당하고 욕을 먹어요. 슬픈 이야기죠. 아버지마저 시키는 일을 재빨리 하지 않으면 매질을 하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 흘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를 울렸으니 아이들한테도 분명히 감동적일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소개를 했죠.”
중대부중 주상태 국어교사는 수업 시간에 종종 아이들과 책을 읽는다. 그림책, 소설, 과학책 등 분야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소개하는 책 가운데에는 아이들이 공감할 만한 성장스토리가 많다. 책읽기마저 대학입시와 연관짓는 때 성장스토리는 아이들 삶에 숨통을 틔워준다.
함께 읽을 책을 정할 때는 심혈을 기울인다. 중학생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인가를 곰곰 생각해보고, 판단한다. 세르주 페레즈 작가의 책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무엇보다 제 마음이 움직여야 다른 사람 마음도 움직이겠죠. 가능하면 제가 중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 감각으로 읽어봅니다. 제가 워낙 감상적이라 아이들처럼 이야기를 잘 흡수하거든요. 그런 성격 덕에 성장소설에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웃음)”
어른도, 아이도 성장 코드가 담긴 소설을 읽으며 생각이 자라고,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을 한다. 이 경험들은 성장,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머리와 가슴을 살찌운다. ‘청소년’과 ‘성장소설’이 만났을 때 효과는 배가된다. 주 교사는 “청소년기가 상처도 크게 받아들일 정도로 여리고, 격동기고, 흡수가 빠른 때여서 그럴 것”이라고 했다. “특히 성장소설 속 주인공들은 역경 속에서도 잘 살아남잖아요. 혹 죽더라도 의미 있는 죽음인 경우가 많죠. 청소년기는 그런 의미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죠.”
성장소설을 찾는 요즘 청소년들의 고민은 뭘까? 장선하양은 “인터뷰 오기 전에 친구들한테 문자로 ‘요즘 고민이 뭐냐?’고 물어봤다”며 친구들 이야기를 소개했다. “성적, 외모에 대한 고민이 많더라구요. 제 경우에는 친구와의 관계도 고민이었어요. 한창 중2병 돋았을 때 ‘내가 이 무리에서 사라지면 다들 잘 지낼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지냈어요.(웃음)”
최근 몇 년 동안 청소년들 곁에 다가온 성장소설 속 주인공들은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 과거 성장소설 속 친구가 ‘데미안’ 같은 철학자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현실감 있는 주인공이나 이야기가 나올 때 성장소설의 구실은 더 커진다. 일상 속 생각의 전환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장양이 말한 ‘외모 고민’은 이미 성장소설 영역으로 들어왔다. 주 교사는 “몇 년 사이 외모와 관련한 성장소설이 참 많아졌다”고 했다. “<뚱보가 세상을 지배한다>, <빅마우스 앤드 어글리걸> 등은 외모가 예쁘지 않아도 정말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책 아니었니?” 주 교사의 말에 심재민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솔직히 책 읽고 제 콤플렉스가 사라진 건 아니구요.(웃음) <빅마우스 앤드 어글리걸> 보면서 다른 사람을 보는 시각은 달라진 것 같아요.”
청소년들은 일상적인 상황들을 다룬 성장소설을 읽으며 소설 속에 나를 대입해보기도 한다. 심양은 “<수호천사 이야기>의 주인공을 보며 공감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일제고사 성적이 잘 안 나와서 부모님과 갈등하는 이야기였어요. 저도 중학교 들어와서 엄마와 성적으로 다퉜던 경험이 있거든요. 그래서 더 공감이 갔죠. 성장소설 읽을 때 필요한 독서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주인공 대신 저를 집어넣고 상상하게 되더라구요. 내 얘기처럼 읽힌다는 재미가 있어요.”
내 사연 같고, 내 친구의 이야기 같다는 성장소설이 많이 나오는 때 더 중요해지는 건 책을 권하는 어른들의 태도다. 주 교사는 “여전히 어른들은 성장소설 역시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 가운데 자꾸 학습적인 요소, 교훈적인 이야기, 틀에 박힌 스토리 등을 좋은 소설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무조건 가르치려 드는 걸 힘들어합니다. 특히 성장소설처럼 감성을 살찌우는 책마저 그런 이야기를 담는다면 책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성장소설이 청소년들 삶에 살과 뼈가 되려면 이 분야의 독서만이라도 ‘독서교육’에 물들지 않은 청정구역으로 남겨두는 노력도 필요하다. 실제로 두 여중생은 “수행평가 때 많이 하는 글쓰기 위주의 독후활동은 정말 하기 싫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심양은 “정말 쓰고 싶을 때 한두편 쓰는 게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장양은 “그림이나 편지 등 독후활동을 할 때 표현 방식에 제한이 없으면 좋다”고 했다. “얼마 전에 학교도서관에서 1박2일 동안 독서캠프를 했거든요. 프로그램 가운데 숨 안 쉬고 책 높이 쌓기 등의 활동이 있었어요. 정말 재미있었죠. 책을 읽고 나면 늘 글자수가 정해져 있는 글쓰기를 하잖아요. 책을 읽고 제 마음대로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홀로 방에 틀어박혀 성장소설만 줄곧 읽어대는 것도 좋은 독서는 아니다. 주 교사는 “책을 혼자 읽게 놔두는 것은 아예 안 읽은 것과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섬에 고립돼 책을 읽게 하는 건 좋지 않다”고 했다. “부모나 교사, 친구들이 적절한 선에서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게 좋죠. 그러려면 책을 너무 어렵고 부담스러운 걸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책을 갖고 노는 것, 수다 떠는 용도로 여겼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독서’는 ‘지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너무 깊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책을 너무 딱딱하게 여기죠. 성장소설마저도 읽고 나서 반드시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강박들이 있어요.”
부담 없이 읽는 성장소설은 대부분 보약이다. 하지만 ‘좋은 성장소설’도 있지만 ‘나쁜 성장소설’도 있다. 교훈적인 답을 맥락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시하는 책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주 교사는 “어떤 답을 뚝 던져주는 것보다는 어떤 선택이나 태도가 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정말 상세하게 쫓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이야기가 좋은 것 같다”며 “의미 있는 책을 골라내려면 어른들부터 청소년들이 왜 성장소설을 좋아하는지, 왜 성장소설이 재미있는지, 어떤 내용들을 담는지 관심 있게 봐주셔야 한다”고 했다. “그냥 유명한 책이니까 한 권 사주고 마는 게 아니라 부모님도 읽어보시고 마음의 움직임이 있는지, 소설 속 아이들이 왜 고민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독서를 평생교육이라고 하는데 친구처럼 잘 사귄 성장소설 한 권이 평생을 살아가고 이겨낼 힘을 줄 수도 있죠.”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성장소설을 즐겨 읽는 청소년들과 교사는 “단순 교훈을 주는 이야기보다는 주인공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교육적으로도 가치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주상태 교사, 장선하양, 심재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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