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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우승자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등록 2011-05-02 12:15

미국에서 열린 디베이트 대회 직전 심판들이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다. 대회 공정성 확보를 위해 심판 교육은 필수다.  투게더 디베이트 클럽 제공
미국에서 열린 디베이트 대회 직전 심판들이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다. 대회 공정성 확보를 위해 심판 교육은 필수다. 투게더 디베이트 클럽 제공
[디베이트] 17. 디베이트 승부, 이렇게 가린다
채점기준과 원칙이 구체적인 채점표 만들어야
승부는 개인별로 가리는 것보다 팀별로 가려야
김연아 선수의 활약으로 피겨스케이팅은 국민 스포츠가 되었다. 피겨스케이팅은 (1) 스케이팅 기술 (2) 동작 사이의 연결 (3) 연기력 (4) 안무 (5) 곡의 해석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점수를 매겨 그 합산 점수로 승부를 가린다. 그렇다면 디베이트는 어떻게 점수를 매겨서 승부를 가릴까?

디베이트 점수를 매기는 일은 영어로 ‘저징’(Judging)이라고 하고, 이를 맡은 심판을 ‘저지’(Judge)라고 한다. 당연히 심판은 디베이트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해서 디베이트 코치나 디베이트를 오랫동안 경험해본 사람들이 맡게 된다. 간단한 대회나 낮은 단계의 대회에서는 심판 한 사람이 디베이트를 관장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대회에서는 여러 심판이 점수를 매긴다. 여러 심판이 참석할 때는 심판을 홀수로 한다. 짝수로 할 경우 동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요한 대회일수록 좀더 경험 있고 훈련된 심판이 배치된다.

모든 스포츠에서 판정 시비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디베이트 대회도 판정 시비가 일 가능성이 있다. 축구나 야구는 점수를 내는 것이 명확하지만, 디베이트는 심판의 판정을 전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디베이트가 끝난 뒤 결과에 불만을 품는 학생, 학부모, 코치 등의 불평이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남가주에서 디베이트를 확산시킬 때 초기에는 싸우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디베이트를 하는 이유가 서로의 의견을 정확히 들어보고, 설득력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인데, 정작 부모나 코치가 이 결과를 두고 싸운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디베이트 대회를 여는 것이 우승자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기량을 견주어보는 과정에서 동기부여와 격려를 받고, 더 나은 디베이터가 되기 위해 자극을 받으려는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대회에서 이긴다면 좋은 일이지만, 이것 자체가 궁극적 목표가 되면 대회를 여는 의미가 사라진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남가주에서 디베이트 대회를 열 때 사전에 대회를 여는 의미에 대해 누누이 강조하곤 했다. 그리고 대회 집행부와 심판의 판정에 절대 복종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하게 했다. 절대로 디베이트 현장에서 학생끼리, 학부모끼리, 코치들끼리 논란을 벌이는 일은 없도록 했다.

물론 이와 더불어 좀더 공정한 심판을 위한 노력을 했다.

하나는 채점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채점표를 가급적 자세하게 만들었고, 또 심판들에게는 이 채점표를 작성하는 요령을 워크숍을 통해 알려줬다. 채점표와는 별도로 구체적인 채점기준까지 상세히 문서로 작성해 전달했다.

다른 하나는 디베이트에 경험 있는 사람들을 심판진으로 구성했다. 디베이트 대회를 열 때 별도의 심판 수당 예산을 책정해서 능력 있는 심판들이 오도록 했다. 약속을 해놓고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한두명 정도 ‘예비 심판진’을 구성해두기도 했다.

디베이트 경시대회에서는 심판이 승패 판정을 한다. 이때 심판은 자의적으로 승패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채점표에 들어 있는 내용을 기준으로 심사를 해서 총점을 비교한 뒤 승패를 가린다. 이때 채점표를 영어로 ‘디베이트 밸럿’(Debate Ballot)이라고 한다.


채점표는 경시대회를 주최하는 쪽에서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개 비슷한데, 주로 태도(Attitude), 준비성(Preparation), 비판적 분석(Critical Analysis), 연설(Speech), 팀워크(Team Work)별로 점수를 준 뒤, 이를 합산한다. 어떤 경우는 분석(Analysis), 증거제시(Evidence), 추론(Reasoning), 논쟁(Cross Fire), 반박(Rebuttal), 전달(Delivery) 등으로 비판적 분석과 연설을 강조하기도 한다. 거꾸로,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 엄수, 복장, 상대방 눈 쳐다보기, 협력 등 태도와 팀워크 부분을 좀더 상세하게 점수를 매기기도 한다. 채점표를 살펴보면, 거꾸로 디베이트의 목적을 추정할 수 있다.

채점표는 대회를 조직하는 곳에서 임의로 만들 수 있다. 다만, 우선 기존의 경험치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미국의 대표적인 디베이트 조직인 엔에프엘(NFL: National Forensic League)에서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 때 쓰는 채점표는 팀별로, 참가자별로 심판의 평가에 따른 점수를 기입하게 돼 있다. 심판별로 점수를 매기는 기준이 다른 것을 막기 위해 기준에 따른 점수대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합산해서 팀별 승자를 가린다. 그 밑에는 참가자들에 대한 심판의 코멘트를 적는 칸이 있다. 그리고 그 밑에 왜 이렇게 판단했는지 내용을 적도록 돼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채점표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디베이트를 처음 배워나가는 학생들에게 채점을 통해 가르치는 것이 적다. 해서 나는 별도로 채점표를 만들었다. 구체적으로는 채점표를 통해 학생들에게 태도와 팀워크를 강조했다. 아직은 디베이트를 배우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어 디베이트 형식, 디베이트 내용, 스피치에 대한 점수를 물었다. 코치에 따라 점수를 주는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기준을 세분화해서 코치별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디베이트 대회에서는 이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따로 ‘디베이트 채점 지시문’(Debate Judging Rubric)을 만들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쓰는 디베이트 채점표는 실제 디베이트 대회에서의 채점표와 조금 다르다. 실제 대회에서는 태도나 팀워크의 비중이 낮아질 것이다. 디베이트 내용 부분은 더욱 세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디베이트를 배워나가는 교육 과정에서는 태도나 팀워크, 디베이트 형식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디베이트의 승부는 팀별로 가린다는 점이다. 이렇게 팀별로 승부를 가리는 것은 개개인의 우수성보다 팀의 우수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디베이트를 통해 팀워크 훈련을 추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디베이트 경시대회 현장에서는 개인별로 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도 더 중요한 상은 팀별로 나눈 상이 된다.

이제 심판을 보는 디베이트 심판에 대해 알아보자.

원래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의 심판은 일반인을 상정하고 있다. 퍼블릭 디베이트 자체가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을 상대로 자신이 맡은 편을 논리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해서 미국에서는 누구나 심판을 맡을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디베이트 경시대회를 해보니 문제가 많았다. 한번은 미국인 부동산업자가 심판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논리 정연하게 말하다니 놀랍다”며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점수를 줬다. 그 부동산업자의 마음은 이해한다. 격려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제대로 된 디베이트 기량 비교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학부모들이 반발했다. “저런 비전문가가 내린 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디베이트 심판은 디베이트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했다. 그 정도가 아니다. 두시간 미리 오게 해서 우리가 디베이트를 하는 목표와 채점 기준에 대한 교육을 했다.

심판이 되면 우선 일찍 디베이트 현장에 나타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현장에 도착하면 먼저 본부석에 가서 출석을 확인하고, 이어 관련 자료를 받는다. 오늘 디베이트 주제가 무엇인지, 몇번의 라운드를 거쳐 승부를 가리는지 살펴본다. 이어 채점표의 설명서를 숙독해서 채점 기준을 정확히 이해해둔다. 초시계도 필수로 지참한다.

디베이트가 시작되면 우선 깍듯한 태도로 디베이트를 진행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금물이다. 공정한 입장에서 두 팀의 디베이트 기량을 비교해야 한다. 디베이트에서 먼저 발언하는 팀은 채점표에서도, 그리고 좌석에서도 왼쪽에 자리한다. 그래야 채점표 작성이 수월하며, 팀을 헷갈려 채점표를 작성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디베이트를 진행할 때는 미리 정해진 순서와 시간을 정확히 지켜줘야 한다. 이 부분에서 혼동이 일어나면 디베이트가 엉망이 된다. 따라서 디베이트 진행 순서 역시 옆에 두고 심사에 임하는 것이 좋다. 당연히 심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매주 하는 디베이트에서는 현실적으로 별도의 심판을 부를 수가 없다. 디베이트 코치가 심판 구실도 해야 한다. 이럴 때는 꼭 승부를 가린다는 생각보다는 전반적인 강평을 위주로 하는 것도 좋겠다.

케빈 리 디베이트 교육 전문가,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디베이트 과정 강사, 투게더 디베이트클럽 대표.

Help@TogetherDebate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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