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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점수↑ 흥미↓수학교육의 딜레마

등록 2011-05-02 11:06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에 대비한 문제풀이식 수업이 수학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한 고등학생이 수리영역을 풀고 있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에 대비한 문제풀이식 수업이 수학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한 고등학생이 수리영역을 풀고 있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입시대비 문제풀이에 열중 수학적 사고력 기를 수 없어
수학 개념과 계산 원리는 다양한 ‘놀이와 활동’으로
우리나라 학생들이 모든 과목 가운데 가장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이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도 수학 과목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다. 수학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매년 핀란드, 홍콩 등과 함께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수학 흥미도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수학은 영어와 함께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가는 과목이기도 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2010년 사교육비 실태조사’를 보면 수학 사교육 참여율은 53.6%로 영어(52.5%)보다 더 높았다. 학생들이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고 수학을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수학교육의 문제점과 함께 짚어본다.

일산 저동고에 다니는 김지희(16)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수학 사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나오던 수학 점수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엄마도 충격이었어요. 최악의 점수를 받았거든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수학은 집에서 엄마와 공부했어요. 그러다가 그 일을 계기로 학원에 보내기로 결심하셨죠.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한 것 같아요. 그래서 흥미도 별로 없었고요. 학원도 시험 보고 가까스로 들어갔죠.” 학원에 다니면서 수학 점수는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예전과 반대로 친구들이 어려운 문제를 물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산더미 같은 숙제에 스파르타식 교육은 수학을 더 질리게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학원을 그만뒀죠. 이미 학원에서 중학교 2학년 수학까지 선행을 했거든요. 1학년 때는 90점대 점수가 나오다가 2학년부터는 점점 성적이 떨어졌어요. 초등학교 때 중학교 2학년 수학을 배우는 게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려운 내용을 갑자기 많이 배우다 보니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요. 수학은 ‘재미없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됐죠.”

아이들이 바둑알을 활용해 수 개념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아이들이 바둑알을 활용해 수 개념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은 많아도 좋아하는 학생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수학을 못하면 대학입시 경쟁에서도 뒤처지고 ‘학습부진아’로 낙인찍힌다. 어릴 적 연산을 못한 경험은 수학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이어진다. 자신감을 잃은 아이들은 쉽게 ‘수학 포기자’(수포자)가 된다. 고등학교 때 문·이과를 선택하는 기준도 수학이다. 수학은 한 사람의 직업까지도 바꿀 수 있을 만큼 비중이 높다. 이 때문에 수학 사교육은 영어와 마찬가지로 일찍 시작된다. 그리고 가장 늦게까지 사교육에 의존한다. 서울 수유중 천태선 수학교사는 “수학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일찍부터 서두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 세대도 수학을 싫어했지만 수학의 중요성이 큰 만큼 아이들은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못했어도 늦은 게 아닌데, 아이들은 이미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은 상태입니다. ‘어려운 수학은 나한테 맞지 않아’ 이런 식으로 수학에 대한 벽을 쌓고 있는 것이죠.”

지필고사 형식의 평가도 문제다. 수능시험을 비롯한 모든 시험에서 점수가 뭣보다 중요하다 보니 학교에서도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논리력과 사고력을 키워주는 제대로 된 수학교육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학생들도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 모른 채 수학에 매달리고 있다. 서울 경복고 최수일 수학교사는 “수학적 사고력이 아닌 수학이라는 학문을 가르치는 게 지금의 교육”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현재의 입시위주 교육환경에선 학교도 수능 문제에만 충실해서 가르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원리를 모르고 공식만 암기해서 푸는 공부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능에서도 고난도 문제는 깊은 사고력을 필요로 합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보니 수학을 어려워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실생활에 별 쓸모도 없는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나타내기도 하죠. 수학 자체의 지식은 쓸모없을 수 있어도 수학적 사고력은 학생들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수학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인데, 지금은 거꾸로 된 것 같습니다.” 수학적 사고력을 가르쳐서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입시에 대비한 문제풀이에 골몰하고 있다.

수준별 수업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많은 학교들이 영어와 수학은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맞춤형 교육’을 통해 수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유에서다. 수준별 수업이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에겐 자신감을 북돋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하급반’에 배치된 학생들에겐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좌절감을 심어줄 수 있다. 학생들을 수학점수에 따라 등급 매기는 것도 교육적이지 않다. 천태선 교사는 “수준별 수업이 하급반 학생들을 더 위축시켜 수학과 담을 쌓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초등학생이 배우는 교과서가 너무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일찍부터 수학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려 사교육을 부추기고 열등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 견줘 우리의 수학교과서가 내용도 많고 수준도 높다는 지적은 여러번 제기됐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한국은 늘 1, 2등을 다툴 정도로 수학 실력이 좋다. 그만큼 어려운 수학학습을 일찍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다. 실제 초등학교 수학교과서를 보면 어른들도 풀기 힘든 문제들이 실려 있다. 기본 학습도 안 된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키워준다며 어려운 질문을 하고 답변을 요구한다.

서울 도봉초등학교 조성실 교사는 “초등학교 때는 높은 점수보다 수학 공부에 대한 즐거움, 수학적 사고력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맞춰 나온 초등학교 수학교과서를 보면 아이들이 왜 수학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됩니다. 아이들 발달 수준과는 맞지 않는 수학 문제들이 수두룩하거든요. 예전에는 3학년 때 ‘분수’를 배웠는데 새로운 교과서에는 2학년 때 분수를 배우게 되어 있어요. 발달과정상 1, 2학년은 아직 나와 너, 세상과 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단계라 1에서 분리되는 분수 개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죠. ‘왜 21÷3=7인지 세 가지 방법으로 설명하시오’라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도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3학년 교과서에 창의성을 키운다며 실려 있는 거죠.” 의미 없는 계산 연습은 수학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갖게 한다. 하지만 발달과정을 넘어선 수학문제도 아이들을 수학과 멀어지게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수학 개념이나 계산 원리를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연세는 일흔여섯이지’ 같은 살아 있는 대화를 통해 숫자를 익히는 것도 한 방법이다. “1학년 때 1에서 100까지를 배우게 됩니다. 일상적인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아이들은 학습지를 통해 숫자를 익히게 되죠. 100을 직접 세어보기가 힘들면 바둑알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다양한 놀이나 활동을 하면서 수학 개념을 익히는 게 더 효과적이죠.” 조성실 교사는 숫자를 단순히 아는 것과 숫자가 생긴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는 것에서 수학적 사고력의 차이가 생긴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지필고사 형식의 문제는 피해야 하고 3, 4학년 때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면서 복습 위주로 공부하는 게 좋다.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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