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경기도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모임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혀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루는 위인전은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희노애락 등 인간이 겪는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고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역할모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거나 너무 많다. 정확하게 말하면 꿈을 꿀 시간이 없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야하고, 매일 해야 할 공부와 숙제가 산더미다보니 정작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겨를이 없다. 친구를 위한 우정 쌓기나 남을 위한 양보나 배려 등에 넉넉함이 없어 보이고, 어느 순간엔 폭력에도 멈칫함이 없다. 아이들이 단순하게 생각하고 즉석에서 판단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해 가는 모습에서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꿈은 힘들 때 그 사람을 이끌어 주는 힘이고 인생의 주인이 되어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수학 문제 풀이’,‘영어 단어’ 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꿈을 갖고 실천하기 위한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책으로 치유하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아이들에게“왜 그렇게 바쁘게 생활하고 있니?” 라고 물어보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럼 위인전을 읽으면 되겠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여유가 없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멘토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 누구나 좋아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으로 된 위인전을 먼저 골라봤다. 만화책은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너무도 즐겁게 읽다보니 오히려 근심어린 시선으로 염려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그러나 형식은 내용의 진실성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중에 나온 많은 책들 중에 아이들에게 멘토가 될 만한 책, 위인전 중에서도 특히 동시대에 살면서 현실감을 느낄 수 있고, 존경의 마음으로 꿈을 키울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을 선정하고 아이들에게 권했다.
전통적으로 위인의 기준은 특히 인격, 품격, 인성, 정신력, 애국심을 배울 만한 분이었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위인이란 자기의 개성이나 취미가 같은 사람이다. 어느 조사에서도 발표됐지만 초등학생들의 꿈은 축구선수가 가장 많고 존경하는 인물도 박지성이라는 답이 나왔다. 또 가수가 되고 싶은 아이는 가수 윤도현을, 법조인은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이라는 현실적인 답변을 했다. 즉, 현재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보면서 감명받고, 그 사람과 함께 꿈을 키워간다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위인 기준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초등학생 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알게 하고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면, 아이는 적성에 맞은 꿈을 찾아 목표를 향해 여유를 갖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초등학생이라면 특히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른인 우리가 관심을 갖고 행동으로 옮겨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한 진정한 멘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가 꿈을 키워갈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진,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근한 사람의 내용이 담긴 위인전을 골라주는 건 어떨까.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위인전’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줬으면 한다.
김임숙 경기도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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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 어떻게 읽을까
인물의 삶 우상화해선 안 돼
다양한 저자의 책 보길 시련 극복 과정이 중요 장단점 모두 살펴봐야
위인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학교 현장의 진로교육이 강화되면서 부모도 일찍부터 아이의 적성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한동안 가라앉았던 위인전 출판시장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안지영(31)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위해 위인전을 구입했다. 아이가 우연히 ‘찰스 다윈’ 위인전을 본 뒤 과학 분야에 호기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위인전’ 하면 안중근이나 신사임당을 떠올리기 쉬운데요. 최근에 나온 위인전은 동시대의 인물을 다루고 있어 현실적인 역할모델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생생한 그림과 만화가 삽입돼 있어 초등학생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죠. 어떤 직업을 갖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요즘 위인전은 인물의 일대기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다는 식의 일방적인 우상화도 하지 않는다. 왕이나 나라를 구한 영웅 대신 김연아 선수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이 등장하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수원에 사는 이수인(34)씨도 아이와 함께 위인전을 읽으며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 “예전에 위인전은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이 많아서 재미가 없었죠. 인물을 너무 영웅화해서 친근함을 느낄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나 디자이너 ‘코코 샤넬’ 위인전을 보면 그들도 역경을 딛고 일어선 걸 알 수 있어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죠.”
이렇게 위인전의 주인공이 다양해지면서 ‘위인전’ 대신 ‘인물 이야기’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아졌다. ‘위대한 인물’이라는 좁은 개념에 갖혀서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물 학습만화 〈Who?〉 시리즈를 쓴 안형모 작가는 “삶을 바라보는 가치가 변하면서 위인전도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신에서 영웅으로 그리고 동시대의 인물로 사람들이 존경하는 대상이 점차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인물은 아직 평가가 끝나지 않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안형모 작가는 “맹목적으로 위인들의 삶을 영웅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물의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지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읽는 책이 바로 네 미래다>를 쓴 임성미씨는 한 인물에 대해 다양한 책을 읽어보길 권했다. “저자의 관점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도 책마다 차이가 나더라고요. 인물의 일생에서 어떤 걸 다루냐에 따라 읽는 사람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죠.” 임성미씨는 어느 정도 가치관이 형성되는 초등학교 5학년 이후가 위인전을 읽기에 적당한 시기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역사’ 과목을 배우게 되죠. 이 시기가 되면 위인전을 읽을 때 역사적인 배경도 살펴봐야 합니다. 또 인물의 장점과 함께 다른 면도 생각할 수 있게끔 옆에서 조언을 해줘야 해요. 무엇보다 인물이 성공하기까지 어떤 시련을 극복했는지 생각해 본 다음 자신의 삶과 연결짓는 게 중요합니다.”
위인전을 무조건 전집 형태로 구입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자칫 책장에만 꽂아두는 장식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처음에는 아이가 관심있는 인물부터 하나씩 골라줘야 한다. 책을 읽은 뒤에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인물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다. 너무 어린 나이에 위인전을 읽으면 인물의 가치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왜 이 인물이 중요하고 어떤 사회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를 부모가 먼저 설명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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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숙 선생님이 추천하는 ‘위인전’ 시리즈
□ 세계인물 학습만화 〈Who?〉 시리즈/다산어린이
스티브 잡스, 워렌 버핏, 오프라 윈프리, 버락 오바마, 조앤 롤링, 스티븐 호킹 등 생존 인물이 대거 등장한다. 정치인, 과학자, 경제인, 문화예술인, 인권환경 운동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아우르는 인물을 선정했다. 옛날 위인전과는 달리 인물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내용의 반 이상이다. 아이들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고민을 담고 있다. 무조건 훌륭한 인물로 포장하기 보단 실패와 좌절을 극복의 순간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또 다른 특징은 일반 위인전과 달리 복합적인 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인물 백과’코너에선 인물에 대한 배경 지식과 시사 상식, 교과서 지식까지 다방면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독후 활동 코너에선 사회, 과학, 논술에 이르는 통합 교과 학습이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미국 초등학교 교재로 채택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우리 인물 이야기>/우리교육
장기려, 공옥진, 원병오, 유일한, 김순권, 리영희 등 우리나라 인물만을 다룬 시리즈이다. 평생을 한 가지 분야와 뜻에 매달려 온 우리 시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라는 설명으로 기존의 위인전과 차별화한다. 인물의 어린 시절 삶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아이들로 하여금 ‘아, 나도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우리와 가까이 살았던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담았기에 자연스레 핵가족이 된 시대에 세대 간 소통의 디딤돌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다루고 있어 특정 분야에만 관심을 두게 하지 않고 풍부한 간접 체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비교적 최근 인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대사와 우리의 지난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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