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네이스 논쟁’ 뒤 개혁의지 꺾여…아래서 위까지 진보 많아야 성공”

등록 2010-11-15 08:57

이정우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자신감 없는 패배주의로
‘공동학위제’ ‘5등급제’ 등
괜찮은 제도 시도도 못해
자신이 4년 가까이 몸담았던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적으로 회고하는 것이 일종의 자기부정에 가까워서였을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사진)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몇 번이나 말을 머뭇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에 정권을 잡을 민주·진보세력이 적어도 교육정책에서만은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는 의지를 답변에 꾹꾹 눌러 담았다.

한국 교육의 본질적 문제는 무엇인가?

“기업에서 학벌 위주로 뽑는데다, 패자부활전이 없다. 대학 졸업 때 좋은 직장 못 가면 평생 못 간다. 그게 학교의 입시 위주 공부 환경을 만들고, 근시안적 인간을 만든다. 일류대학의 이기주의도 학생들을 고통으로 몰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교육 문제나 학생들의 건강과 장래에 대해 관심이 없다. 똑똑하고 돈 많은 집 학생들을 뽑겠다는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방조하고 조장한다. 대학, 기업, 정부 3자의 공동 작품이 한국의 입시지옥이다.”

참여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려 했나?

“대통령 직속의 교육혁신위원회를 통해서, 학생들의 교육내용 전반을 기록한 교육이력철과 수능등급제 도입으로 입시 문제를 개혁하려 했다. 저는 학생들을 20%씩 나누는 5등급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그렇게 하면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하면서, 9등급제로 하고 1등급 비율은 4%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리 공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격론이 벌어졌고, 회의 참석자 가운데 사표를 써 들고 와 반대하는 분도 있었다. 결국 대통령이 교육 관료의 손을 들어줬다.”

좀더 진보적이고 강력한 조처를 내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

“교육이력철을 하기 위해 수능등급제를 하려 했던 건데, 등급제에서 교육부가 판정승을 거두고 곧 혁신위를 이끌던 김민남 전문위원이 사임했다. 그분이 쓴 글과 강의록 몇 마디를 가져와서, 보수언론과 교육부가 억울한 모함을 많이 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논란으로 개혁적이던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그만두고, 김 위원도 나가면서, 헤게모니가 교육부로 넘어갔다. 교육이력철은 꺼내지도 못했고, 이후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이 보수화했다.”

교육부와 청와대 참모진이 교육을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 아닌가?


“엘리트주의라기보다는, 수능등급제를 지나친 평등주의로 보고, 보수 진영이나 시민들의 강한 반발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참여정부가 진보개혁이라 하지만, 상대의 보수 담론에 미리 포위되어서 ‘정책을 내놔봤자 욕만 먹고 안될 텐데’라는 패배주의가 있었다. 준비가 덜 된 거고, 자신감도 없었다. 보수·진보 언론 모두에 외면당하면서 겁이 났던 건데, 그래도 했어야 했다.”

참여정부에선 교육을 전담하는 청와대 수석도 없었다.

“과거 청와대 수석들이 장관 위에 군림한다는 지적이 관료들 사이에서 나온 점을 대통령이 의식한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관료를 짝사랑하고, 편애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관료 편을 많이 들었고, 그게 개혁을 좌초시킨 역할을 했다.”

결국 참여정부 교육철학 부재에 의한 것 아닌가?

“게임이 끝났었다. 저의 3대 과제가 노사 문제와 부동산, 교육이었다. 부동산은 좀 됐는데, 노사 문제와 교육은 실패했다. 둘 다 대통령이 별로 의지가 없었다. 대통령이 ‘내가 노조를 평생 도와줬는데, 나를 이렇게 흔들 수 있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네이스 등을 두고 정부를 흔드는 전교조에 대한 불신도 생겼다. 대통령도 협량했고, 노조도 전략이 부재했다.”

혁신위는 ‘국립대 공동학위 수여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서울대 중심의 대학 서열화를 해체하려 했다.

“헤게모니가 교육부로 넘어가면서, 국립대 공동학위제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너무 아쉽다. 국립대들이 공동학위제를 운영하고, 결국 대학을 평준화하면 한국 입시지옥의 절반 정도가 해결된다. 그걸 안 하려는 게 서울대 등 일류대 이기주의다.”

청와대나 열린우리당의 문제의식은 없었나?

“대통령은 서울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사석에서 서울대에 대한 강한 불만을 더러 표현한 적이 있고, 그래서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과 사이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정책화 움직임은 없었다. 만약 혁신위를 거쳐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더라도, 누가 거기에 동조했을까 싶다. 교육 관료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웬만하면 ‘너무 과격하다’고 말하곤 했다.”

내부 동력이 없었나?

“인력의 구성이 충분치 못했다. 교육의 경우 준비된 진보적인 인사가 위원회와 부처, 장관직까지 가릴 것 없이 한꺼번에 대거 들어가줘야 한다. 한두명으로는 고립되고 실패한다. 참여정부가 주는 교훈이다.”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친 그는 “제가 얘기를 너무 많이 했네요”라고 했다. 하지만 성찰과 반성이 없다면 진보가 가능할까? 악수하고 돌아서는 그의 눈빛엔 우려와 후련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대구/글 이재훈 기자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